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탈 올라 길을 따라가면
자연과 가까이 있는 한 집이 있답니다
연분홍색으로 칠해진 벽면과,
비스듬한 경사로 덮혀있는 연두색 지붕,
격자무늬로 빛을 받아들이는 큼지막한 창문
정원에는 분재 소나무와
햇빛을 가려주는 살구나무와, 매실나무.
담벼락 쪽에는 사과나무가 있고.
땅에는 잔디가 자라서 푸르르고,
지어놓은 집 주위로는
검은 돌 무더기로 쌓아올린 담벼락이 있지요
정원과 담벼락, 산책로에는 등롱이 위치해 있어, 어둠이 찾아오면 따뜻한 연주황색 빛으로 집과 거리를 밝혀준답니다
비가 내리면 비스듬한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의 연주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요
여닫이 창을 열면 향긋한 나무향, 꽃향, 흙향 바람타고 들어오고, 따뜻한 햇살이 집안을 적당한 온도로 데우고, 연두색의 식물들이 광합성을 하지요
비갠 뒤의 맑은 공기가 폐를 가득 채우고,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가리가리 하늘을 날아요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벛꽂 등이 피어서 길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여 예뻐요
안에는 따뜻한 매실차와, 그대를 위한 알리오 파스타, 잘게 썰어진 바게트 빵, 노릇하게 구운 소금빵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나, 그대에게 이 모든것을 드리고 싶었어요
그대가 이 집에 살면 행복하겠지? 생각하며 이 모든것을 만들었어요
봄철에 송진이 날리고, 꽃샘추위가 올 때에도.
여름에 장마를 이겨내고, 더위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면서.
가을에 내리는 차가운 가을비와,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면서.
겨울에 함박눈 내리고, 땅이 얼어 얼음장판일 때에도, 오돌오돌 떨며.
그대를 생각하며 쉬지않고 이 집을 만들었답니다
그대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담고 싶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모두 넣어놨어요
그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대는, 내가 사랑하는 그대는
차가운 아스팔트로 덮힌 도로 옆
일정한 모양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가들이 세워놓은
단단한 콘크리트로 지어진
쓸쓸한 조명이 알록달록 빛나는
칙칙한 회색으로 칠해진
25층 정도 되는 아파트에 살고싶다 했지요
그대는 내 집을 받아줄 수 없나요?
도시의 그 칙칙한 색이 나의 연분홍, 초록, 파란 색보다 더 마음에 들었나요?
그대는 그래야만 했나요?
열린 창으로 보이는, 멀리 떨어진 호수에 반사되는 석양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대는 없고, 빈 의자만 내 앞자리를 채우는데.
그대와 함께 이 집에서, 이 붉은 하늘과 태양을, 칠흑같은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과 달을, 보고 싶었어요.
그대가 함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대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대가 없는 이 집은 쓸쓸하지만
그대를 생각하며 만든 추억은 가득 차서
언제나 따뜻하게 집을 덥혀 주겠지요.
그대여, 언젠가 또 봐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