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2012년 싱가포르의 작은 방 안, 나는 매주 토요일 밤 은밀하게 중국 스트리밍 사이트를 뒤졌다. 강력한 쇄국 정책으로 해외 IP 접속을 철저히 차단하던 한국 방송국의 실시간 스트리밍을 뚫기 위해서였다. IT 업계인의 끈질김으로 어떻게든 링크를 찾아낸 나는, 비록 10초마다 끊기는 버퍼링과 360p 모자이크 화질을 감내하면서 매주 한 프로그램을 본방 사수했다. 바로 공영방송 KBS의 역작, 내 주변에서는 아무도 안 봤지만 사실 전국 2.1%나 시청했다는 그 프로그램 《TOP밴드2》.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기 시작한 계기는 우연히 본 16강 경연 무대 때문이었다. 외노자의 애달픔을 위로하는 그 무대, 무려 ‘데이브레이크’의 16강 탈락 곡(!) <Englishman in New York> 이다.
당시 부족했던 영어 실력에도 그 노랫가사가 귀에 박혔다.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세상에 이거 내 주제곡이잖아!?’ 그렇게 나는 스팅의 원곡과 다른 가수들의 커버곡을 모두 찾아 들으며 외노자의 고독을 달랬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 ‘망각’이라던가, 한국으로 복귀한 이후부터 나는 그 노래를 찾지 않았다. 이 땅에서 나는 이방인이 아닌 현지인이었으니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2년의 어느 날, 판교의 한 게임 회사 빌딩 안에서 환청처럼 그 노래가 들려왔다.
“Oh,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물론 내 경험은 누구나 겪을 보편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람과 섞여 살아가는 한 누구든 한 번쯤 겪을 만한 일들이니까. 하지만 과거 혹은 현재 어느 순간,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면, 내 헤맴과 넘어짐을 통해 작은 희망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보다 더 지혜롭게 헤쳐 나아갈 용기를 얻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