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새 영화 <보통의 가족>는 이탈리아에서 영화화된 바 있는 독일 작가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가 원작으로, 가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제목과 달리 감정적 파고가 몹시 심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허진호 감독 작품을 떠올리면 그와 결이 매우 다르다는 것입니다. 대표작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감독이 보여줬던 애틋한 가족의 모습을 생각하면 <보통의 가족> 속 가족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되어 괴리감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의 냉엄한 연출력과 쟁쟁한 배우들의 서슬퍼런 연기 경연이 더해진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긴장감과 살얼음 아래 얼어붙은 강물처럼 수시로 정신을 얼얼하게 하는 전개로 강렬한 화두를 던집니다.
형제인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의사 재규(장동건)는 지극히 다른 성향을 갖고 있습니다. 형 재완은 돈을 위해서라면 세간의 지탄을 받는 범죄자의 변호도 기꺼이 맡을 정도로 속물적인 반면, 동생 재규는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직업적 사명에 충실하려는 도덕적인 인물이죠. 그래서인지 두 형제는 살아가는 환경도 여건도 다릅니다. 재완은 으리으리한 집에서 재혼한 아내 연경(수현), 전처 사이에서 난 첫째 혜윤(홍예지), 연경 사이에서 난 둘째 딸 사랑과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죠. 한편 재규는 연상의 프리랜서 번역가 아내 지수(김희애), 아들 시호(김정철)와 상대적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공한 커리어와 시부모 간병에 아이 교육까지 다 해내느라 여념이 없는 지수와 집안에 필라테스 기계까지 들여놓을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한 연경의 모습은 그들 각자의 남편과도 닮아 보입니다. 이들 네 사람은 때때로 각자의 아이들은 집에 두고 두 부부만의 저녁식사를 가지곤 하는데, 보통 고급 레스토랑에서 이뤄지는 이 식사의 계산은 재완의 몫이 될 때가 많고 그럴 때마다 재규에게는 불편한 대화가 오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저녁식사 자리가 어느 때보다 불편해지는 날이 찾아오는데, 두 부부의 아이들인 혜윤과 시호가 찍힌 CCTV 영상이 온라인상에 확산되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두 아이들의 끔찍한 범죄 현장이 담겨 있는 이 영상으로 인해 두 가족의 미래까지 흔들리는 상황이 닥치고, 가뜩이나 각자의 가치관으로 갈등하던 이들의 대립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 2024)
<보통의 가족>을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짙은 여운의 멜로 감성으로 워낙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출세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 같은 영화들은 물론 최근에 선보인 역사물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관계마저도 우정보다도 더 진한 감수성을 담아 비출 정도였죠. 그러던 허진호 감독이 처음 만든 본격 스릴러인 이 영화는 예상보다 더 싸늘한 비수를 관객에게 들이댑니다. 그 이야기가 생판 남남이 아닌 피를 나눈 형제, 부모와 자식,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더욱 더 섬찟하죠. 영화의 제목인 '보통의 가족'은 주인공인 재환-재규네 가족이 현재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가족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그들이 끊임없이 지향하는 가족의 모습일 것입니다. 어쨰서 현재 상태이면서도 끊임없이 그 상태를 지향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포지셔닝하는 '보통'의 정의라는 것이 시대마다 달라지고, 그 '보통'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환경도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환경이 지금은 너무나 척박하고 또 야만적이며,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똑같이 야만성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는 냉엄한 진실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만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잔혹하게 펼쳐집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우리가 기대하는 이야기가 별 상관없는 것 같아 당혹스러울 정도이지만, 뜻밖에도 그 이미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벗어나지 않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정통으로 관통하면서 우리에게 묻습니다. 