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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Apr 27. 2024

남편의 생일


남편의 생일이 코 앞이다. 며칠 전부터 신경이 쓰인다. 지난주가 결혼기념일이었는데 남편만 선물을 준비했다. 11월에 있는 나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합해서 워치준비한 것이다. 남편돈이 내 돈이고 내 돈 이 내 돈이라고 농담인 듯 진담으로 세뇌시켰다. 워치살 돈이 아깝게 느껴졌다. 굳이 안 사도 된다 하였는데 개인 돈으로 길래 마지못해 알았다고 했다.(여름도 안 왔는데 생일포함 너무 하지 않나;)




내일이 생일인데 애간장만 타고 아무것도 준비된 게 없었다. 음식을 해줄까 검색도 해보았지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벤트를 못 해줄 거면 요리라도 잘하든가. 둘 다 소질이 없다. 심이 없다는 게 더 적확하다. 연애 때 세포를 겨우 끄집어내 보려 애쓴다.  남편 생일에 현관이벤트를 해주었다. 하루 만에 떼어내기엔 아까워서 그대로 두었더니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남편은 근할 때 매일이 이벤트였겠지?(나만의 생각)


결혼기념일도 그냥 넘어간 탓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냥 자려니 뭔가 허전하다. 아침 출근길에 작게라도 미소 지을 수 있길 바랐다. 긴 편지는 할 말이 없고 짧게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밋밋하다. 화려함 따위 없다. 늘 고마워는 진짜 고마워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이 가는 동선마다 붙여두었다. 안방거울에 두 개 정수기에 하나 나가기 전 중문에 하나 현관문에 하나 붙여두었다. 내가 자는 사이 보길 바랐다. 마주치면 민망하니까.


휴무날이라 퍼질러 자려다가 생일 아침인데 모른 척할 순 없었다. 간단하게 주려고 일어났다가 남편과 마주쳤다. 아무 일 없는 듯했다. 달걀을 굽고 파인애플 오렌지, 방울토마토를 접시에 담았다. 달걀 구울 때부터 배에서 신호가 왔다. 급했다. 달걀에 케첩으로 하트 해줘야지 생각만 하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포스트잇 말고 현금으로 달라는 소리가 환청으로 들리는 듯하다.




오전에 공원을 걷던 도중 남편이 저녁에 나가서 먹거나 간단하게 시켜 먹자고 하여 고마웠다. 음식 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하는 배려였다.


여섯 시쯤 퇴근하겠거니 하고 여유 있게 글을 쓰고 있었다. 둘째가 하교하고 다이소에 간다고 한다. 아빠 생일에 꾸밀 풍선을 산단다. 다른 건 몰라도 미역국은 끓여야지 했다. 네시 반에 소고기를 사러 시장에 갔다. 요리할 것도 아니면서 두 팔 무겁게 집으로 왔다.  

국중에 가장 쉬운 게 미역국인 것 같다. 나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으니. 간을 보는데 자꾸 고개가 기울어진다. 이 맛이 맞나? 맛 내는 데는 마늘이지. 다진 마늘 한 스푼 국간장도 두 번 두르고 30분 넘게 끓였다. 소금도 한 꼬집 넣었다. 계량 없이 손대중으로 한다는 것이 이 느낌인가!


퇴근 시간이 당겨졌다는 전화에 둘째랑 같이 마음이 급해졌다. 초6 딸은 풍선 불고 나는 미역국을 끓이며 샐러드를 만든다. 마침 근처에 사는 친언니가 제부 생일 소식을 알고 온다고 했다. 치킨 두 마리와 함께 등장한 언니는 풍선 부는 것에 동참했다. 남편이 피자도 시켰다. 6인용 거실테이블이 가득 찼다. 언니와 남편은 맥주를 마셨다. 금주 중인 나는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첫째가 학원에서 돌아와 다 같이 케이크를 불었다. 내가 준비한 하트 꽃다발을 주었다. 그냥 주면 서운해할 것 같아 현금 십만 원을 꽂아 주었다. 기대에 찬 눈으로 풍선을 요리조리 다. 더 찾아봤자 없다.

 

초 많이 꽂기 싫다고 하나만

다음에 맛있는 음식 해줄게라며 장담하지 못한다. 내가 끓인 미역국이지만 맛있어서 뿌듯했다. 해줄 수 있는 선에서 정성을 다한다.




어릴 때의 생일은 특별한 날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더 의미를 둔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도 남편도 생일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남편 맞지?)


생일 전 날 시어머니가 잠시 들리셨다. 평소 엄마에게 무뚝뚝한 남편이 "내 낳아줘서 고맙다"며 짧게 한마디 하는데 어머니는 물론이고 나까지 코 끝이 찡해졌다. 건강하게 태어나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성장한 자녀가 본인의 생일에 엄마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순간 어머니가 부러웠다. 나도 나중에 이런 말 들을 수나 있을까? 태어나게는 했지만 크는 건 알아서 컸다고 하면 어떡하지? 아빠가 할머니에게 말을 전할 때 아이들이 옆에 있었다. 아빠 하는 거 봤지? 라며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삼켰다. 저 말을 듣는 것보다 내가 해야 할 몫이 더 크게 다가왔다. 어머니를 보면 그러했다.


아이를 낳아 보니 생일날 부모님이 더욱 생각이 난다. 열 달 동안 아이만 생각한다. 태어나는 순간 얼마나 고생하였을까. 얼마나 기뻤을까. 그 어떤 선물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존재만으로도 축복인 날이다.  순간이 있었기에 자라면서 애먹이는 건 다 감안할 수 있는 것 같다.


생일 별거 없지만 가장 큰 별거는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당사자는 부모에게 나는 남편에게 굵고 짧은 마음을 표현한다. 그거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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