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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Jan 09. 2025

모양은 상관없지 뭐


 오전 9시. 방학한 아이들이 슬슬 배고플 시간. 어제 아침밥을 주는데 11시가 다 되어 주니 둘째에게 한소리("한 시간 넘게 했는데 이거밖에 없어?") 들었으므로 오늘은 서둘러 보기로 한다. 집에 있는 재료를 생각하면서 핸드폰 메모장에 할 수 있는 요리를 적어두었다. 리스트를 쭉 봐 본다. 배고플 아이들에게 빠르게 해 줄 수 있는 메뉴를 선택하는데 초 집중해야지. 어제 하기로 했던 메뉴 '계란말이'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 방송에서 개그맨 양세형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바쁘셔서 집에서 요리를 잘 안 해주셨는데 계란말이는 기가 막히게 만들어주셨다는 얘기였다. 그분에게 '계란말이'는 소울푸드인 거다. 요린이 엄마라 잘하는 게 없지만 아이들에게 '소울푸드'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엄마가 해준 거 중에 맛있게 먹었고 생각나는 음식. 나중에도 음식 하면 엄마가 떠오르는 그런 음식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계란, 파, 양파, 당근 그리고 스팸. 실패할 수 없는 조합이다.


 아침밥이니 시간이 생명이다. 아무리 급해도 스팸에 불순물까지 줄 순 없지. 작게 썰어 뜨거운 물을 붓는다. 파, 양파, 당근은 다지기에 잘라 넣고 둘째에게 돌리라고 한다. 성격 급한 둘째가 뭐라도 해야 기다리는 시간이 덜 지루하지. 돌리고 돌리고 몇 번 돌리니 야채다지기 끝. 그렇게 다 잔 야채와 뜨거운 물에 데친 스팸 넣고 계란 5개를 풀어 넣고 후추 톡톡. 맛소금 적당히 휘리릭.



 그렇게 계란말이를 할까 하다가 밥까지 넣어 한번에 해결하고자 한다. 아침은 입맛도 좋지 않으니 볶음밥처럼 먹으라고. 계란말이 할 재료에 밥을 넣는다. 이제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계란말이 모양으로 익히면 끝.


 항상 말은 쉽지만 요린이는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원래 계란말이는 약한 불에 오래오래 은근하게 익혀야 하는데 오래 걸리면 안 되지. 게다가 밥까지 넣어 재료는 많지. 둘째가 또 엄한 소리로 팩폭을 날릴까 봐 조마조마하다. 계란말이팬도 최근에 오래되어 버려서 도구는 없지. 그러니 자꾸 계란말이 모양의 옆구리가 터진다. 요리의 고수는 도구 따위 신경 쓰지 않겠지만. 따흑.


 

 바쁘고 정신없는데 둘째가 갑자기 바나나 조각을 입에 넣어 준다. 식탁 위에 있던 바나나를 세등분 해서 자기랑 형아랑 나눠 먹고 나를 주는 거였다. 어제 오래 기다려 아침 먹었으니 오늘도 늦게 걸리겠거니 했나 보다. 현명한 녀석. 그래도 오늘은 메뉴 1개인데 10시는 넘기지 말자 생각하며 열심히 열심히 만들었다. 요린이는 장비가 중요하다. 계란말이 팬이었음 그래도 어떻게 말아 볼 텐데. 동그란 프라이팬으로 어떻게 말지. 열심히 굴려보지만 옆구리는 자꾸 터지고 모양은 계속 희한해지고. 결국 반을 잘라본다. 어차피 계란말이 모양으로 못 만들 바에 뒤집기라도 편하게 하자 싶다. 점점 산으로 가는 기분 뭐지?



  진작에 계란말이 모양은 포기했으나 그래도 '정성'을 담아 만들었으니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아. 요리 잘하는 엄마들 부럽다. 빠른 시간 내에 맛도 모양도 다 잡는. 아니면 그중 하나라도 잡는 엄마이고 싶다. 이래서 내가 요리 안 하고 싶었지. 재료를 익히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스친다. 재료들을 잔잔하게 썰었으니 속재료만 익으면 괜찮겠지 싶어 그릇에 담아본다. 차곡차곡 담고는 맛없을 수 없는 조합. 케첩과 허니머스터드를 예쁘게 뿌려본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비주얼의 계란말이밥이 완성되었다. 아이들이 다가와서 말한다.


아이들 : (눈이 휘둥그레져서) "엄마~ 그게 대체 뭐야? "

나 : "원래 계란말이 밥인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 멋지지?"


 원래는 계란말이 모양으로 예쁘게 만들어 썰고 반을 사선으로 잘라 하트모양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역시 생각은 생각일 뿐. 모양도 요상한데 맛까지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아이들에게 한 숟갈씩 떠서 줘 본다. 먹다 보니 리액션 대장 둘째가 반응한다. 엄지 척!


그래 모양이 뭐가 중요해. 맛만 좋으면 됐지 뭐. 그리고 보다 보니 적응되는 비주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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