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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우 Oct 21. 2024

즐거움이 가득한 게임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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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에피소드.


그 어렵다는 남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직장 생활 10년차의 나. 신입 시절 이후 처음으로 메일 작성 방식에 대해 피드백을 받게 되는데.

  팀장님 “지우 님, 메일을 좀 더 따듯하게 쓰셔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업무 얘기로 들어가면 좀...”

  나 “네? 하지만 업무 메일인데 다른 얘기를 쓰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요?”

  팀장님 “아니요. 게임업계는 처음이셔서 그러신 것 같은데, 메일 처음에는 다정하게 근황을 여쭌다던 지,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좋아요.”

  나 “좀 어색한데요. 예전회사에서는 회사 메신저에서 눈웃음(^^)표시만 써도 혼났어요.”

  팀장님 “그 회사가 너무 이상하네요. 게임회사는 다들 일이 힘드니까 메일이나 메신저에서 서로 신경 쓰고 배려하는 문화예요”

  나 “메일을 읽는 것도 일인데, 용건만 간결하게 쓰는 게 더 배려하는 것 아닐까요?”

  팀장님 “아~ 게임업계를 처음 오셔서 그러시나 본데… (이하 생략)”


    아하 그렇군! 상명하복을 직장인의 미덕으로 알고 살아온 난, 바로 그 날 오후 일본 도쿄 출장자에게 보내는 메일의 포문을 아래와 같이 열어 젖혔다. 지금도 회자되는 ‘도쿄의 비’ 사건.

『안녕하세요 ㅇㅇ님,
오늘 도쿄에는 비가 온다고 합니다. 고된 출장 여정에 감기는 걸리지 않으실 지 무척이나 걱정이 되는데요.다름이 아니라, 일전에 보내 드린 메일에 대한 승인이…(이하 생략)』


    말장난과 헛소리가 대화의 주 컨텐츠인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업무 피드백이었고, 감성적인 메신저/메일 쓰기로 동료들의 지지와 탄성을 받으며 1년간 신나게 메일을 써 재 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님은 또 다시 나에게 다가왔다.

  팀장님 “지우 님, 메일에 부차적인 인사말 같은 건 빼는 편이 더 프로페셔널해 보일 것 같아요.”

  나 “아니 팀장님, 무슨 말씀이시죠? 감정을 담아 서로를 위로하는 메일이 게임 회사의 컬쳐핏 아니었습니까?”

  팀장님 “아 그런데, 요즘 생각해보니 아닌 거 같아요. 이제 업무 얘기만 써주세요.”

  나 “제가 아니라고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저는 감성 담는 거 좋아요!”   

  팀장님 “아~ 아무튼 이제 프로페셔널하게 써주세요~”




    신규입사자 교육 코스나 정해진 온보딩 체계가 있었던 지난 회사들과는 달리, 게임사는 교육도 온보딩도 방식도 자유 그 자체였다. 회사 조직구조도 비밀(!대내비!), 각종 정보는 사내 메신저에서 알음알음 구전되었다. 회사 규정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사내 메신저 검색하기. 마치 스마트 팩토리 닭장에서 나와, 동물복지 방목 농장의 암탉이 된 것과 같던 나, 꽤 오래 이 상황이 얼떨떨했다. (동물복지계란을 생산하는 암탉은 1년 정도 크면 폐사 대상이라는 것 또한 나와 닮았군 껄껄)

 

   대체 게임업계 문화란 무엇이란 말인가? 나름 빠르게 이해해보고자 주말에는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회사 관련 영상이나 업계 문화에 대한 글도 찾아 읽고, 도서관에서 게임 회사 관련 책을 빌려 읽었다. 그러던 중 당시 부사장님의 강연 영상을 발견했다. 강연의 아이스브레이킹용으로 본인의 입사 초기 스토리를 들려주셨는데, 그 천재 분께서도 입사하고 한달 가량은 아무 업무 설명도 받지 못하고 그냥 자유롭게 개발을 하셨다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게 우리 회사 문화인가보다 하신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대천재 님에게도 방목 시절이 있었다니? 지금의 나의 방목 생활은 어쩌면 영광스러운 것일지도? 그렇게 난, 회사와 나는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이전 직장들은 굉장히 뚜렷한 업무 미션을 중앙에서 내려줬고, 이를 달성할 방법까지 사실상 정해져 있던 전형적인 한국 공룡 회사들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각종 혁신 업무 문화 툴을 검색하면, 그 회사들의 블로그가 제일 먼저 나온다는 것이다. 즉 말랑한 조직문화를 만들고자 제일 빠르게 뭔가 도입한다는 것. 실제로는 그 것을 도입하라는 지시도 중앙에서 내렸을 가능성이 높지만 껄껄.

    그런데 이 곳은 업무 목표와 방식까지 자유롭게 정하는 듯 보였다. 상명하복에 찌들어 있던 나로서는, 느리더라도 위아래 없이 모든 사항을 공유하고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 이 방식이 꽤나 신선했고 가끔은 이상적으로 느껴지기 까지 했다.


그리고 15명 이상 모인 주간 프로젝트 회의. 일주일간 취합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높은 분 “오! 이 아이디어 좋네요.”

  낮은 나 “네 그럼 이 건은 진행하겠습니다.”

  높은 분 “무슨 소리시죠? 진행 여부는 논의를 통해 정해야죠.”


헉. 예전에는 그 회의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맘에 들어 하면 일단 진행했는데! 바나나로 김치를 만들어오라고 해도 ‘어? 알고 보면 바나나김치 상당히 매력적일지도?’라며 모두 정신 승리했을텐데! 필리핀/브라질/에콰도르산 등 모든 산지의 바나나로 바나나 물김치, 바나나 보쌈김치, 바나나 소박이까지 만든 후에야, 해봤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이거 너무나 이상적인 의사결정 방식이잖아?


그때까지는 내가 느끼는 이 정신없음과 혼란의 원인이 내가 경직된 조직 문화에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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