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과 반종교 개혁
16세기 전반기부터 가톨릭 교회 내부의 문제점을 개혁하고자 하는 종교개혁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종교개혁과 관련된 음악은 크게 루터교, 칼뱅교, 성공회 음악으로 구분할 수 있다.
루터교 음악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의해 회중 찬송의 형태로 발전되었다. 음악에 탁월한 재능을 지녔던 루터는 기존에 라틴어로 진행되던 미사를 평신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독일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해 독일어로 번역된 미사는 더 많은 독일 회중이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루터는 교회 음악이 일부 성가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회중이 함께 노래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그의 음악적 관점은 ‘코랄(chorale)’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코랄은 루터교 음악의 핵심 요소로서, 기존 선율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는 콘트라팍툼(contrafactum) 방식으로 작곡된 곡들이 다수를 이루었다. 초기 코랄은 단선율의 무반주 형태였으나, 이후 다성 코랄이 활발히 작곡되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호모포니적 양식인 칸티오날(cantional)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루터 코랄은 라틴어를 알지 못하는 일반 회중이 독일어로 교회 음악에 참여할 수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https://www.youtube.com/watch?v=nDdHtOSHIXE&list=RDnDdHtOSHIXE&start_radio=1
루터의 종교개혁 시기와 유사한 시기에 취리히에서는 훌드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와 장 칼뱅(John Calvin, 1509-1564)에 의해 종교개혁이 진행되었다. 츠빙글리와 칼뱅은 매우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격의 종교개혁을 지향하였으며, 예배 음악에 있어서도 시편가를 제외한 기존의 모든 음악을 금지할 정도로 엄격한 규제를 시행하였다. 특히 칼뱅주의 예배 음악은 프랑스어로 번역된 시편을 무반주로 부르는 시편가(Psalter Song)를 대표적으로 삼았으며, 예배 시간에는 다성 시편가의 사용을 제한하고 단성 시편가만을 허용하였다.
영국의 종교개혁은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로 촉발되었으며, 로마 교황에 대한 반감이 종교개혁의 가속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후 에드워드 6세(Edward VI, 1537-1553)의 통치 기간 동안 영국 종교개혁이 본격적으로 주도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영국 성공회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성공회 음악은 주로 서비스(Service)와 앤덤(Anthem)으로 대표되는데, 서비스는 가톨릭 전례의 성무일도와 미사에서 유래한 형식으로, 대 서비스(great service)와 소 서비스(short service)로 구분된다.대(大) 서비스는 대위법적이며 멜리스마 양식의 화려한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소(小) 서비스는 음절적 호모포니 양식에 기반한다. 앤덤(anthem)은 완전 앤덤(full anthem)과 운문 앤덤(verse anthem)으로 구분되는데, 완전 앤덤은 대위법적 스타일의 합창곡인 반면, 운문 앤덤은 오르간 또는 비올 반주를 동반하여 1인 이상의 독창과 합창이 교차하는 형식을 특징으로 한다.
종교개혁 시기에는 가톨릭 내부에서 자체 개혁을 추진하는 반종교개혁 운동이 전개되었다. 교황 마르첼루스 2세는 기존 종교음악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지나치게 세속적인 선율의 사용, 과도하게 복잡한 대위법적 음악, 그리고 성가대원들의 부적절한 태도 등을 지적하였다. 특히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가톨릭의 향후 방향과 가톨릭 음악이 추구해야 할 목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되었다. 이에 반종교개혁 작곡가들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논의 내용을 참고하여, 쉬운 선율과 단순한 음악 구조, 그리고 가사의 명확한 전달을 중시하는 교회음악을 작곡하였다.
반종교개혁 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조반니 피에를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 1525/6-1594), 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Thomás Luis de Victoria, 1548-1611), 그리고 오를란도 디 라소(Orlando di Lasso, 1530/32-1594)를 들 수 있다. 팔레스트리나는 생애 대부분을 교회음악 작곡에 헌신하였으며, 그의 미사곡은 주로 성가에 기초하여 성가를 패러프레이즈하거나 인용한 작품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의 음악은 협화적이며, 가사가 명료하게 전달되는 점이 특징적이고, 반음계적 진행도 신중하게 사용되었다. 선율은 주로 순차 진행을 따르며, 불협화음의 사용을 절제하여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요구한 음악 양식에 부합한다. 팔레스트리나의 대표작으로는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가 있으며, 이 작품은 포부르동과 유사한 진행, 단순한 리듬 구조, 도약 후 반대 방향으로의 순차 진행 등이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KSmT4VIjEtI&list=RDKSmT4VIjEtI&start_radio=1
스페인 출신의 빅토리아 역시 트리엔트 공의회의 음악적 요구를 충실히 반영한 작곡가로, 대표작 <오 크나큰 신비여>는 이중 푸가의 선율 진행과 가사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살린 어둡고 차분한 음색이 돋보인다. 또한 효과적인 반음계 진행과 계류음 및 해결을 통해 부분적인 긴장감을 부여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한편, 라소의 교회음악은 팔레스트리나와 빅토리아와 달리 유럽 각국의 다양한 음악 양식과 악파를 폭넓게 수용하였으며, 보다 진보적인 음악 어법을 구사하였다. 그의 작품은 르네상스 모방대위법, 마드리갈의 급진적 화성, 독일 음악의 진지함 등 여러 음악 양식을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실험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였다. 라소의 대표적인 교회음악 <내가 어렸을 때에는>은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3장 11절의 가사를 인용하였으며, 어린아이의 음성과 성인의 음성을 효과적으로 대비시켜 가사의 분위기를 음악적으로 구체화하였다. 또한 리듬, 악센트, 악구의 분할 등을 통해 가사의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