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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e Oct 13. 2020

05. 바게트를 먹을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어

프랑스의 바게트 이야기


매일 저녁 퇴근길마다 남편은 꼭 바게트를 사온다. 

남편에게는 까르푸에 들러 바게트와 함께 그날 먹을 과일을 사오는 것이 일종의 퇴근 의식이었다. 빵집이 아닌 까르푸 바게트를 고집하는 것이 나로써는 좀 우스웠다. 남편의 주장대로면 그집 바게트는 단순한 마트 빵이 아니란다. 내공 만렙 고수의 느낌이 팍팍 풍기는 할아버님이 직접 구워주시는 바게트라고 했다. 예예~ 나는 대충 대답한다. 


프랑스에서는 바게트를 금새 눅눅해지지 않도록 하기위해 통풍이 잘되는 길다란 종이봉투에 담아준다. 원래는 바게트가 종이봉투보다 길어서 삐쭉 튀어나와 있어야 정상인데, 남편이 사온 바게트는 늘 종이봉투에 딱 맞게 작아져 있다.


“오빠, 왜 맨날 바게트 끝부분이 없어?”

“그러게, 꼭 그렇게 팔더라고.”

“오빠가 먹은게 아니고, 이렇게 판다고?”

“어, 그러게. 이상하지.”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하더니 혼자 킬킬대며 이실직고를 한다. 바게트를 일단 사면 빵 냄새가 너무 좋아 참을 수가 없단다. 갓 나온 바게트의 ‘꼬다리’ 부분을 우물거리며, 손에 들고 있는 바게트를 코에 바짝 대고 냄새를 맡으며 걸어온다고 했다. 항상 같은 곳에서 빵을 사서 같은 경로도 걸어오니 늘 종이봉투 절취선까지 먹으면서 왔던 거다. 길에서 바게트에 코를 박고 걸어오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났다.


나는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이 밋밋한 빵이 그렇게 맛있었다. 아무 식당이나 가면 식전 빵으로 투박하게 썬 바게트만 바구니에 담아준다. 잼이나 올리브유, 버터도 주지 않는다. 그냥 맨입으로 먹어도 너무 맛있어 바구니를 비우는 바람에, 본식이 나오면 배가 불러 후회하는 일이 허다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맛있는 바게트를 만드는 빵집(Boulangerie)을 선발하는 대회를 연다. 

빵집 앞에 붙어있는 스티커로 몇 년도에 몇 등을 했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한 몽마르뜨의 Le Grenier à Pain도 그 중 하나이다. 그해 최고의 바게트로 뽑히면 대통령이 사는 엘리제궁이 1년 동안 바게트를 공급하게 된다고 한다. 무게 250-300g, 길이 55-65cm에 맛, 굽기, 빠ᆞ강의 속살, 향, 겉모습을 기준으로 선정하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대회에서 수상한 빵집의 리스트를 만들어 도장깨기 하듯 하나씩 먹어보았다. 각각의 빵집마다 고유의 스타일이 있었다. 어떤 집은 작고 바삭한 식감을 살렸고, 어떤 집은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을 살리기도 했다. 같은 재료로 이토록 다른 느낌의 빵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곳은 학원 근처에 있던 2009년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Le Grenier de Félix 였다. 

그곳의 바게트는 다른 곳보다 크고 두꺼웠으며 얼핏 보면 약간 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반을 잘라보면 하얗고 향긋한 부드러운 속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물씬 풍기는 효모향 때문에 크러스트가 두꺼워서 효모들이 목숨을 건졌나?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남편은 유명한 빵집의 바게트를 다 먹어본 후 역시 까르푸 빵집에서 할아버지가 투박하게 구워주는 바게트가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에서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바게트와 같이 우수한 품질의 제품을 인정해주는 제도를 잘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베스트 크루와상을 뽑는 대회도 매년 열리고 있으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쉐린(미슐랭) 가이드도 있다. 이런 제도들은 실력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강력한 홍보수단이 된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별로 없나 보다. 대신 백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음식점이 많다.


1800년대 후반에 생긴 생제르망 거리의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 레 뒤 마고(Les Deux Margots) 같은 곳들이 대표적이다. 생텍쥐페리, 샤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등 그 시대 문인들과 예술가들은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몇 안되는 프랜차이즈에는 관광객들만 우글거린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스타벅스에서 차를 마시고, 바피아노(Vapiano)나 레옹드브뤼셀(Leon de Bruselle)을 주로 갔었다. 그런 곳이 영어가 잘 통하기도 하고, 꼬장꼬장한 프랑스 종업원들의 눈치를 안봐도 되어 좋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바게트보다 더 그리운게 있다. 크로와상이다. 

요즘은 거의 ‘크로와상 앓이’를 하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크로와상을 전혀 먹지 않았다. 별 맛도 없는데 입에 물면 바스러져 테이블이 온통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의 크로와상은 차원이 달랐다. 일단 버터 향이 물씬 풍기고, 손에 잡고 찢으면 부드러운 속살이 결대로 찢어진다. 파리의 크로와상과 비슷한 것을 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생제르망의 이름없는 카페에서 먹은 크로와상


그 당시에 지인들 중 요리사 분들이 꽤 있었다. 아무래도 미식의 나라다 보니 공부를 하거나 경험을 쌓으러 오신 요리사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루는 아는 요리사 언니와 같이 점심을 먹는데, 그날따라 바게트가 너무 맛있는거다. 너무 맛있어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나는 그분께 물어보았다.     


“한국에서는 이런 바게트를 먹어본 적이 없어요. 이건 왜 이렇게 맛있을까요?”

“그러게,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한국 돌아가신 요리사들이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해. 이상하게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한국에서 만들면 프랑스에서 먹던 그 맛이랑은 뭔가 다르더래. 아마 프랑스의 습도나 공기 등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해서 그런 것 같다더라고.”

“아, 그럼 전 한국 가면 이런 바게트를 먹을 수 없는 건가요?”

“글쎄, 잘 찾아보면 있으려나? 나도 모르겠네.”     


언니는 이렇게 무책임하게 말해놓고 큰 소리로 웃었다.      



언젠가 바게트의 권위자와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것이 생각난다

그는 식습관의 변화로 프랑스 젊은이들의 바게트를 먹지 않는다며, 우려하는 인터뷰를 했다. 기사에서 제시된 통계 수치만 봐도 확연히 줄어든 소비량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의아했다. 그래? 내가 볼 때마다 빵집 앞에는 바게트가 나오는 시간이면 길게 줄을 섰는데? 이 정도가 얼마 안 먹는 거라고? 그 기사를 보고 난 후, 빵이 나오는 시간에 빵집 앞에 줄 선 사람들을 유심히 봤다. 실제 나의 눈으로 본 것만 통계를 내보니, 줄 서있는 사람의 80-90%가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전통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전통이 빠지고 난 자리에 새로운 것만 잔뜩 쌓아놓는 일도 바람직하진 않다. 그 중간은 과연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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