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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an 04. 2016

개인적인 2015년 영화 베스트 10

한국영화 부문

붉은 원숭이의 해, 2016년 병신년이 밝았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2015년도 여전히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지만 많은 영화들이 큰 힘과 위로가 되어 주었는데요,
2015년 1월부터 12월까지 우리를 찾았던 영화들 중 개인적인 베스트 리스트를 꼽아보았습니다.


혹평이 자자한 영화들을 굳이 찾아보지 않는 편이라 워스트 리스트는 따로 꼽지 않기로 하였고요,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로 나누어 2015년 영화 베스트 10을 꼽아 보았습니다.
제가 본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완성도를 막론하고 보지 않은 영화들은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한국영화 베스트 10입니다.
2015년 1월부터 12월까지 국내 정식개봉된 한국영화들을 대상으로 했는데요,
아래는 그 리스트이며, 간단평도 함께 싣습니다.



10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출연 : 이정현, 이해영, 서영화, 명계남, 이준혁
감독 : 안국진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단면을 어느 한국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무섭고 우습고 슬픈 방식으로 그려낸 영화. 성실하게 살려고 했더니 실성한 사람 취급받는 순수녀의 순도 100% 복수에서는 통쾌한 핏방울과 서글픈 눈물방울이 함께 떨어집니다. 그래서 한편으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좀 난감할 수도 있었을 이야기에 몰입감을 부여한 이정현 배우의 연기는 화룡점정이고요.



9위 <한여름의 판타지아>


출연 : 김새벽, 임형국, 이와세 료
감독 : 장건재


멈춰 있는 지금 그곳에서 공간과 사람들의 역사, 그 흐름을 발견해 나가는 독특한 경험. 쓸쓸한 흑백의 현재로 열었던 영화가 애틋하고 해맑은 오색빛의 과거로 마무리되는 것은, 우리가 서 있는 이 공간과 시간의 의미도 결국 지금만이 아닌 지금에 오기까지의 역사를 통해 완성됨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쓸쓸한 현재 위에 덧대어진 따뜻한 과거를 걷는, 그래서 이미 떠나갔어도 빛을 잃지 않는 지난날의 사랑을 목격하는 경험은 분명 흔치 않습니다.



8위 <대호>


출연 : 최민식, 정만식, 김상호, 성유빈, 오스기 렌, 정석원
감독 : 박훈정


올 겨울 이렇게 쓸쓸히 퇴장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영화입니다. 소재주의에 매몰되거나 관객의 기호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 결과 주인공만큼이나 대단한 아우라를 지닌 영화가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부성애 등 관객의 감정을 손쉽게 자극할 요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느리지만 진득한 전개와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역동적인 동물액션, 무엇보다 감정이입에 손색없는 생명체 구현으로 신화적 카리스마를 영화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물론 이 색깔이 쉽사리 적응되지 않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론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7위 <무뢰한>


출연 : 전도연, 김남길, 박성웅, 곽도원
감독 : 오승욱


어쩌면 한국영화에서 또 만나기 쉽지 않을 느낌의 멜로. 각자가 몹시도 부끄러운 위치에 서 있는 두 남녀, 그래서 너무나 확고한 감정이 스스로를 덮쳐옴에도 불구하고 생계와 존엄의 절실함 앞에 그 확고한 감정마저도 의심하고 꾹꾹 누르고야 마는 불쌍한 인생들의 이야기입니다. 겉은 쓰라리도록 차갑지만 안에서는 피같은 감정이 끓어오르는, '하드보일드' 멜로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 건 감독의 단호한 연출력과 주변의 공기마저 다스리는 듯한 배우들의 연기력입니다.



6위 <소수의견>


출연 : 윤계상, 유해진, 김옥빈, 이경영, 김의성, 장광
감독 : 김성제


'용산 참사'라는 소재의 자극성이나 '법정영화'라는 장르의 진입장벽을 모두 허무는 데 성공한, 메시지 면에서 봐야 할 영화이기 이전에 오락영화로서 볼 만한 영화입니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사실 빤히 정해져 있는 이야기로부터 오히려 감정적 요소를 말끔히 배제한 채, 법정영화로서의 침착성과 합리성으로 사건에 승부수를 던짐으로써 메시지가 갖는 설득력은 오히려 강력해집니다. 메시지에 힘을 주고자 장르를 얄팍하게 이용하지 않고 장르적 특성을 십분 활용함으로써 메시지에도 힘을 실은, 그래서 덮어놓고 몰아세우는 반대세력이 입도 뻥긋 못하게끔 만들 설득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영화입니다. 



