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 Aug 28. 2022

2022 여름을 보내며

영국에서의 근황

글.

한동안 한국어로 글을 쓰지 않았다. 영어로 대부분의 시간을 쓰다 보니 한국어 실력도 줄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없어지면서 한국어로 글 쓰는 일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몇 번 글을 쓰다가 그만두곤 했는데, 글을 쓰다 보면 자꾸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막히고 말았다. 메타/구글 면접기,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목표를 이루는 법 등의 주제로 글을 쓰다가 마무리하지 못했다. 공휴일을 맞이하여 가벼운 글을 쓰고 싶어 예전 글을 다시 미루고, 일기 쓰듯 근황을 끄적여본다.


적응.

싱가포르를 떠나 영국에 온 지 벌써 1년 5개월이 되었다. 메타에 입사해서 초반에 많이 힘들어했었지만, 그랩에서 고생한 것보다는 짧게 적응한 것 같다. 항상 새로운 회사에 입사하면 당연히 적응이 힘든 걸 알면서도, 참 그 시간이 견디기 힘들다. 임포스터 신드롬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내가 이 회사에 맞는 사람인가 고민했었다. 한창 힘들 때 팀의 시니어가 본인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다고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위로를 듣고 많이 힘을 얻었다. 다행히 이번엔 6개월 만에 적응하고, 1년 만에 승진도 했다. 주변 동료들 말로는 1년 만에 승진이 정말 쉽지 않은 거라고 해서 자신감도 많이 늘었다.


동료.

메타가 다른 회사와 뭐가 다르냐는 말에 나는 자신 있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이야기한다. 존경할 만하고 배울 점 많은 동료들과 일할 수 있고 멘토링도 받을 수 있는 것이 행운이다. 그랩에서도 그랬지만, 주변 사람 복이 많아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정말 일 잘한다고 생각하는 동료가 나를 칭찬해줄 때는 기분도 좋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적응하는 대로 쉽게 싫증 내는 나의 성격을 파악한 매니저가 때마다 새로운 기회를 주어서 지루하지 않게 일할 수 있게 해 준다. (내 매니저는 만렙 매니징 스킬을 가지고 있다.) 현재 나는 디자인 팀 리드로 4명의 디자이너들을 이끌고 멘토링 해주고 있는데, 다들 다양한 백그라운드와 뾰족한 강점,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라 앞으로가 기대된다.


일.

메타 입사 전에 광고 팀에 들어간다는 것이 참 아쉬웠으나, 막상 들어와 보니 나와 잘 맞는 일이었다. 특히 내가 하는 일은 광고주가 제공하는 이미지와 글을 자동화로 개선하는 일인데, UI 디자인의 백그라운드를 강점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바로 돈과 연결된 일이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회사에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내는지 숫자로 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다.


우리 팀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팀에게 광고 솔루션을 제공하는 팀인데, 내가 직접 인스타 스토리나 릴스에 보이는 광고를 디자인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자주 쓰고 좋아하는 서비스의 프러덕을 만들 수 있는 일이라서 재미있고, 인스타그램과 페북 디자이너들을 컨설팅해주는 일이라 보람차기도 하다.  


성장.

메타에서 일하면서 처음 겪는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지난 반기 퍼포먼스 평가 중에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임팩트도 너무 잘 나오고 성장도 잘하고 있지만, 일을 줄이지 않으면 다음 승진이 어려울 거라고 했다. 지속 가능한 퍼포먼스와 성장을 위해서, 모든 일을 처리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일만 하라고 했다. 생전 일을 많이 했다고 승진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을 줄이야! 근데 사실 맞는 말이다. 불이 났다고 여기저기 다 끄러 다니다간 오래 버티지 못하니까. 그래서 하반기엔 우선순위를 더 철저히 정리하고 있다.


메타에서는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프로젝트 매니징을 직접 한다(팀마다 다르겠지만). 그래서 피엠 관련 공부도 하고 매니저나 다른 시니어 IC 디자이너에게 멘토링을 받았는데, 배운 것을 실무에 바로 써먹으니 협업 효율이 쑥쑥 오르는 것도 보게 되었다. 또한, 이젠 팀의 비전, 전략을 짜거나 조직의 효율을 올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는 일을 실무보다 많이 하는데, 시야도 훨씬 넓어지고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아 재미있게 하고 있다. 나의 성장을 100% 지원해주는 회사 문화 덕분에, 열심히 레벨업을 하고 인정받고 있다.


다음 목표.

항상 나는 목표를 세우고 달려가는 성향이 강했는데, 오랫동안 목표했던 'FAANG 입사'를 이루면서 다시 허무해졌었다. (이래서 회사를 목표로 정하면 안 된다.) 한동안 방황하며 다시 목표를 정하는 것이 맞는지 돌아봤다. 그러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목표 없이 사니 너무 동기부여가 안 되는 것 같아, 결국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라는 막연한 목표를 세웠다. 성장의 대가로 계속되는 도전만 주어지면 재미있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건강.

최근에 열심히 걷기와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아침마다 템즈강 주변을 따라서 30분 빨리 걷기를 하거나, 주말 아침엔 항상 그리니치나 타워브릿지까지 5킬로 이상 걷는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최근에 한국에 다녀오면서 내 체력이 정말 안 좋아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시차 적응으로 일찍 일어나는 것을 이용해 습관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 20대엔 친구들이 집에 가려고 하면 잡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먼저 일어서자고 하고 술도 한 잔 이상 먹기가 어렵더라. 최근에 코로나를 겪고 체력이 훅 떨어지긴 했지만, 평생 운동을 제대로 안 한 대가를 제대로 느끼고, 올해는 체력을 기르기로 다짐했다.

일찍 퇴근한 날엔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고 뜨개질도 한다.

런던에서 사는 것.

5년 전 런던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떠날 땐,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어디론가 가게 된다면 항상 미국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팬더믹이 터지고 비자받기가 어려워지면서 어쩔 수 없이 영국으로 오게 되었고, 영국에 처음 온 몇 달 동안은 그래도 언젠가 미국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영국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많은 미국 동료들이 범죄나 인종차별로 베이 에리어에 사는  아주 좋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한국의 경쟁이 심하고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다시 겪고 싶지 않아 졌다. 영국에서  수록 일상이 여유롭고, 내가 나로   있는 사회 분위기, 다채로운 문화가 점점  행복하게 만들었다. 요즘엔 집을 사려고 알아보고 있다. 언제  마음이 바뀔  모르지만, 이곳에서 오래 행복하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