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찾아간 입시 버스 정거장

늦깎이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찬사

by 교육정거장

우리나라는 보통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 나이로는 만 14세에서 19세까지의 나이에 입시를 준비한다. 그래서 20살이 되면 전문대나 4년제 대학교에 입학해 대학에서 각자의 꿈을 펼친다. 그런데 모든 입시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내 글에서는 조금은 낯설고, 의아하면서도, 열정적인 입시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늦깎이의 나이에 간호사가 되기 위해...혹은 가장으로서 현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각자의 이유들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의 손에는 아이들의 가벼운 필통 대신,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두툼한 손마디와 거친 가방이 들려 있다.


적게는 서른살의 나이, 많게는 오십, 육십의 나이에 누군가의 어머니로, 아버지로, 혹은 사회의 일원으로 치열하게 달려온 30~60대의 만학도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이들은 어쩌면 십 대 시절 이미 보냈던 입시라는 정류장을 다시 찾았고, 나는 그들을 위해서 입시를 티칭하는 교강사로 일하고 있다. 나에게 이들을 향한 교육은 완성된 엔진을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멈춰 서 있던 열차에 다시 불을 지피는,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고귀한 작업이다.


젊은 시절, 형편 때문에 혹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지나쳐야만 했던 ‘학업’이라는 정거장이 있을 것이고, 그 정류장에 수십 년이 흘러 다시 돌아온 그들이, 늦은 나이에 수험생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낯선 용어들과 사투를 벌인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돌아서면 자꾸 잊어버려요"


머리를 긁적이면서 멋쩍게 웃으시는 그들의 미소 뒤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못다 이룬 꿈'에 대한 갈망이 절절하게 흐른다.


이곳에서 나의 역할은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강사가 아니다. 이들이 스스로를 향해 던지는 "내가 지금 이 나이에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확신으로 바꿔주는 길잡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번의 실패나 좌절을 디딪고 입시라는 정거장을 찾아온 그들의 용기를 지지하는 교사이기도 하다. 교육이란 결국, 배움에는 유통기한이 없음을 증명해 나가는 동행이기 때문이다.


이 낡고 오래됐지만, 정겨운 정거장은 아이들처럼 소란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그 대신 묵직한 몰입과 정적이 흐른다.


편입 필답 고사 문제를 풀다 막히면 "휴" 하곤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끝내 이해했을 때 아이처럼 환하게 피어나는 그들의 표정에서 나는 교육의 가장 순수한 본질을 본다. 그것은 더 나은 인생, 제2의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을 넘어,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는 과정이 아닐까.


언젠가 이들도 시험 합격, 대학교 입학이라는 대입 성공의 티켓을 손에 쥐고 이 정거장을 떠날 것이다. 그때 그들이 올라탈 열차는 그들의 십대 시절보다 어쩌면, 훨씬 더 단단하고 빛나는 궤도를 달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늦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사실은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두 번째 출발이었음을, 나는 매일 늦은 저녁, 교강사실의 불을 밝히며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