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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ul 17. 2022

아이돌로 시작해 아이콘이 된 남자, 그 미완의 영광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2 - <엘비스>

<엘비스>(Elvis, 2022)


<엘비스>는 과작인 바즈 루어만 감독이 9년만에 내놓은 신작이라 기대도 되었지만 그 주인공이 불세출의 팝스타인지라, 이 세기의 뮤지션을 어떻게 감히 영상화하고 누가 감히 연기할까 하는 걱정이 컸지만 결과물은 꽤 걸출합니다. 언제나 화려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었던 바즈 루어만 감독의 손길은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와 더해져, 화려한 만큼 그림자가 짙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일대기를 그리기에 꽤 적합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유랑극단 출신으로 가수 매니저 일을 하며 쇼비즈니스 산업에 눈독을 들이던 톰 파커 대령(톰 행크스)은 어느날 웬 가수 지망생 청년이 멤피스 일대를 달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즉시 청년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긴장을 떨치지 못하는 여느 풋내기 청년 같았으나 무대에 오른 순간 청중을 완전히 장악해 버리는, 정숙하게 앉아있던 여성 관객들에게 '이래도 되나' 싶지만 거부할 수 없는 금단의 즐거움을 선사하고야 마는 그 청년의 이름은 엘비스 프레슬리(오스틴 버틀러). 대스타가 될 재목임을 직감한 대령은 그를 스카우트해 투어를 시작하고, 그의 촉을 따라 엘비스는 미국 전역을 휘어잡는 스타로 성장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수시로 반목하기도 합니다. 흉흉했던 당시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는 엘비스에게 대령은 정치나 사회와는 거리를 두라며 제동을 걸고, 미국 전역은 물론 월드 투어에 대한 꿈을 꾸는 엘비스를 대령은 안전 문제를 들먹이며 통제하려 듭니다. 둘 사이는 점차 멀어지는 가운데, 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스타를 데리고 대령이 품고 있는 꿍꿍이는 무엇일까요.


<엘비스>(Elvis, 2022)


바즈 루어만 감독 특유의 눈을 뗄 수 없는 연출 스타일은 2시간 40분 가까운 긴 러닝타임도 무색하게 합니다.

이야기의 서술자인 톰 파커 대령의 현재부터 엘비스의 어린 시절과 데뷔 초기, 전성기와 말년까지 전기 영화답게 폭넓은 시간대를 두루 그리지만 현란한 시청각적 자극과 편집으로 채워져 있어 기나긴 여정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를 생각한다면 기대를 벗어날 수 있는 게, <엘비스>의 지향점이 그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지향점은 잘 알려진 명곡의 감동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보다 그 명곡의 무대가 실현되는 순간 폭발하는 아티스트의 에너지, 그리고 중독에 가깝게 그에 매료되는 팬덤의 공기를 통해 느껴지는 당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광기 혹은 열기입니다. 실제로 극중 엘비스의 첫 무대부터 해서 몇몇 매우 인상적인 무대 장면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신들린 퍼포먼스는 물론, 지금 시점으로 봤을 때 너무 과장된 것 같아 보일 수도 있을 만큼 강렬하고 힘이 넘치는 청중의 반응이 함께 합니다. 돌비 시네마처럼 음향 환경이 훌륭하게 갖춰진 상영관에서 보게 되면 베이스의 둔중한 진동으로까지 느껴지는 현장의 열기란 대단합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사라지고, 청중이 아티스트에게 보내는 반응이 박수 이상의 구애에 가까운 열광이 되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쇼비즈니스 산업이 시작되던 역사적인 순간을 지금 우리 앞으로 데려다 놓는 것이죠. 사람이 자원이 되고, 그 사람의 재능이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가져다 주는 속성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기원을 그리며, 영화는 자원 혹은 자원을 사용하는 역할로서 그 중심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산업의 빛과 어둠을 모두 담아냅니다.


다리를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골반을 튕기며 스스로도 가누기 힘든 리듬과 사운드를 쏟아내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퍼포먼스는, 이를 접하는 청중의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반응처럼 전에 없이 욕망에 충실한 형태의 대중 문화를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이는 어릴 적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을 접할 때 느꼈던 전율을 있는 그대로 몸으로 표현해 내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에너지였을 겁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 암살, 로버트 케네디 암살 등 당대의 미국은 고된 투쟁과 예기치 못한 좌절이 교차하는 엄혹한 시대 안에 있었고, 그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엘비스는 책임감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톰 파커 대령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전에 없이 극적인 부의 축적에 정신이 팔려 있었고, 그 성공의 광풍은 아티스트가 느꼈을 사회적 책임감마저 지우며 그를 얄팍한 '딴따라'에 머물게 하려 갖은 수를 썼습니다. 이런 산업의 생리로 인해 우리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화려한 엔터테이너로만 기억해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개인의 꿈에서 피어난 꽃을 통제할 수 없는 야망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쇼비즈니스의 이면을 그림으로써, 어렴풋한 전설 속 뮤지션의 이미지로 남아 있던 엘비스 프레슬리에 새삼 사람다운 호흡을 불어넣습니다.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해질수록 꺼진 뒤 시야에 남는 잔상이 더 또렷해지듯, 엘비스 프레슬리가 성공의 정점으로 향해 갈수록 그가 품은 마음과 그가 마주하는 세상의 괴리가 더 커져감을 느끼며 관객 또한 비애감을 느끼게 됩니다.


<엘비스>(Elvis, 2022)


현대 대중에게도 그 이미지가 너무나 강하게 남아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과연 어떤 배우가 만족스럽게 연기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는데, 오스틴 버틀러는 어디서 이런 걸출한 배우가 나왔나 싶게 이를 멋지게 성공해 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곡들을 직접 부르기도 할 만큼 뛰어난 발성, 자신감과 고독을 함께 자아내는 깊은 표정, 능숙한 완급조절과 함께 표출되는 감정으로 전설 속 엘비스 프레슬리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데려다 놓습니다. 한편 엘비스에게 성공과 상처를 동시에 안긴 톰 파커 대령 역의 톰 행크스도 빼어난 빌런 연기로 균형을 이룹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란 결과로 향하는 꿈을 부여잡고 방황하는 청년 엘비스 프레슬리와 대비되어, 얄미우리만치 확신에 찬 태도로 현실을 인식하고 야망을 설계하며 실현하는 모습으로 쇼비즈니스 산업의 속물적 특성을 체화시키죠. 오케스트라처럼 빈틈없는 바즈 루어만 감독의 시청각적 연출과 뜨겁게 맞부딪히는 두 배우의 연기에 힘입어, <엘비스>는 전대미문의 성공을 이룬 아이콘이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은 인간의 연대기로 완성되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발 없는 새' 이야기처럼, 엘비스 프레슬리는 날갯짓이 너무나 드높고 거셌기에 땅을 딛지 못한 새였습니다. 세상을 뒤바꿔 놓을 새로운 산업의 첫번째 증거로서 모두의 주목을 받는 만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고통마저 가려야 했던, 그렇기에 노래할 때에야 비로소 세상과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수 있었던 남자의 짧은 삶은 눈이 시릴 만큼 찬란하고도 먹먹합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화려한 외면 아래 갈증에 허덕이는 인간의 슬픔을 낭만적으로 포착해내는 특유의 연출력으로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은, 아니 멈출 수 없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일생을 생동감 넘치고도 가슴 저미는 이야기로 만들어냈습니다. 절절한 사랑 노래 같았지만 사실 절박한 자기 고백이기도 했을, 그의 마지막 노래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엘비스>(Elvi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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