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 뉴욕 주재 라이프
16살, 고등학교 진학과 동시에 하숙을 시작했고
19살, 서울로 상경했다.
22살, 일본 교환학생으로 첫 외국 생활을 해봤고
26살, 두번째 직장에서 난 수많은 나라로 출장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겪을 수 있었다.
요즘 친구들이 경험하는 세상과 비교하면 극히 평범해보일 수 있지만, 성장의 구간마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 쉬이 적응했고 당당했으며 막힘이 없었다. 2021년 5월, 뉴욕에 올 때도 그랬다. 36살, 13년차 사회생활 중 2번째 직장 10년차에 나는 미국 주재원으로 다시한번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사실 개인의 소망을 뒤돌아보면 이 곳으로의 부임은 내 자기 계발에 있어 당연한 수순이었다. 20대 초반에 미국 유학을 꿈꿨고 30대에 접어들며 유학 대신 주재원 발령을 바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변화를 굳이 무모한 도전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약 3개월의 적응 기간 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몽매하여 용감할 수 있었는지를 매일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 회사나 조직에 고용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계약자 혹은 자유 직업인
"회사원"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
이 상반된 두 단어의 조합이 뉴욕에서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말인 것 같다.
나는 오롯이 혼자다. 우리 회사는 노스캘로라이나주 샬롯에 지사를 두고 있지만 뉴욕에 사무실이 없기 때문에 상시 재택 근무를 한다. 내가 맡은 업무는 그룹 내에서도 특수한 것인데 미국 의류 시장의 트랜드를 본사에 전달하고 브랜드와 신규 소재를 개발하는 일이다. 글로벌 브랜드 오피스들이 주로 뉴욕에 모여있기 때문에 나는 뉴욕에 거주한다. 매일 출근하는 물리적 오피스가 없으니 집과 아파트 라운지, 카페를 전전하며 일을 하는데, 홀로 도전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천해간다는 것이 전형적인 프리랜서의 삶이다.
동시에 나는 조직을 대표하여 이 곳에 나와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 내게 투자한 만큼의 합당한 성과를 내야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으로 매일 머릿속을 채운다. 물론, 약 3년이라는 예정된 시간동안 개인과 조직의 공생을 위해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과정들이 꽤 재밌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전형적인 한국회사 2곳에서 보수적으로 '빡세게' 일해온 나는 일과 삶의 경계가 불투명한 이 생활이 아직 익숙치 않다. 이따금씩 조직이라는 울타리, 팀원 상호간에 주고받는 에너지가 그립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 대면 미팅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키맨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는 것도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내게 영어는 늘 마음의 짐이었다. 이 곳에서 나는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부담감에 타인에게 다가가는 일을 주저하기도 한다. 10년 넘게 외국인들과 일해왔지만 영국을 제외하고는 주로 네이티브가 아닌 유럽 및 아시아 국가와 교류해왔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이 나는 낯설고 차갑다. 20대의 나였다면 조금 달랐을까, 어느덧 게으르고 나태하여 현실에 안주하는 나이가 되어 새로운 문화에 오니 예전의 치열한 열심을 복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민자들의 도시인 뉴욕은 노력하지 않아도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홀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오랜 시간 머문다하여 언어가 느는 것도 아니고 커뮤니티로 들어가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나만의 리틀 코리아를 구축해 발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시인 것이다. 그래서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이 두렵다.
오랜만에 친한 오빠와 통화하는데, 오늘 문득 네가 부침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는 말이 그렇게 큰 위로가 되었다. 또 네가 잘 하니까 그만큼 기회가 주어지고 사람들이 응원해주는 거야라는 격려를 해주는데, 내가 살아오며 옳다고 믿었던 것들의 큰 힘을 다시 상기시켜주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마음의 중심을 단단히 붙잡고 유연하게 이 곳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부디 매일 마주치는 Door man에게, 자주 찾아가는 커피숍의 직원에게, 일로 만나는 지인들에게, 우연히 공원에서 마주치는 행인에게 편하게 말을 걸고 공감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기를 바란다.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품고 오는 이 곳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또 한번의 도움닫기를 시작합니다.
• 이 도시의 모든 영감과
• 글로벌 텍스타일 업계의 소식과
• 주재원으로서 내 삶을 흔드는 사소한 일상을
기록하려 합니다.
감성에 빠지지 않고 담백하고 쉽게
무엇보다 성실하게 글을 쓸 수 있기를 응원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