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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e Oct 14. 2020

06. 파리, 알고 보면 성형미인이었다?

오스만의 도시개조 이야기


프랑스에 오기 전에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샀다. 

나는 그리 계획적인 여행자가 아니다. 숙소와 항공편을 예약하고 나면 서점에 가서 그 도시에 대한 책을 한 권 산다. 그리고는 여행 가는 마지막 날까지 절대 책을 넘겨보는 일이 없다. 비행기에 올라타서야 비로소 여행책을 읽으며 그 나라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모르는 내용이다 보니 이해가 잘 안 된다. 하지만 그때는 반드시 봐야만 하기 때문에 몸을 배배 꼬며 억지로라도 책을 붙들고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도시의 구조와 주요 관광지들의 위치, 효과적인 동선과 여행 일정이 잡히기 시작한다. 여행 스타일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 그렇다. 내 인생은 대부분 벼락치기였다. 


프랑스에서 거의 일 년을 지낼 예정이었기 때문에 겉표지에 ‘유럽’이라고 쓰인 두꺼운 여행책을 한 권 샀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파리’ 여행책도 한 권 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리의 역사에 대한 책을 골랐다. 마지막 책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다. 서점을 다 뒤져서 마침내 중국인 저자가 쓴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라는 책을 손에 넣었다. 파리의 역사 중심으로 쓴 일종의 여행기로 보였다. 남편은 이 책을 보더니 어디서 이런 '재미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1도 없을 것 같은' 책을 샀냐고 놀렸다.



어느 심심한 날, 별생각 없이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를 집어 들었다. 

처음은 ‘오스만’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오스만? 오페라 근처에 오스만 거리가 있던데, 혹시 그 사람인가? 가뜩이나 프랑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모르는 사람 이야기가 나오니 골치가 아팠다. '조르주 외젠 오스만'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 남작은, 나폴레옹 3세 시대에 파리의 대규모 도시개조 사업을 지휘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이 사람 덕분에 파리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센 강변을 따라 잘 정비된 파리의 모습


기존의 파리는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도시로 길이 좁고, 상하수도 시설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더러울 수밖에 없는 복잡하고 비위생적인 곳이었다. 나폴레옹 3세는 오스만에게 도시 정비 사업을 지시한다. 나폴레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개선문을 중심으로 대로를 만들고, 대로와 이어지는 골목길들도 정비가 이뤄졌다. 이 시기에 현재와 같은 파리의 20개 구역이 정비되었으며,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은 비슷한 높이와 형태를 갖춘 현재 파리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로 교체되었다. 그 밖에도, 센강의 다리, 기차역, 극장과 공연장을 지었고, 외곽으로는 불로뉴 숲과 방센트 숲 등 대규모 녹지를 조성했다. 1800년대 중반부터 약 20년간 진행된 이 사업으로, 파리는 현재의 ‘파리다움’을 갖출 수 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파리는 오스만이란 '의느님'으로부터 재탄생된 '성형미인'인 셈이다.

도로정비로 쭉 뻗은 대로들이 질서 정연한 파리 시내 야경의 모습


몽마르트 언덕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면 그 조화로움과 통일성은 놀라울 정도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백 년도 넘은 현재까지 이걸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에서는 건물을 새로 짓는 일이 거의 없다. 그 시절에 만들어진 오래된 건물들을 보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낡은 건물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하루는 다니고 있던 어학원에 일본인 친구 한 명이 그날 수업에 못 온다고 연락이 왔다. 이유를 들어보니, 윗집에 배수관이 터져서 부엌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배관공을 아침부터 불렀는데 아직도 오지를 않아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이런 사고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제야 파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물들의 오래된 연식이 실감이 났다. 


파리의 집들은 외관상으로만 보면 멀쩡하다. 현대식 양식과는 거리가 먼 고풍스러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완벽한 거리의 풍경과 분위기에 취해 있다 보면 그저 그 건물이 '지금 이 순간 이 곳에 존재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다. 건물이 오래되고 낡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한국의 오래된 아파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강남의 은마아파트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이 아파트의 외관을 강남 한복판에서 처음 봤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곧 쓰러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낡은 아파트... 파리 사람이 와서 보면 오백 년은 훌쩍 넘긴 건물이라 생각할 듯싶었다. 혼자 세월을 정면으로 타격당한 초특급 '노안'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이토록 달랐던 것일까? 건축 기술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 시절 지어진 아파트들은 건축 과정에서 이놈저놈 자기 주머니 챙기느라 들인 돈에 비해 허접하게 지어져서 그런 것일까?   

