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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08. 2022

일하러 왔니? 먹으러 왔니?

오페라를 핑계로 떠나는 이탈리아 미식 여행 | 볼로냐(1)

티젤레(tigelle) 한 바구니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아무튼 나는 왜 이태리 올 때마다 그 전날이 원고 마감일까? 물론 내가 자초한 일이다. 기한은 조율할 수 있었으니까.

"제가 7일에 이태리 가니까 그전까지 보내드릴게요"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지 말걸....

덕분에 이태리로 출발하기 전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아마도 이 벼락치기 근성은 이번 생에 고치긴 힘들려나...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태리, 볼로냐 공항이다.

24시간 넘게 깨어있다. 지난밤 1시간마다 마신 커피 덕에 버티는 중이다.


에어비앤비로 잡은 숙소는 볼로냐 시내 한복판이었고, 친절한 공항버스 아저씨가 '마르코니 Marconi'로 일단 가려고 알려줬다.

(무뚝뚝한 독일에 있다가 친절한 이태리 사람들 보면 꼭 우리나라 온 듯하다.)


마르코니에 내려보니, 아... 여기서부터 시내 중심가 시작이구나 싶었다.

사실 구글맵이 알려준 바로는 마르코니에서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했지만 숙소까지는 1.3킬로...!

음... 이 정도는 걸어보자.

(걷는 거 무지 좋아함)

사실 아직 체크인까지는 시간이 좀 있고, 친절한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일찍 와도 된다고 했어도, 그러고 보니 아침도 제대로 못 먹었다.


진작 가고 싶은 맛집들을 이미 독일에서 검색한 후, 구글맵에 저장해놓은지라... 어디 보자... 마르코니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들릴만한 곳이 있는가?

그게 바로 여기였다.

안나 이모의 티젤리아

Tigelleria da zia Anna

+39 347 597 0523

https://maps.app.goo.gl/tkCS6fe1b1qnyPaP7

인테리어가 아기자기하게 참 예쁘다.

티젤라(tigella)는 10cm 정도 되는 작고 납작한 빵이다. 티젤라는 1개일 때, 복수형은 티젤레(tigelle). 원래 이름은 크레셴티나 모데네제(crescentina modenese: 모데나의 초승달??). 원산지가 모데나인 모양이다. 에밀랴 로마나 지방의 특산물(?)이고, 여튼 티젤레로 다 통한다.

(t.m.i: 나에게 모데나는 파바로티와 프레니의 도시이고, 미식가에게는 발사믹 식초의 도시)

막 구운 티젤레는 겉바속초라서 버터랑 잼 발라먹어도 맛있겠다 싶은데, 이탈리아에서는 각종 동네 특산 치즈와 햄 그리고 루콜라 같은 채소 등을 다양한 조합으로 즐긴다.


이 거대한 메뉴판 앞에서 결정장애를 일으키고 있는 나에게 안나 이모가 자기가 알아서 두 개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이른바 '아무거나' 티젤레!!


 정신줄을 놓았는지...두번째는 먹다가 생각나서 찍음...죄송

첫 번째는 프로슈토 코또 햄을 넣은 거였다. 프로슈토는 독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이탈리아 햄이다. 코또(익힌 것)랑 크루도(날 것), 두 가지가 있는데, 난 평소에 크루도와 멜론을 함께 먹으면서 단짠단짠을 만끽하고는 했다.


그러고 보니 코또는 오랜만이네. 티젤라와 함께  먹으니... 상상했던 그 맛이다. 게눈 감추든 먹고는 두 번째 걸 먹는다. 흠 루콜라, 좋지~~!

음??? 그런데 곁들여진 치즈가 뭐지? 한 번도 안 먹어본 맛인데?

안나 이모에게 물어보니 이 치즈는 스뜨라끼노(스트라키노 stracchino)라는 치즈랜다. 치즈치고는 꽤 물렁한 이 녀석은 치즈와 버터의 중간 단계 같다. 이태리 북쪽, 알프스에서 가까운 동네에서 온 치즈다.

롬바르디아 지방 사투리 중에 'strach(피곤한, 지친)'라는 말이 어원이다. '지친 치즈'ㅋㅋㅋㅋㅋ

다름이 아니고 여름에 산 위에 풀어놨던 소들을 가을 되면 내려보내는데, 그 과정에서 소들이 지쳐서 그때 생산하는 우유도 다르다나? 그렇게 만든 치즈라고 한다. 오... 역시 치즈의 세계도 와인 못지않게 심오하다.


안나 이모도 엄청 친절하시다.

안나 이모에게 "내가 여기 독일에서부터 찾아보고 온 거야" 하니까 (당연하겠지만) 놀라고 또 너무나 좋아하신다. 이어지는 호구 조사... 내가 여기 왜 왔는지부터..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너 어느 나라 사람이야? 중국? 일본?"

"난 한국 사람이야"

"정말??? 와아!! 나랑 내 딸 한국 무지 좋아해"

"진짜? K-pop 좋아하는 거야? 나 사실 BTS 팬이야."

"나도 나도"


오늘도 bts는 세계인의 화합에 기여한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네 주변에 혹시 메이크업 관심 있는 친구 있을까?"

"응..??"


대화의 방향이 예기치 않은 쪽으로 흐른다.

내 짧은 이태리어로 이해한 바로는, 안나 이모는 부업으로 메이크업 관련 일도 하는데, 다른 나라 친구들과도 네트워크로 팀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화장품도 만드는데, 품질이 아주 좋다고... 아마도 다른 나라로도 판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듯하다.


이 글을 읽으신 분 중에 안나 이모와 협업을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 연락 주시길. 안나 이모가 친히 적어준 그녀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알려드리겠다.


이렇게 이번 이태리 여행의 첫발은 따뜻하게 시작했다.


추신. 티젤레는 작아서 큰 요기가 안되니, 간식 정도로 생각하시라.


추신2. 안나 이모에게 이태리 사람들은 티젤레를 어떤 음료랑 가장 많이 마셔? 라고 물어보니, 맥주나 와인이랜다.

난 밤을 샌 관계로, 그리고 이른 시간이라 술은 안마셨지만... 먹다보니 맥주가 생각나더라는...

(심지어 맥주 즐기지 않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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