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꽃과 좀비

월급 중독에 빠진 어느 부부의 이야기

by 윤슬 yunseul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시든 꽃처럼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 깜짝 놀라 남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담임 선생님한테 혼난 초등학생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퇴근 직전에 팀장이 자리로 오더니 뭐라고 했어."

"왜? 무슨 일로?"

"보고서 출처를 제대로 표기 안 했다고... 사무실에 아직 사람들이 많았는데, 고작 그런 일로 30분도 넘게 이야기했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하겠어?"


며칠 전부터 팀장이 남편에게 보고서 출처를 한번 더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몇 차례나 이야기했다. 여러 사람이 작성한 원고를 취합하여 완성하는 보고서 작업 특성상, 내용의 통일성을 조정하는 단계에서 정확한 출처 확인은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팀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작성된 출처가 양식에 맞는지만 확인했을 뿐, 정확한 출처를 확인하지 않았다. 팀장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말이다.


"출처 확인하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 못 했던 것 같아. 왜 못 알아들었던 걸까?"

"왜 그랬던 것 같아?"

내 질문에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

나한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거든."


순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모습이 꼭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매일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어서 이불속에서 한참을 꿈틀거리다 일어나곤 했다.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입에 물고 있는 표정으로 꾸역꾸역 출근을 한다.

지금 하는 일에 특별히 관심도 없다. 일에서 의미도, 재미도 찾을 수 없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일을 미루다가 마지막 순간에 어쩔 수 없이 해치우는 일이 반복된다.


그럼에도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해 왔다.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중독되어 소중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뿐임을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남편의 모습을 통해 비춰본 내 모습은 마치 좀비 같았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채 삶을 낭비하는 자신을 마주하는 건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생각지 못한 거울치료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누군가 말했다.

'삶은 결국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그렇다면 지금 내 삶은 어떨까? 지금 나는 나를 찾아가는 길 위에 있는 걸까?

길이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까?


어쩌면 내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 길을 찾지 못했을 뿐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확신이 없다는 핑계로 제자리에 멈춰있었던 것 같다.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정해진 길은 없다. 길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나에게로 향하는 길은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가야 하는데, 그 사실을 너무 오래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더 용기를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