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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력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출판 업계에는 참 고학력자들이 많다. 소위 sky 나온 사람들, 대학원 졸업자, 해외 유학파... 아무래도 책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책을 좋아하고 학문과 연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경향이 있다.


그 당시 대기업 L사에 다니던 내 친구 중 한 명은 그 업계에서는 술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라도 나누려고 하면 연고대 나온 사람들끼리 자기들만 아는 신촌 대학가 이야기를 해서 자기는 대화에 끼지도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 친구는 더 나은 사회생활과 인맥을 위해 연대 대학원을 등록했다.


출판업계도 약간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직장생활 1, 2년차 시절엔 나도 ‘대학원을 가야 하나?’하는 고민을 잠시 했었다. 그런데, 내가 그 당시 대학원을 나온 선배를 지켜볼 때, 사실 대학원을 나온 사람도 회사 생활을 할 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때 대학원보다 고민되었던 것은 어학 연수였다. 내가 맡는 주 분야가 어학이니, 주변에는 주로 해외 유학파가 많았다. 설령, 유학파가 아니라 해도 다들 어학 연수 1년 정도는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그 와중에 나는 어학 연수는 커녕, 필리핀 여행도 한 번 못 가 본 처지였으니 격차가 좀 컸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학 연수라도 다녀 올까? 아니면 간단한 학위라도 하나 마치고 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때론 그런 간판이 없는 내가 못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결국 간판을 얻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순간 문득 나는 간판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책을 개발하다가 내가 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분야에 관련된 책이나 인터넷 글, 연구 논문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같은 내용의 콘텐츠라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이해하기 더 쉽고 덜 지루해하는 구성이나 설명은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그리고 내가 새로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바로 작업하는 책에 녹였다. 그러다가 운 좋게도 일을 잘하는 선배님을 만나면, 그는 어떤 식으로 책을 기획하고 구현해내는지를 파악하려고 했다. 선배님의 작업 방식을 내 작업 방식에 적용하기도 했고, 기획 아이디어, 출판 편집 각 과정에 대한 노하우에 대해 알게 되면 메모를 하면서 작업 스킬을 습득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만의 방식으로 이 업에 필요한 작은 역량들을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현재, 난 내 분야 섹션 편집장이다.

이제와 주변을 둘러 보니, 주변의 고학력자와 유학파들의 대부분은 회사에 남아 있지 않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생각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업무를 할 때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다. 또 초기에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를 내서 내가 우러러 봤던 선배도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과 회사가 원하는 책의 방향에 대해 갈등을 하다가 이 업계를 떠났다.  

회사 생활에서 동료들과 합의점을 도출할 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고학력자가 주변에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고학력자 일부는 그들이 고학력자라서 남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의 간판에 자만하지 않고 책을 개발할 때마다 꾸준한 연구와 새로운 도전을 게을리하지 않은 겸손한 사람들이었다.


만일 당신이 출판사 고학력자들 사이에서, 혹은 그 어느 회사에서 대학원이나 해외 연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그 분야에서 그 ‘간판’이 반드시 필요한지... 간판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신의 착각일지 모른다. 착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이라도 든다면, 지금 바로 대학원에 대한 고민을 접고 실무에 필요한 역량을 찾아 더욱 강화하면 된다. 당신이 방향을 제대로 잡고 당신 분야에서 중요한 역량들을 꾸준히 강화시켜 나간다면 어느새 당신도 팀장 자리에 있을 것이다.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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