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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Sep 05. 2022

미국엔 공무원 시험이 따로 없다,  진짜예요?

설마설마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서 공무원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던 어느 날, 미국엔 공무원 시험 자체가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한국도 지금은 공무원 시험이 워낙 인기가 없다고 하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을 포기하면서까지 고등학교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인기 직업군에 속한 것이 바로 '공무원 되기'였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란 말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일 정도로 한번 들어가면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이상 퇴직하기 전까지 절대 해고당할 수는 없다는 꿈의 직장이었다.


대학 입시를 거치면서 더 이상 시험이라는 제도에 얽매이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보편적인 문과나 이과를 선택하지 않고 특별해 보이는 예대를 택한 이유도 간단하다. 평생 앉아서 공부를 하는 미래보다는 자유롭게 내가 좋아하는 일만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문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나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직업군이었고 그것은 곧 수많은 시험의 경쟁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정부 기관에서 일을 하기 위해 사법고시나 국가고시, 또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는 것은 도전정신이 강한 사람들만이 선택받게 되는 높은 성지 같은 개념적 지위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한국의 이러한 국시를 비롯한 공무원 시험제도는 공무원이라는 타이틀 자체에 대한 존경심이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특정한 시험을 거친 특정인끼리의 집단은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을 거라는 예상을 낳았고 전 세계가 모두 그러한 절차로 많은 사람이 도전하고 선택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더랬다.



미국에 와서도 나의 이러한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민 동기로 20여 년을 가장 가까운 지인으로 지내는 부부의 직업이 한국에서 공. 무. 원이었다는 사실 자체로 그들을 대하는 나의 존경심은 높은 달을 보는듯했다. 고급 공무원이 아니라고, 월급도 쥐꼬리였다고, 00동 동사무소에서 진상 주민들과 지긋지긋하게 싸우다 아이를 핑계 삼아 미국으로 사표를 던져버리듯 내던지고 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난 그런 어려운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공무원으로서 누구나 선망하는 철밥통 공무원이었던 그 부부의 던져버린 사표가 그리 아까울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사법고시를 패스한 나랏님 밥을 먹는 변호사나 검사 그리고 판사의 지위는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높은 지위의 나랏님들이고 국가고시를 거쳐야만 하는 의사의 직업군은 감히 내가 생각할 수 없는 지식인의 끝을 세우는 높은 지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 딸들에게 같은 여자로서 여자가 의사 가운을 입는 모습이 제일 부럽더라 또는 미국에 살려면 변호사  명은  있어야 한다더라라는 말로 의사의 길이나 법조계의 길로 유도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아무리 스스로가 꼰대가 아니고 요즘 아이들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버무려 버리는 기성세대가 아니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이나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군을 아예 달리 생각하라는 아니 모든 직업의 위대함에 같이 버무릴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미국의 공무원은 시험제도가 없단다


내 딸은 심리학이 전공이고 부전공으로 정치와 철학을 공부했다. 학기 중에 정치의 일번지인 워싱턴 DC에서 공부를 했었고 그 과정에서 딸의 이름이 자동적으로 정치를 하는 기관 어딘가에 올라가 있었고 대중에게 채용공고를 내기 전 인턴 자격이 주어지는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물론 서류 심사가 까다로웠는데 국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정부가 아니고 연방정부이기에 미국 시민권자라는 자격조건이 있었다. 서류를 통과하고 각각 다른 사람과 3번의 인터뷰를 줌으로 하고 2시간 동안 하나의 이슈에 대한 에세이를 쓰라는 필기시험을 거쳤다.


딸은 임시직이지만 시험 없이 그 기회를 얻었다. 인턴으로 들어간 국회의 홍보실에는 여자만 6명으로 모두가 인턴부터 시작했음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한다. 공석이 있을 때마다 좋은 사람 추천을 해달라는 식으로 인원을 보충한다는 말을 들었단다. 시간과 때가 맞으면 정부의 일을 갖게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 가는 것이고.. 한마디로 낙하산?


