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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이반짝 May 12. 2024

행복이 바로 옆에 있었다


토요일 두시 퇴근 후 우리 가족은 포항으로 출발하였다. 오랜만에 콧바람을 쇠기 위해서였다. 초6 둘째는 장거리여행을 원한다. 그래야 세븐틴 노래를 오래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늦게 도착할 것을 감안하여 한 시간 반 거리면 충분했다. 둘째는 들의 노래가사를 줄줄 외우고 파트별로 누가 부르는지 맞췄다. "와~우리 온이는 기억력이 이래 좋네. 다 외우네"라고 하는 순간 로봇 같았지만 잘 참아냈다(공부를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겠노라는 의식의 흐름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이른 저녁을 먹고 들린 바닷가는 시원한 바람을 안겨주었다. 자주 볼 수 없는 바다이기에 반가움은 배로 와닿는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다. 힘차게 들어왔다가 스르르 빠지는 파도물결이 간지럽다. 조개와 돌멩이, 깊게 물든 노을과 바다만 있어도 아이들과 한참을 머물렀다.




두 딸의 웃음소리 때문 에라도 나오게 된다. 기분이 좋으니 사진도 잘 찍혀준다. 표정이 난리다. 딸의 안티는 아빠다. 그렇게 좋다고 찍어놓고 딸아이의 얼굴을 순간포착 확대하여 굴욕사진을 만든다. 보자마자 빵 터졌는데 어디 내놓을 수가 없네. 우울할 때 들여다보면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다.

연오랑 세오녀테마공원


바로 집으로 가기 아쉬워 한 군데 더 들리기로 했다. 처음 와 본 곳이라 새로웠다. "와~~ 여기 너무 예쁘다" "얘들아 여기 봐 바" 카메라 들이대기 바빴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곳은 홍콩이다.(홍콩 근처도 안 가봤지만)

포항 운하관

홍콩 야경 아니 포항 공장 배경 실컷 만끽하고 돌아서니 아기자기한 공원이 나왔다. 폰이 호주머니에 들어갈 려가 없다. "우리 가족 다 F야?" 둘째가 물어보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오랴. 쳐만 지나도 장미향이 득하다. 바 따라 장미덩굴이 서있다. 색깔별로 찍어대도 아쉽다. 걷기만 해도 분위기에 흠뻑  수 있었다. 향기 맡으려 가까이 가는 순간 콧등에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오빠 비 온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두 방울 연이어 다. 더 나아가서는 안됨을 직감했다. 발길을 돌리는데 네 명이서 동시에 너나  것 없이 냅따 뛰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졌다. 비를 맞아도 누구 하나 짜증 내는 이 없이 얼굴에 미소가 한아름이다. 비 맞으며 뛰는 게 이렇게 즐거울 일인가.

루가 오늘 지금 순간이 복에 다. 가끔 감사함을 망각하고 들어가서는 안 되는 샛길로 방향을 틀 때가 있다. 그 길이 혹시나 하는 지름길인줄 알고 고개를 내밀다가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버린다. 부정적인 생각은 한번 꼬리를 물면 쉽게 놔주지 않는다. 원래 하던 걷기와 독서, 가족들과의 시간을 놓지 않으려 한다. 작은 일상의 행복이 바로 옆에 있었다. 


지금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서 사라질까 봐 불안다. 마음먹는다고 바로 바뀌진 않겠지만 미리 사서 하는 걱정은 접어두려 한다. 오늘의 감사함을 온전히 느끼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앞서 걱정이 내일의 불안을 당겨온다. 그냥 지금이 감사한 거였다.




운전하는 남편이 졸리지 않도록  과자를 입에 물려준다. 넙죽 잘도 받아먹는다. "어머니 웬일로 안 자고 있네" 고 짧은 여행 하나하나 담아내기 분주하다. 출발이 늦은 감이 있었지만 어디론가 가고자 하는 마음이 다 같이 동한 것도 고마웠다. 아이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꾸 빨리 자란다. 그 속도는 여차하면 뒷걸음친다. 잡히지 않는 순간을 카메라 셔터로 글로 남길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라면 한 번이라도 더 찍고 써야 한다.


뒤돌아보니 딸들이 재잘거 노래를 떼창하고 또 싸우면서 그 자리를 채운다. 옆에는 든든한 남편이 비를 뚫으며 도로를 달리고 있다. 두운 빗길도 비를 막아주는 터널도 가족과 함께 통과한다. 앞을  나아간다. 생각은 잠시 다른 곳을 갔다 올지라도 자리는 지켜내야 한다.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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