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3 공유 376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전문가의 독서법, 2번 읽기
by 진랩 Oct 04. 2017

오늘 만난 사람에게 책에 대해 말하라

가장 쉽고 간편한 아웃풋, 말하기

“오늘 가고 싶은 회사에 합격했어요.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입니다!”


이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 S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 일하는 동안 디자인에 대한 주관이 생겼고, 덕분에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면접관과의 대화가 수월했다고 말이다.


처음 S를 만났을 당시에는 2년 차 디자이너로서 비전이 없고 자신감이 부족했다. 디자인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디자인 회사로 취업한 케이스였다. 이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어쩔 수 없이 다시 디자인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S는 그림에 대한 재능과 디자인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무엇이든 받아들일 만큼 태도 역시 좋았다. 다만 일의 방향과 디자인적 사고방식에 대한 조언이 필요할 뿐이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결과가 확연히 눈에 보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은 친구들의 경우 자신의 재능과 감각이 부족하다며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즐겁게 일하기 위해 디자이너가 되었는데 괴롭게 디자인하는 모습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상당수의 디자이너들이 작은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선배나 사수를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수가 있는 회사에서 일하더라도 오히려 잘못된 습관과 태도를 물려받아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못한 경우도 많다.


나는 S가 스스로 가능성을 한정 짓지 않고 앞날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회사에 출근하면 은근슬쩍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책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면
자연스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책 목차 좀 봐봐. 완전 소름! 디자이너들이 흔히 갖고 있는 편견들이 다 들어있어.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신화, 디자인은 예술의 사촌이라는 신화, 남과 다르면 좋은 것이라는 신화... 우리가 맨날 하던 얘기잖아. 내용 엄청 궁금하지 않아?"


“요즘 기록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이 꽤 괜찮아. 내용이 제목과 목차에 충실하거든. 저자가 자기 경험을 많이 담고 있어서 서점에서 보자마자 바로 사버렸지 뭐야. 근데 이 책은 좀 아쉬워.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이 너무 많고 80페이지까지 하나마나한 얘기만 늘어놓고 있더라고."


"혹시 이 책 읽어 봤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볼만한 브랜드 매거진이야. 매번 다루는 주제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지는데 그때그때 난이도랑 완성도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번 호는 구성이 아주 좋아."


오늘 읽은 책만이 아니라 어제 읽은 책과 앞으로 읽을 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지금 내 관심사는 무엇인지, 왜 그 책을 선택했는지, 어떤 부분이 좋고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이야기했다. S가 업무상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해.” 또는 “하지 마.” 같은 직접적인 말보다 관련된 책의 내용을 말하는 형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S는 주말에 도서관에 갔다 오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한쪽이 아닌 서로가 책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게 되었다. S는 6개월 만에 업무력과 사고방식 면에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디자인의 방향을 이제 알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 보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우리나라 성인들의 독서량이 적은 편이라고 하지만 디자이너의 독서량은 특히 더 심각해 보인다. 그렇다고 강제로 책을 읽으라고 말하거나 독서 토론 세미나를 주최하는 건 전혀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이끌면서 일, 태도, 사고방식에 독서가 미치는 영향을 '느끼게' 해야 한다.


'책 자랑'은 독서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에게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의무나 강박이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넘쳐흘러 밖으로 분출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언제나 즐겁다. 영화감독 장진 역시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독서를 즐긴다고 한다.


“독서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거예요. 내가 읽은 책을 자랑하는 일, 그게 독서의 가장 큰 재미라고 생각해요. ‘나 차 바꿨어.’, ‘나 어디 다녀왔어.’라는 자랑보다 '나 어떤 책 읽었어.' 하는 책 자랑이 귀엽잖아요. 사실 훌륭한 거죠.”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게 취미라는 영화감독 장진. 책 <지식인의 서재> 중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을
읽어주는 것으로 시작하자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의 '책에 대해 말하기'도 재미있다고 느낀 부분을 읽어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신입사원 시절, 하루는 출근하자마자 입사 동기들을 모아 놓고 책을 읽어주었다. 리처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이었다. 이 책은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갈매기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갈매기들이 사람의 언어로 진지하게 대화하는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동기들에게 신나게 읽어주면 책 보다 내가 읽어주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당시엔 내용보다 표현을 전달하는 게 즐거웠다. 여러 번 읽기도 했지만 즐겁게 이야기했던 경험 때문인지 갈매기 조나단의 이야기는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책 <갈매기의 꿈>


시간이 흘러 독서력이 향상되고 업무상 경력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주제별로 책을 읽게 되었다. 당장의 고민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찾아 읽다 보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이 마치 내 생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친구에게 책에서 본 내용을 마치 내가 생각해 낸 것처럼 말하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직 주체적으로 판단하며 책을 읽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지금은 나름의 기준으로 저자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독서를 하려고 노력한다.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같이 읽기 때문에 해당 주제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책 사이의 관계와 장단점을 파악하며 읽는다. 한 권의 책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즐겁지만 여러 권의 책의 관계, 완성도, 장단점을 설명하는 것도 즐겁다. 때로는 한 줄의 문장을, 때로는 한 권의 책을, 때로는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자. 다채로운 대화가 된다.


때로는 한 줄의 문장을,
때로는 한 권의 책을,
때로는 하나의 주제를 설명하자


'책에 대해 말하기'는 가장 쉽고 간편한 2번 읽기 독서 방법이다. 다른 도구가 필요 없고 옆에 사람만 있으면 된다. 다만 둥글둥글한 표현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재밌었어."가 아니라 "이 책에 ○○라는 구절이 ○○해서 인상 깊었어." 같은 표현이 좋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다음과 같이 생각 이상으로 크다.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이 정리된다.

반복해서 상기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망각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

눈과 입을 통과한 책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책이 된다.

드라마나 연예인 이야기가 아닌 생산적인 이야기로 대화의 질이 향상된다.

주변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하면서 책을 읽고 싶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책에 대해 말하기'는 가장 쉽고
간편한 2번 읽기 독서다


오늘 만난 사람에게 읽고 있는 책에 대해 말하라. 한 명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대신 책 읽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다. 혹시 내가 가진 정보를 나누어 주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면 전혀 걱정할 게 아니다.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발산'하는 사람을 절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keyword
magazine 전문가의 독서법, 2번 읽기
디자인하는 책덕후
jin-lab.kr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