그럼, 공무원 전체가 낙하산이라는 말인데 이게 정말일까? 답은 'YES'


예를 들어 도서관 사서를 뽑는다는 공고가 난다. 도서관도 정부의 월급을 받는 직업이니 공공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력서를 내기 위해 온갖 서류를 동원하고 개인의 모든 정보를 가져다 받치고 하염없이 기다린다. 혹시 나에게 기회가 주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다. 거기 질문에 이런 글이 있다.


당신은  기관에 누구를 알고 있습니까? 혹은 누가  기관에서 추천을 했습니까? 여기에 대답은 당연히 NO다. 이민자이기 때문에 도서관에 아는 사람이 없고 누가 추천할 사람도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공공기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질문이고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당연히 NO라고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한마디로 대놓고 낙하산이라는 말을 굳이 들을 일이 아니다. 하나마나한 질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 질문의 답이 너무도 중요하다. 당신이 아는 누가 이곳에 있는지, 누가 당신을 추천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채용할지 말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한국과는 사회적 구조가 달라도 너무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밖에 있다. 하지만 자세히 이러한 과정을 들여다보면 왜 그런지 그리고 한국과는 무엇이 다르게 작용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첫째,  과열경쟁이 없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다. 무엇이든 한 번에 결론이 나는 한국과는 다르다. 입시시험도 한 번이 아닌 10번 스무 번 원하는 대로 시험을 볼 수 있다. 대학을 들어갈 때 전공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고 전공을 선택했다해도 들어가서 얼마든지 쉽게 의대에서 법대로 전과를 해도 된다. 미술 혹은 음악을 전공한다 해도 의대로 전공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 또한 내 노력 여하에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이번해에 정치학과를 간다해도 졸업할때는 같은 인원이, 같은 동기가 졸업하리라는 기대는 불필요하다.


사회에 진출해도 마찬가지다. 일을 하다 40,50세에 다시 공부를 한다한들 그 누가 뭐라 하겠나? 그래서 정부의 일을 하는 것 또한 누구나 원하면 그때그때 할 수 있다. 한국처럼 시험을 보고 나면 쓸데없어지는 지식을 위해 몇년에 걸친 시간을 쏟아붓지 않아도 된다. 노량진에서 공부하고 있는 수많은 공시생은 그 중 단 명몇을 위한 희생자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국회에서조차 알음알음으로 채용을 하니 다른 일은 어떠하겠는가? 물론 공고가 나긴 한다지만 추천서가 제일 큰 입김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미국인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인맥이 그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다. 이는 누구나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에 큰 의미를 둘 수 있지만 역으로 누구에게나 하고자 한다면 공평하게 열려있다는 말도 된다. 미국의 시민이 아니어도 주정부의 직업에 응모할 수 있고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의 추천으로 일단 사람을 거른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거 같다.


둘째, 연공서열이 없다


한국의 고시나 시험제도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 세력이 바뀌면 새로운 세력으로 교체되는 진통을 겪는다. 정부의 일을 하는 자는 공평성에 입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당의 입김으로 개인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고 합격한 년도의 기수에 따른 폐해가 너무도 크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0기 사법연수생 하면 그 기수끼리 단합해 세력을 확장하고 그 외의 대학이나 기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단단함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한국도 고시가 폐지되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공서열은 조직 내에서 권위주의를 팽배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되기 쉬운데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대표적인 예가 바로 고시다. 집단을 결속시키고 협력을 조장하는 사회규범이 필요했던 전쟁 후 반드시 필요한 줄 세우기식 문화였다면 지금은 없어져야 할 제도임이 분명하다. 군대식 서열과 한 명을 위한 다수의 희생을 더 이상은 간과할 수 없다는 지금 세대의 외침이기도 하다. 동기문화가 대표적 예다.


