내가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을 때 주변에 은근 sky를 나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 중 몇몇은 매우 뛰어나 보였다. 같은 신입이어도 일을 하는 것이 조금 더 영민하다고나 할까?
뒤쳐지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부단히도 완벽해지려고 노력을 했다. 내 분야에 대해 그들보다 더 많은 연구를 하고 선배님들로부터 어떤 피드백을 받으면 반드시 내 것으로 만들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받는 피드백도 눈여겨 보고 내 작업에서는 그런 실수가 절대 나오지 않도록 했다. 다른 사람들이 책을 만들기 위해 4교를 볼 때, 나는 야근을 해가며 5교를 봐서 좀더 완벽한 작업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윗분들은 나를 신뢰했고 나는 내 분야의 섹션 팀장 자리를 맡게 되었다. 팀장을 맡자, 나는 스스로를 더욱더 채찍질하여 성과를 만들어 냈다. 내가 팀장이 되어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는 경력사원 12명 정도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출판 업계는 시즌별 프로젝트가 유행이어서 경력사원을 뽑기가 매우 어려웠다. 개발을 늦출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신입 팀장인 나와 경력 사원 2명, 신입 2명, 총 5명이 약간의 외주 인력을 동원해서 그 프로젝트를 해야 했다.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똘똘 뭉쳤다. 그 프로젝트를 늦게 시작했고 인력이 부족했지만, 그 이유로 마감을 늦추거나 프로젝트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다. 우리는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그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 일은 나에게 큰 성취감을 주었다. 나는 더욱더 일에 몰입했다. 일이 신나서 편집팀에서는 할 필요가 없는 여러 가지 일들도 시도했다. 책을 개발한 후에는 회사 일과 별개로 해당 책에 대한 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한다든지, 팀원들과 함께 바이럴 마케팅을 직접 해본다든지 하는 다양한 일들을 했다. 개발하는 책의 내용을 고칠 때는 명확하지 않은 한 단락을 최대한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서 네다섯 권의 책을 펼쳐놓고 연구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 나에게 일은 너무 즐거웠고 매일 날을 새며 일을 해도 피곤한지 몰랐다. 특히, 인쇄되어 나온 새 책에 내 이름이 딱 쓰여 있으면 너무 뿌듯해서 트로피처럼 책을 우리 집 서재에 하나씩 모셨다.
하지만, 회사란 조직은 활용하기 좋은 인재를 계속 쓰게 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나는 계속해서 동료들에 비해 좀 더 어렵고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그것들을 해결하며 성취감을 느꼈지만, 어느새 점점 몸이 축나고 있었다.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 해내는 직원에게 더 좋은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더 어려운 상황을 주기도 한다. 그것도 모르고 어려운 일이 주어질 때면, ‘회사에서 날 인정하고 있구나.’라고 착각했다.
그러다가 결국 난 쓰러졌다. 몸이 더 이상은 움직일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난 참 모자란 놈이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완벽하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노력하니 병이 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몹시 힘든 시간들을 한참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몸을, 나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은 완벽주의자 타이틀도, 일 잘하는 직원 타이틀도 조용히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나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는 상사의 눈빛과 달라진 나에 대해 어리둥절하는 후배들... 이제 나의 작업은 더 이상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피드백이 견딜 수 없이 많이 들어오기도 한다. 예전과 같지 않은 나의 업무 지시 방식과 태도에 후배들은 갸우뚱한다. 그 중 몇몇은 “죽을 때가 되었어요? 왜 그래요?’하고 묻기도 한다.
‘아니, 난 살려고 해. 그것도 아주 잘 살려고...’
완벽함을 버린 대신에 난 소소한 행복을 찾았다.
난 가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회사를 등지고 오전 반차를 즐긴다. 짧은 시간이지만, 평일 아침에 커피나 차를 마시며 거실 탁자에 노트북을 켜고 나만의 시간을 즐긴다. 친구들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다 준 여러 가지 차가 가득 들어있는 나의 티 박스를 뒤적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즐기는 작은 여유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오늘도 난 오전 반차를 냈다. 진한 블랙커피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 넣고 얼그레이 티를 꺼냈다. 새로 산 슬림형 가습기를 팡팡 틀어놓고 차 한잔을 마시며 웹서핑을 즐긴다. 햇살이 잔뜩 들어오는 창밖을 보다가 다시 드러눕고 무릎담요를 덮고 떼굴떼굴 한다. 난 이 시간이 몹시 좋다. 이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완벽하지 않은 ‘내’가 되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