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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Mar 12. 2022

시대가 변했기에 비로소 꺼내진 60년 전 이야기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레벤느망>

<레벤느망>(L'evenement, 2021)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아니 에르노'의 고백록, 즉 실화를 담은 책 '사건'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레벤느망>은

1960년대 미혼의 몸으로 아이를 가진 프랑스 여성이 직면해야만 했던 위기와 돌파 과정을 건조하고도 긴박하게 다룹니다.

어느 곳에도 구제의 손길을 섣불리 내밀 수 없고 내어주지도 않았던 현실에서 극복의 감동보다 고통이 훨씬 클 수 밖에 없는 이야기는,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해야만 했던 당대 여성들의 절망과 고통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그리고 그 절망과 고통은 어쩌면 현재에 이르러서도 어떤 여성들이 겪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 초반의 프랑스. 작가를 꿈꾸는 대학생 '안'(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이 다니는 대학교는 철저한 금욕주의를 지향합니다.

학생들은 술과 담배 대신 콜라와 껌을 즐겨야 하고, 자유로운 애정생활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당시 사회는 미혼 여성이 아이를 낳게 되면 사회인으로서의 경력은 당연히 끝나는 걸로 여겼고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학업에 정진중이던 안은 어느날 하룻밤의 관계로 임신을 하게 됩니다.

안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히지만, 그 결심을 입밖으로 꺼냈다 하면 의사든 친구들이든 화내거나 못 들은 척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불법적으로 시술을 받았다가 목숨을 잃는 여성 또한 부지기수라는 이야기까지 듣죠.

학교에서도 교수 준비 제의를 받을 만큼 우등생으로 인정 받으며 장밋빛 미래를 꿈꿔 오던 안에게,

이제 남은 선택지는 작가의 꿈을 포기할 것인지, 감옥에 갈 것인지, 목숨을 버릴 것인지만 남은 듯 합니다.

그러나 남은 길이 어떻든 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기로 합니다.


<레벤느망>(L'evenement, 2021)


좋은 영화는 내가 평생 느낄 일이 없는 감각과 감정을 간접체험하게 해 세상을 향한 시야를 넓혀주는데, <레벤느망>이 그렇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감출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임신의 징후는 뚜렷해지는데, 잡힐 듯 눈 앞에 있던 꿈은 멀어져 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벼랑 끝의 여성 앞에서 겪어 보지 않은 제3자가 섣불리 첨언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노골적으로 전시하지 않음에도, 끝내 눈을 질끈 감게 되고 이를 악물게 될 정도로 재현되는 통각을 받아들여야 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똑똑히 지켜봐야 하는 것은, 아직 각성하지 못한 시대에 의해 입막음 당해야 했던

숱한 여성들의 고백이 비로소 각성하기 시작한 이 시대에 이르러 울려 퍼지는 장면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임박해 오는 시간을 따라 초조해져 가는, 거스를 수도 없이 선택을 감내해야만 하는 안의 심리에 집중합니다.

마치 심리 스릴러인 것도 같지만, 스릴러 기법으로 접근했다기보다 안의 속내 자체가 이미 불안과 긴장 투성이인지도 모릅니다.

원치 않았던 출산 대신 간절히 원했던 미래를 택하기로 한 마음의 절박함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어쩌면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할지도 모를 그 유리감옥의 답답함과 공포를 오롯이 홀로 버텨야 하는 상황.

자기 몸과 성에 대한 결정권을 일방적으로 빼앗긴 채 느낄 필요가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야 하는 안의 요동치는 내면은,

좌우로 답답한 검은 여백이 들어차는 1.37 : 1 비율의 화면과 안의 뒤통수에서 안의 시선을 좇곤 하는 카메라로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영화의 제목인 '레벤느망'은 프랑스어로 '사건'을 뜻합니다. 철저히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거대한 사건이기도 하다는 뜻이죠.

한 개인의 삶은 그 자체가 그에게 하나의 우주고, 그 우주가 무너질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일은 충분히 거대한 사건일 것입니다.

안에게 닥치는 손발을 내놓는 것과 같은 절망과 공포가, 외부의 타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판단의 대상이 될 뿐입니다.

어떤 남자 학우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관계하기에 안전한 때 아니냐'며 자기 성생활의 조건으로서 안의 상태를 판단하고,

보수적인 의사는 물론 함께 동고동락한 친구들마저도 안의 처지가 어떻고와 상관없이 안의 의지를 부정한 것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개인을 이해하려는 태도 대신 사회의 강압적인 통념에 개인을 짜맞추려는 관성이 지배하고 있고 거기에 책임은 없습니다.

영화가 철저히 안의 시점을 견지하고 그녀가 행하는 선택과 그 결과를 건조하면서도 끈질기게 쫓아가는 것은,

겪어본 적 없고 겪을 일 없고 겪지 않을 거기 때문에 타인의 권리에 대해 섣불리 정의하며 통제하려 드는 시대와 사람들을 향해

결코 가볍지 않은 그 권리와 결코 대충 규정될 수 없는 그 선택의 무게를 일깨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레벤느망>(L'evenement, 2021)


이처럼 <레벤느망>이 주제의식을 생생하고도 명확하게 구현하게 된 데에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가 조응한 덕이 큽니다.

주인공 안을 연기한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는 절대 과장하거나 호소어린 연기가 아니고도 극을 지배하며 관객을 사로잡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들과 어울리는 한편으로 비밀스럽게 자신의 임신 상태를 체크할 만큼 침착한 성격,

생명의 위협에까지 이를지도 모르는 고통 앞에서 힘겨워 하면서도 그 고통을 끝내 직시하려는 결연한 의지가

강렬한 눈빛 속의 고요한 힘, 절제된 연기를 통해 구현하며 관객 또한 안의 절박한 선택과 결과를 체험하게 합니다.

누구의 손쉬운 판단으로도 그 의미를 규정할 수 없는, '사건'으로서의 이야기임을 관객들에게 설득해내죠.


시대가 비로소 각성하기 시작하면서 <레벤느망>의 이야기는 6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었지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안의 선택이 옳다 그르다의 개념이 아닐 것입니다.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개인의 삶을 가벼이 여기며 권리를 빼앗으려 하는 사회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끝까지 가려는 안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봄으로써 우리는 그 삶과 권리의 무게를 깨달일 것이고요.

어떤 선택이든 한 존재는 살아나고 한 존재는 죽는 것이라면, 적어도 우리가 지녀야 할 것은

숱한 가능성을 직접 마주한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선택이 어느 쪽이든 존중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레벤느망>(L'evenemen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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