얼마전 교육부에서는 5살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계획서를 국민의 의견하나 없이 내놓았다. 대를 이어 오랫동안 연구하고 면밀한 조사로 100년을 내다봐야 할 교육정책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내놓는다는 건 정부가 바뀌면 가차없이 법을 바꾸어 버릴수 있다는 좋은예이다. 선생님이 되기 위한 임용고시 또한 사법고시처럼 없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되기 위해 피나는 과열경쟁으로 막상 교편을 잡있다한들 공교육이 무너진 현재, 누구를 위한 시험제도인지 생각해봐야한다. 참고로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교사가 되기위한 수업을 학부에서 1-2년 정도 이수하면 된다. 사범대학도 없고 임용고시라는 시험 자체가 따로 없다.


셋째, 1등보다는 10등이지만 다양함이 중요하다


결국 고시에 합격한 윤 대통령만 보아도 그 폐해를 알 수 있다. 사법고시를 위해 9수를 받치는동안 피 끓은 청춘을 오직 고시라는 공부에만 매달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놓쳤다. 법전만 외우느라 인생을 헤쳐 나아가야 할 경험치도 만들지 못했고 실패를 거듭한 낙오자의 모습으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점점 왜곡된 시선으로 점쳐졌으리라.


미국은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봉사를 했는지 어떤 기관에서 일을 했는지 했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했는지를 보며 그 사람의 인성과 그 사람이 어떤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게 된다.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했다면 시간을 소홀히 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게 보편적인 시각이다. 9수를 하는 동안 먹고 자는것 외에는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을 했다고 한다면 미국에선 아무리 그가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한들 입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입시제도를 보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12학년 마지막에 학교 등수를 단 한번 발표한다. 12년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표된 고등학교 등수가 입시 점수에 들어갔던 관례마저 몇 년 전부터는 없어졌다. 등수가 결코 학생을 판단하는데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안에 숨은 다른 노력들을 보자는 전략이다. 그래서 누구든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을 찾고 그 일에 열심인 그런 사람을 키우고자 한다. 공부한 사람만 그리고 똑같은 시험으로 한 번만 기회를 주는 것으로 서열을 나눈다는 것이 공평한 기회를 오히려 뺏는 일이다. 정부의 모든 일에 왜 사법시험처럼 달달 외우는 법전이 중요한지 알지 못하겠다.


미국은 정치학이나 법과 관련된 학과를 21세에 졸업해도 로스쿨에 들어가는 평균 연령은 26세다.  5 동안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스펙은 공부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곳에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쌓았느냐가 좋은 로스쿨을   있는 지름길이다. 패션 모델을 한다거나 아프리카 여행을 한다거나 동물을 돌보는 일을 한다거나 다른 누구도   없는 나만이   있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게 후한 점수를 준다. 왜냐면 머리가 좋고 훌륭한 학교를 나온 사람은 많다. 중요한건 모든 사람과 다른사람 그래서  학교 빛내줄 사람, 더나아가 나라나 이세계를 변화시킬수 있는 인재를 발굴하고자 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점수만 높이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센님 스타일은 절대 사양이다. 윤 대통령이 만약 9수를 하는 동안 노동자들과 함께 땀을 흘렸고 집에서 기르는 이쁜 반려견이 아닌 아픈 동물들을 위해 숨은 봉사를 했더라면 지금처럼 내로남불 같은 어리석은 대통령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나 또한 연공서열에 발목이 잡혀있었음을 시인한다. 이민자의 아이들이 이곳에서 크지 않았다면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았음이 분명하다. 1등만을 위한 높디높은 샛별을 따기 위한 장벽은 미국에 살면서 한층 낮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서쪽해가 질무렵 그저 주인이 밥을 주기만을 기다리는 묵묵한 강아지처럼 황석영 작가님의 밥바라기별이 문득 생각나는 귀뚜라미가 소란스런 깊은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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