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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e Oct 13. 2020

04. 몽마르트가 과연 그렇게 좋기만 할까?

누구나 한 번쯤은 몽마르트 언덕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꿈꿔본 적 있을 것이다. 

무명의 화가들이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은 언덕 풀밭에 앉아 평화롭게 쉬는 곳... 처음 몽마르트를 찾았을 때 받았던 인상은 상상 속의 그것과 비슷했다. 생각보다 언덕이 가파르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몽마르트 언덕은 원래 몽 마르티룸으로 불렸다. 몽 마르티룸은 ‘순교자의 산’이란 의미다. 그럼 누군가 이곳에서 순교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추측이 된다. 파리 초대 주교인 생 드니(Saint Denis)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기원전 2세기경, 파리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생 드니는 파리에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로마인들에 의해 몽마르트 언덕에서 목이 잘렸다. 전해오는 말로는 이들은 순교한 다음 날, 자신의 잘린 목을 들고 약 5킬로미터 정도 걸어간 뒤 쓰러졌다. 그 마을이 오늘날의 생 드니가 되었다고 한다. 



파리에 있는 동안 몽마르트 언덕을 자주 갔었다. 

몽마르트 언덕에 가기 위해서는 집에서 출발해 메트로를 몇 번씩 갈아타야 한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 Abbesses 역에서 내린다. 이 역은 다른 역에 비해 깊기 때문에 반드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플랫폼에서 내려 계단으로 올라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처음 이곳에 갔을 때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냥 계단으로 올라간 적이 있다. 계단은 아무리 올라가도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돌아 내려갈 수도 없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계단을 오르고 있자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참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계단이 조금만 더 짧았어도 의심하지 않았으리라.      

몽마르트 언덕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전경

지하철을 빠져나와 사크레쾨레 성당 앞, 몽마르트 언덕에 도착했다. 그곳은 언제나 사람이 많다. 사람들은 잔디밭에 맨몸으로 앉거나 누워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도 있고, 낮잠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바게트를 입에 물고 와인을 마시기도 한다. 그렇게 하릴없이 앉아 햇빛을 받으며 탁 트인 시야로 펼쳐지는 파리 시내의 전경을 즐긴다. 우리도 그곳에서 함께 철저하게 그들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햇살을 맞는 일이 우리의 유일한 의무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공원에서 와인을 마실 때 꼭 와인 병목을 잡고 터덜터덜 들고 와서 입을 대고 병째 마신다. 나는 그것을 '프랑스-스러움'이라 불렀다. 


한국은 술 하나를 마셔도 지켜야 할 ‘주도’가 많은 나라다. 알다시피, 그런 격식과 예의는 전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타인을 위한, 혹은 타인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다. 술을 마실 때조차 생각하고 조심할 것이 너무 많다. 이렇게 많은데 행위 자체도 남을 생각하며 마셔야 했다. 그런 내가 밝은 대낮에 밖에서 와인을 병째 들고 마신다? 이런 행동 자체가 나에게는 일탈이자 해방이었다. 남의 이목이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그런 순간들은 유명한 관광지에 있을 때보다 진짜 프랑스에 있음을 자각하게 해 주었다.      



그렇게 와인을 먹다 보면 늘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화장실이다. 

파리의 화장실은 대부분 매우 더럽다. 대부분 더러운데 돈을 내지 않으면 보통 사용할 수 없다. 더러운 화장실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주변에 화장실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시나 파리의 공원에서 수풀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와도 너무 놀라지 마라. 그들에게는 노상방뇨는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노상방뇨에 익숙하지 않은지라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다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몇 번 고비를 넘기고 나니 나중에는 공원에서는 절대 물이나 맥주를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날도 희희낙락하며 따뜻한 햇살 아래 와인을 마시다 보니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졌다. 꼭 이런 상황은 예고편도 없이 갑작스럽게 벌어진다. 다급하게 사크레쾨레 성당 쪽으로 올라가 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성당을 마주 보고 오른쪽으로 50미터쯤 가니 길가에 Babalou란 음식점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같이 간 남편은 버려두고 혼자 그곳으로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 마침 배도 고팠던 것 같다.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평온한 마음으로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제야 식당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작고 아담한 식당은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시금치 페스토 라비올리와 오늘의 메뉴(Le plat du jour)에 적혀있던 피자를 주문했다. 그때는 식재료 중심의 프랑스 메뉴판을 잘 읽지 못할 때라 그저 추천에 따라 시켰던 것 같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라비올리는 무난한 맛이었다. 괜찮군, 생각하며 피자를 입에 한입 넣었는데, 엄청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다시 메뉴판을 살펴보니 truffe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트러플이구나! 잘게 썬 트러플 조각과 오일이 토핑 된 피자였다. 무슨 음식인지 알지도 못하고 시켰다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그야말로 인생 피자를 만났다. 가격도 16~17유로 정도밖에 안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곳은 구글맵, 트립어드바이저 등에서 높은 평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원래 식사 시간에 갔으면 줄을 길게 서서 들어가야 한다고... 때아닌 고난(?)으로 예상치 못한 행운을 맛본 순간이었다. 이래서 옛 성인들이 세상에 슬퍼할 일도 기뻐할 일도 없다고 했나 보다.      



파리의 관광지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흑인 잡상인이다. 

특히, 관광객에게 다가와 마치 선물인 양 손목에 팔찌를 채우고는 돈을 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비용을 지불할 때까지 쫓아다닌다. 몽마르트 언덕에 갈 때마다 언덕 입구에서 어슬렁거리던 그들과 마주쳤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 어쩐지 무서운 마음에, 주머니 깊이 손을 찔러 넣고  눈도 안 마주치고 서둘러 갈 길을 재촉했다. 나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강요는 싫다. 그래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강매하는 그들이 너무 싫었다. 대체 이들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몽마르트를 가는 길에 환승역을 지나치는 바람에 평소와는 다른 길로 가게 되었다. 

몽마르트 언덕의 동쪽 편에 위치한 Chateau Rouge 역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지하철역 출구로 나오는 계단을 오르는데, 위에 무언가 흔들거린다. 자세히 보니 사람 손이다. 구걸하는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돈을 달라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서둘러 그들을 지나쳐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길을 따라 걸어내려 가자 이내 시장이 나타났다. 거친 사람들과 조악한 물건들이 지저분한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Boucherie(정육점)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곳은 기존에 내가 알던 먹음직스러운 육고기를 파는 곳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막 도살장에서 가져온 온갖 종류의 동물의 부속품들이 마치 전시장처럼 늘어서 있었다. 렘브란트의 <도살된 황소>는 내가 본 광경에 비하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우리는 철저히 다른 세상 사람이었고, 그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아채면 안 될 것 같았다. 너희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닌데 왜 이곳에 왔느냐고 추궁을 당할 것만 같았다. 치히로처럼 숨을 참고 길을 걸었다.


그렇게 나는 가장 낭만적인 곳을 둘러싼 가장 어두운 곳을 목격했다. 

낭만과 예술의 중심지이자 누군가의 꿈의 장소는 가난한 이민자들에게는 생존의 공간이었다. 그들이 속한 공간은 몽마르트와 다른 차원에 속하는 듯 보였다. 영화 ‘인셉션’처럼 서로 다른 공간을 강제로 접합시켜 놓은 듯한 어색함.    

  

그리고 나는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숨을 길을 걸었다. 



참고자료

린다,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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