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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짐니 Feb 25. 2016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이상한 나라 셜록에 입성한 인턴 앨리스의 이야기

2016년 1월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숨만 쉬고 있는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액정화면에 광고 연합 동아리 한기수 선배인 '20기 배은지 언니'라고 떴다. 은지 언니한테 직접 전화가 온건 그때가 처음이라 다소 긴장하며 받았다. 언니는 내 근황을 물었고, 그냥 백수라며 멋쩍어하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본론을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셜록에서 일하지 않을래?


셜록. 반년  전쯤 페이스북을 통해 두 명의 동아리 선배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셜록이란 작은 광고 대행사를 차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단하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내가 셜록에 대해 아는 전부였고, '왜 이름이 셜록이지? 언니들이 추리물 덕후인가?' 같은 사소한 정보도 알지 못했다. 셜록이 작은 회사이고 언니들에게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셜록이 탄생할  쯔음부터 나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실, 언니들에게 셜록과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취준 생활로 인한 심신의 피폐함이 절정으로 치닫은 상태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던 말이 "여유가 없어 보인다"일만큼 마음엔 서슬 퍼런 날이 서있었고, 몸은 불어버린 국수 면발처럼 퉁퉁했다. 2015년 하반기는 참 나에게 아팠다. 캄캄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여름에 국내 메이저 광고 대행사에서 인턴 생활을 했지만 우수 인턴이 되지 못해 그 회사와 인연이 끊긴 순간부터 자존감이 하락했다. 이후, 다른 대행사의 서류 광탈과 줄줄이 이어진 면접에서의 고배는 5년 동안 쫓아온 광고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라는 지독한 자기 의심이 따라오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입사 지원 서류를 통과해도 면접에 가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타로 메이저 카드 중 하나인 '광대'카드의 한발 앞에 낭떠러지를 둔 광대처럼 아슬아슬했다.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셜록에서 일 해보지 않겠냐는 그 제안을 수락했다는 말씀! 의욕상실 상태의 내가 셜록에서 일을 하겠다고 한 이유? 단순하다. 재밌을 것 같아서! 


전화로 셜록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건 아니었지만 언니에게 셜록이 하는 일을 들으며 흥미가 생겼다. 상자에 갇혀 바다 깊이 던져졌던 광고에 대한 열망이 꿈틀꿈틀 수면 위로  올라왔달까. 여기에  한몫 두둑이 더해졌던 건 두 언니에 대한 신뢰였다. 그렇게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배울게 많은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해 수줍게 좋아해왔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잘 다니던 그리고 소위 잘 나가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하는 일은 어떤 일일지 궁금했다.  


그래서 바로 하겠다고 했다. 생각해보고 연락 줘도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전화가 끊기기도 전에 '하겠다'고 확정을 지었다. 궁금한 건 해봐야 아니까.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라, 셜록


셜록은 정말 '이상한 나라'였다. 첫 출근 날, 나의 두 대표들은 출근 시간이 10시니까 넉넉히 10시 반 까지 오라고 얘기했다. 응? 이상했다. '나의 성실성을 시험하는 건가!' 싶어 9시 50분에 갔다. 아무도 없었다. 10시 땡 하자 언니들이 한 명씩 왔고, 입을 모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왜 이렇게 성실해!"


이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 다니던 메이저 대행사의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정해진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지만, 8시 전에 도착해야 하는 것'이 인턴 사이의 불문법처럼 정해져 있었다. 8시 10분에 가도 내가 제일 늦게 와 지각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일찍 와서 혼이 날 수도 있다니! 출근 시간에는 관대해도 퇴근시간은 엄격하고 칼 같은 것이 셜록이었다. 일이 빨리 끝나면 더 일찍 보내줄 때가 더 많았다. 그렇다고 일이 없었느냐? 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다. 셜록은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었으며 (자세한 업무는 셜록에 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결코 작은 회사라고 얕볼 곳이 아니었다. 셜록의 힘은 '집중'에 있었다. 직접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일할 땐 일하고 쉴 땐 쉰다'의 마인드가 깔려있었다. 셜록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나라였다.


내가 셜록에서 배운 것 


셜록의 구성원은 자신들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멋있게 일하고 있었다. 꼬꼬마인 나에게도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이 계속 주어졌다. 콘텐츠를 기획해서 가져가면, "너 콘텐츠 자판 기니? 왜 이렇게 잘해? 이대로 가자!"의 어마어마한 칭찬으로 나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고, 아이디어를 내보라 해서 내면 "너 천재니? 뭐 하다 이제야 왔어!"라며 결국 나를 춤추게 했다. 의견을 말하는데 눈치 보이지 않아 더욱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콘텐츠 기획부터, 홍보 기사 초안 작성 등 '처음'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즐거웠다. 


언니들과 일하는 두 달간의 시간은 낮아진 자존감으로 살짝 부러진 나의 날개를 고치고 더 풍성한 깃털을 달게 된 시간이었다. 나는 셜록에서 '즐겁게 일하는 법'을 배웠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나를 얼마나 성장시키고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셜록을 다니며 큰 안정을 찾았다. 희박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언니들을 보며 잊었던 열정의 심지에 불이 다시 붙었다. 안정과 행복 그리고 열정. 이 충족시키기 어려운 요건을 만족시켰으니 나에게 셜록은? 신의 직장이라 말하고 싶다. 




이상한 나라와 잠시 헤어지는 엘리스

나는 잠시 셜록을 떠난다.  앞서 가다 돌아왔던 길 혹은 갈까 말까 고민했던 길에 도전해보기 위해서이다. 언니들은 항상 나에게 '더 큰 좋은 기회가 있다면 잡아! 갔다 와. 보내줄게'라고 말하곤 했다.  떠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서글프지만, 나는 정말로 셜록을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아쉬움을 접어 두려 한다. 더 다양한 경험을 쌓고 더 레벨업한 앨리스가 되어 다시 셜록으로  금의환향하고 싶다. (돌아온 탕자가 되면 어떻게 하지.) 


아무튼 당분간 앨리스 인턴은 셜록의 일원이 아닌 셜록의 팬으로 살아가려 한다. 아직 공식적인 셜록 팬을 본 적 없으니, 오늘부터 내가 셜록의  001번째 공식 팬임을 공언하며 소소히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잠시 안녕, 나의 이상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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