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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May 02. 2021

Gospel in Life #6

직업/ 동산을 경작하기

이번 주제는, '직업'. 부제는 '동산을 경작하기.'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을 경작할 수 있지만, 특히 직장은 바다에서 금방 건져 올린 은빛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살아있는 것이다. 바로 전 챕터의 주제였던 공동체, 그 크고 작은 모임들 중 유독 내 마음은 일터에 닿아있음을 느낀다. 20대, 나는 직장에서 정말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그곳은 까마득한 현실이자 안전한 실천의 장이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안녕하세요, 저는 수학 선생님입니다.'라고 내 소개를 하곤 했다. 직업은, 많은 정보를 노출하지 않는 선에서 나를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직업은 곧 정체성이다. 시간을 들이고 전문성이 생길수록 특정 직업은 곧 그 사람이 된다. 왜일까, 글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때의 난, 아는 것과는 다르게 귀천을 따졌던 것 같다.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하진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었다. 참 감사하게도, 호주에서 혼탁해진 부분들을 정화해가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 세계관이 탁해져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그 누가 정확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보존 한단 말인가?


그래서일까? 팀은 이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개념을 적절히 곁들여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일하는 크리스천', 찬사와 박수갈채 보단 냉대와 비난을 더 많이 받고 있는 이 시대의 크리스천 직장인들을 향해 열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래, 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팀의 말처럼, 모든 세계관들은 일정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고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다 (156p). 이렇다 할 절대기준이 사라진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계관은 언제나 짜깁기될 수 있으며 혼탁해진 세계관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가 쉽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모든 순간 복음을 명확하게 알자'이다. 완연한 창조, 완전한 타락, 완전한 구원 - 새 하늘과 새 땅. 생명을 살리는 방향을 선택하고 예수님께 착 붙어있는 그것이다.


사실, 나는 기독교 세계관이 좋다. 구원받아서 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세상 원리들 틈에서 아예 판을 홱 뒤집어 생각지도 못했던 윈-윈의 결과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 예수님이 그런 분이시라서 그렇다. 나는 예수님이 참 좋다. 그분은 나를 종으로 부르지 않고 친구로 부르셨다. 그래서 나는 정말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직장 경영을 하고 싶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그분께서 살며시 주시는 언질에는 항상 차원이 다른 센스가 가득하다. 하물며 우리 예수님은 시간의 주관자, 모든 타이밍을 다 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나는 봄날처럼 따듯하고 젠틀한 예수님이 너무너무 좋다.


자,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 보자. '일'. 이제 우리의 월화수목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차례이다. 아담과 하와도 일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에덴 밖에서는 땅을 일구었고 자녀를 나아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에 충만했다. 이 충만함을 너무나 걱정한 나머지 마블은 손가락을 튕겨 인구의 절반을 날려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그들은 무작위로 인구의 반을 청산했다는 것에 정당성을 둔다.) 미션 임파서블을 매번 완수하여 세상을 구해내는 톰 크루즈는 벌써 몇 번이나 핵 미사일과 생화학 바이러스들로부터 세상을 구했다. 하하, 우리가 재미로 만들어낸 세계관은 아무리 비싼 효과로 포장을 해도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만화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생육, 번성, 충만, 다스림이다.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땅에서 열심히 일할 때 우리 손에 주어지는 물질. 그리고 시간. 건강. 팀은, 건강한 물질관을 위해 고린도후서 9장 6,7절에 나오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삶'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가진 에너지와 돈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어, 개인적으로 훨씬 심도 있게 다가왔던 쉼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안식일'이다. 인용구로 뉴욕타임스에 실린 '안식일을 회복하라'는 글이 실려있는데, 청교도들과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대해 까다롭게 의도적이었다는 문장과 끊임없이 반복되는 노력의 여정을 중단하는 것은 놀랍게도 강력한 의지와 작용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간결했다. 규칙적인 안식은 엄청나게 의도적인 훈련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호주에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감사하게도 미래의 배우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건강한 교제를 하고 있는 중이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감사로 점철된 삶이지만 매우 지쳐있는 상태인 것도 분명하다. 쉬고 싶지만 어느 것 하나 중단할 수 없는 것들로 스케줄이 꽉꽉 차있다. 쉼은, 휴식이다. 어쩔수없이 멈추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묵상 휴식, 여가 휴식, 미적 휴식, 비활동 휴식을 통해 보송보송한 새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새 마음은 곧 새 일의 원동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팀의 가장 마지막 질문 속에 나오는 문장을 기록해두고 싶다. "당신은 직장이 복음을 공유해야 할 곳이면서 동시에 복음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 곳이어야 한다." 나는 이 한 문장으로 이번 챕터를 기억할 것이다. 특히 후반부. 이 짧은 문장은 나로하여금 남들은 모르는, 가르쳐 본 사람 만이 아는 기쁨, 아이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가져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전 직업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생각나게 했다. 매주 40시간 이상을 가르쳐야 했고 저녁은 10분 안에 해결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았던 8년의 시간이지만 글쎄, 나는 아이들을, 그 불안함을, 그 장난들을, 그 모든 순수한 신뢰들과 그 모든 순간들을. 곧 그 직업 자체를 사랑했다. 그 일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당연한 것이 되었고 그 모든 것을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다시 채워주심을 경험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일터에서 나를 통해 기독교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내 속에 다시 새일을 행하시는 분임을.


그래서 '회계사'라는 전문성을 가지게 되었을 때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직업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직업은 ''라는 사람을 만나 어떻게 확장될까?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것을 즐거워 하신다. 일은 그런것이다. 나에게 살아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신 곳이다. 내가 필요한 곳이며 동시에 내게 필요한 무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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