5위 <사도>

출연 :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전혜진, 김해숙, 박원상
감독 : 이준익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가져와서는 누구라도 새삼 처음 만날 의미를 발견한, 간결하고도 대범한 역사드라마이자 가족영화입니다. 한국사의 가장 유명한 왕실 사건에 덧붙여져 있던 갖은 함의들을 떼어내 버림으로써 오히려 그 사건이 지닌 의미의 정수를 발견하게 합니다. 영화가 오롯이 집중하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와 그로부터 파생되는 갖은 비극은, 감독의 정갈한 연출력와 이를 악문 듯한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어떤 별난 이야기'가 아닌 '여느 가족의 이야기'로 와닿게 됩니다. 역사 속 사건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까지 이르기도 하는, 어떤 숭고한 의식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4위 <극비수사>

출연 : 김윤석, 유해진, 송영창, 장영남, 이정은
감독 : 곽경택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곽경택 감독의 최고작입니다. 성악설을 믿기라도 하듯 잔혹성과 리얼리티를 앞다투어 강조하는 한국 범죄/형사물의 세계에서 이렇게 '선량한 형사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건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가해자가 얼마나 악독한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뚝심에 가까운 믿음으로 '범인을 잡기 위함'이 아닌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활약하는 주인공들에게 관심을 쏟습니다. 그 결과 영화는 수사물로서 만족했을지 모를 장르적 쾌감을 넘어선, 팍팍했던 시대의 풍경과 그 풍경 한 가운데를 밝혔던 인간의 선의를 길어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부산의 공기, 데면데면한 듯 따뜻한 형사와 도사의 관계까지. '한국 사람들만 좋아할 이야기'가 아닌 '한국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3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출연 : 이레, 이지원, 홍은택, 김혜자, 최민수, 강혜정, 이천희
감독 : 김성호


2014년 개봉작이지만 12월 31일이라는 억울한 시기에 개봉해 올해 순위에 넣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가족영화가, 아니 이런 '모범적인 가족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사랑스러운 에너지를 뽐내며 아역 배우들이 전면에 나서고 관록의 어른 배우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는 가운데, '어른아이'의 위화감이나 아이 눈높이에만 맞춘 어른의 오글거림이 말끔히 사라진 따뜻하고 행복한 세상의 조화가 펼쳐집니다. 덕분에 영화에는 어른들이 뼈저리게 느낄 녹록치 않은 세상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지만, 아픔의 무게를 덜어낸 시선으로 그 아픔을 어루만지는 아이들의 손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볼 때마다 울면서 웃게 될 영화입니다.



2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출연 : 정재영, 김민희, 윤여정, 기주봉, 최화정, 유준상, 서영화, 고아성
감독 : 홍상수


정말 신기하게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나이를 먹을수록 재미있어집니다. 어렸을 땐 이걸 뭔 재미로 보나 싶던 그의 영화를 보며 이제는 별것 아닌 듯한 장면에도 피식하게 됩니다. 전작에서 시간을 토막냈던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같은 시간을 다른 선택을 통한 다른 노선으로 달림으로써 또 한번 인간의 주책맞고 변덕스러운 심리에 대한 일종의 실험을 벌입니다. 말 한번, 행동 하나에 따라 감정의 미묘한 차이는 점점 그 간격을 벌려 가는데, 감독의 무심한 카메라 위로 그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신묘하기 그지없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길 위에서 의미를 만들어가는 인생처럼,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펜 가는 대로 쓰이는 대본 위에서 점점 더 거대한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1위 <베테랑>

출연 :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김시후, 오대환, 정웅인
감독 : 류승완


영화는 대중과 만나는 예술이라고 가정한다면, <베테랑>은 올해 나온 한국영화 중 '대중과 만나는 영화'의 측면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당거래>를 기점으로 '액션영화의 달인'을 넘어 현실반영과 스토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매는 '오락영화의 달인'이 된 류승완 감독은 사실적이고도 명료한 현실반영, 담백하고도 단호한 액션, 뚜렷한 개성의 캐릭터, 여기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야기까지 더하여 더욱 진화된 '류승완 월드'를 선보입니다. 액션을 만들어낼 적의 에너지를 영화 전체에 불어넣는 데 성공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고구마 먹고 체했다가 활명수 먹고 체증 내려가는 기분을 모두 안기는 영민한 영화입니다. 이런 영민함을 바탕으로 천박한 자본주의의 단면 앞에서 똑같이 악동같은 빅엿을 날리면서도, 약자를 향해 '약자가 이긴다'는 막연한 희망은 아니더라도 '약자가 이겼으면 좋겠다'는 선량한 소망을 피력하는 이런 영화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여기까지가 제가 개인적으로 꼽아 본 2015년 한국영화 베스트 10입니다.

다음 브런치에서는 2015년 외국영화 베스트 10을 꼽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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