보통으로서의 우리를 정립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과정의 부도덕함에는 눈을 감은 채 성공한 변호사와 명문대에 진학한 자녀 등 자랑스러운 가족의 초상만을 바라는 형 재완과, 지극히 도덕적인 것인지 그처럼 도덕적인 자신의 모습에 도취된 것인지 가족이 맞닥뜨린 고통 앞에서도 성인군자 같은 소리만 늘어놓는 동생 재규. 애초에 서로 맞질 않는 이들의 만남은 불편함을 예고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 번의 저녁 식사 장면은 그때마다 갈등을 촉발시킵니다. 재벌 가족의 식사 장면을 마치 전쟁처럼 그렸던 어느 드라마처럼, <보통의 가족>이 보여주는 두 형제 가족의 식사 장면은 각자의 위신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그들이 벌이는 총성 없는 전쟁 장면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당방위를 가장한 가혹한 공격들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부도덕과 위선은 부끄러움조차 찰나인, 그들이 지향하는 '보통의 가족'의 모습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없고 어른들만이 마주하는 그 현장에서 숨겨두었던 낯뜨거운 내면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고, 이 이야기들은 이 자리에서만 끝날 것처럼 굴어도 그들의 그런 내면은 다음 세대에게도 끔찍한 모습으로 대물림되고 맙니다. 가족애라는 맹목적인 가치가 도덕과 윤리라는 기본적인 문제 앞에서조차 눈이 멀게 되고, 그렇게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키워내야 할 최소 단위의 공동체인 가족이 인간성 파괴의 시작점이 되는 비극이 펼쳐집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도덕적, 윤리적 딜레마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앞에서 감독은 예의 인간적이고 감수성 짙은 시선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아름다운 감정과 장면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내려놓고 건조하고 무정한 장면들을 만들어냅니다.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 2024)
쟁쟁한 배우들이 그 이름값에 걸맞게 '가족'이라는 평범한 울타리에서 일어나는 비범한 격랑을 파워풀하게 보여줍니다. 네 주연배우 모두 기존의 작품들에서 어느 가족의 엄마/아빠/아내/남편 역할로는 좀체 만난 적 없는, 대개 비일상적 환경에 놓인 비일상적 인물을 연기해서인지 그들이 보여주는 엄마/아빠/아내/남편의 모습은 특히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형 재완 역의 설경구 배우는 성공을 위해 양심까지도 포기하면서도 성공한 직업인이자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모습을 놓지 않기 위해 가장된 위엄을 보이려 애쓰는 인물을 묵직한 터치로 보여줍니다. 동생 재규 역의 장동건 배우는 그간 그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일상적 직업인의 모습을 내추럴하게 구현하는 한편 그 안에서 드글거리는 욕망의 딜레마로 뒤로 갈수록 자제력을 잃는 인물을 보여줘 과거 <태극기 휘날리며> 때를 보듯 반가웠습니다. 한편 재규의 아내 지수 역의 김희애 배우는 아들에 대한 일말의 배신감과 두려움, 그러면서도 아들을 지키고픈 모성의 고통을 절절하게 그려내며 극을 휘어잡습니다. 재완의 아내 연경 역의 수현 배우 또한 뒤늦게 가족의 일원이 된 일종의 외부자로서 당혹스럽고도 혼란스럽게 이들을 지켜보는 인물의 모습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앙상블을 완성합니다. 두 부부의 심정을 따라 관객까지도 울화가 치밀게 하는 그들의 자녀, 재완의 딸 혜윤 역의 홍예지 배우와 재규의 아들 시호 역의 김정철 배우 또한 호연을 보여줍니다.
가족이라는 최초의 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는 도덕과 윤리의 파괴는 가족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사회로 그 균열을 뻗어나갑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가족들끼리만 적당히 봉합하고 하하호호 끝낸다고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며, <보통의 가족>은 그런 이야기의 무게를 헤아린 듯 한국 상업영화가 엄두내기 쉽지 않은 충격적 결말에 도달합니다. 피를 보고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내팽개친 채 행하는 이 모든 행위들이 기껏해야 '보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상하 관계에서 우위에 서지 않고 수평적인 '보통의 세상'에서 머무는 한 누구도 그 행위의 결과를 부메랑으로 맞이하는 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결국 보통으로 남기 위해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서슴지 않고 남기게 될 핏자국은 누구의 것일지, <보통의 가족>은 송곳같은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