파리의 전형적인 골목


현재의 파리는 도시의 60%가 오스만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몽파르나스 타워와 내가 살던 15구를 포함하여 비교적 최근 지어진 고층 빌딩 정도이다. 다른 곳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던 15구의 고층 건물은 나름 현대식이다. 유럽의 카펫식 바닥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마룻바닥을 사용했으며, 밖으로 열리는 나무 창문이 아닌 철제 통유리를 사용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쪽 동네는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다. 친구들은 내가 사는 동네가 여러 가지 장점이 많지만, 하나같이 입을 모아 ‘파리 같지는 않다’고 표현했다. 나도 동의한다. 



그럼 오스만이 도시를 개조하기 전의 파리는 어땠을까? 

그 이전의 파리, 장발장이 빵을 훔치던 그 시대의 파리는 마레 지구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마레지구는 우선 골목길이 구불구불하고,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의 건물이 높아봤자 2~3층 정도에 불과하며, 건물과 건물 사이가 매우 좁다. 1차선 도로를 따라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인도뿐이라, 주말이면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 지나긴 어렵다. 바닥은 울퉁불퉁한 돌바닥으로 되어 있다. 예전에 바르셀로나를 갈 때 여행 책자에 ‘울퉁불퉁한 돌바닥으로 되어있어 캐리어를 끌기 쉽지 않고 심하면 바퀴가 부서질 수도 있다.’라고 쓰여있었다. 마레지구에서 캐리어를 끄는 여행객들을 가끔 볼 수 있었는데, 참으로 안쓰러웠다. 


나는 마레 지구를 참 좋아한다. 마레의 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시간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골목 모퉁이를 돌면 머리에 가발을 쓴 프랑스 귀족 청년과 맞부딪힐 것 같은 기분이랄까? 


여담이지만, 내가 마레에 갔던 주목적은 팔라펠과 쇼핑이었다. 

마레 지구는 파리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곳이라, 유대교 율법에 따른 코셔(Kosher) 음식을 파는 곳이 꽤 있다. 내가 좋아하는 '라스 뒤 팔라펠(L’as du fallafel)'도 그중 하나다. 팔라펠은 토르티야에 각종 야채를 넣은 뒤 그 위에 일종의 병아리콩 튀김을 얹어주는 샌드위치다. 마레의 복잡한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가 말한 이 집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뿐만 아니라, 마레에는 작은 아웃렛의 일종인 '스톡(Stock)'이 모여있어 쇼핑하기 참 좋다. Maje, Sandro 같은 프랑스 유명 브랜드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다른 곳에는 없는 디자이너 숍이나 빈티지 숍들도 많다.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Merci도 여기 있다. 난 못 가봤다. 슬프게도 내가 가는 날은 늘 휴무였다. 



다시 오스만으로 돌아와 보면, 파리 사람들은 아직도 오스만에 대해 논란이 많다. 

혁명을 견뎌낸 과거 고건축물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을 두고 오스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마레 지구의 고즈넉함을 보면 그들의 불만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오스만의 도시개조 사업이 정치적인 목적을 두고 이뤄졌기 때문에 비난한다. 그 당시 파리의 골목길은 너무 좁고 복잡했기 때문에 혁명군들이 정부군과 맞서 싸우거나, 후퇴하는데 용이했다는 것이다. 도로를 넓히고 건물들 간의 간격을 넓혀 혁명의 불씨 자체를 짓밟으려는 수작이라는 것이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런 의혹에 오스만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혁명을 막기 위해 도시 전체를 때려 부수고 새로 짓다니... 역시 프랑스의 스케일은 남다르다. 


그 시절, 파리는 더럽고 비위생적이었지만 동시에 격정적인 혁명의 역사를 창조하는 기반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때의 파리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파리만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성형의 의도는 불순했으나, 이토록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성형미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을 읽고 나니 이전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파리를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의 슬프고 힘겨운 삶의 여정을 알게 되면 더 아름다워 보이듯, 격정의 역사를 견뎌낸 이 낯선 도시가 더욱 특별해 보였다. 



참고자료

- 책 한 권 들고 파리를 가다, 린다

- 랄랄라 파리!, 맹지나

- 유럽 도시기행 1, 유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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