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a쑝 Feb 25. 2019

관계의 온도

용서할 수 있을까part 1


관계는 어느 정도의 온도가 적당한 걸까.


배신감으로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주 온 몸이 부들 부들 떨렸다. 마음이며 돈이며, 시간을 들여 공들였던 관계는 '배신'이라는 단 한마디로 끝장이 나버렸다. 아마 어른:어른으로 같은 일을 당했더라면 아마 그냥 묵인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늘 아이들의 교육이나 예절, 인성등을 강조하며 자신의 교육법이 본인 아이들을 얼마나 예의 바르게 키웠는지 침을 튀기며 자랑처럼 떠들던 사람이 할 행동은 아니였기에 더욱 의아했다.

당시에는 무심코 넘겼던 그 사람의 표정과 눈빛, 행동들이 필름처럼 되살아 났다. 


과거 미국에 있으면서 생활고에 시달려 덕분에 어린 아이들과 먹고 쓰는 문제는 하루 하루가 고역이었고 고통인 순간들이 있었다. 자존심도 결국엔 버릇같은 것임을 깨달은 후 내려놓았다. 그 사람을 보면 꼭 나의 예전 모습이 떠올라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해결 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말이다. 늘 환경과 남편 탓에서 벗어나 바로 서길 원했다. 행여나 자존심을 건드려 더 아프게 할지 몰라 조심스러웠고 당장의 미안함보다 성공하면 그때 힘든 주변을 돌아보라고 권했다. 어떤 과정이었던 해피 스토리로 끝나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고 마음 아플 뿐이다. 


배신감이 너무 커서 그랬는지 그녀와 연결되었거나 공통된 나의 동선들이 후회스러웠다. 그 사람과의 모든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심지어는 대화조차도) 아마도 그 사람은 이미 전부터 나는  눈치채지 못하는 기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처럼 경계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끔 그런 불쾌한 감정이 전달될 때마다 자동으로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때로는 싫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모호한 태도만 거슬렸을 뿐, 쉽사리 구분 하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자존심 때문이겠거니 나름의 해석을 하며 넘겨왔다. 이럴 땐 오히려 단순한게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순수하게 좋으면 좋은 것이고, 싫으면 제대로 된 언어로 거절하면 될 일을 사람 헷갈리게 한다.


성격 급한 탓인지 웬지 그 날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 사람마다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의  개개인의 차이는 있다만, 지불 없이 받는 것이 마냥 당연시 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포장된 새 떡볶이가 먹다 버린것으로 둔갑한 것에 대한 그 사람의 의견이 궁금했고 자신의 감정을 빗대어 여러 사람 앞에서 전달만 했을 아이의 면전에 대고 창피 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가장 인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결국 먹었으면서 말이다. 이제껏 나의 모든 행동이  당신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 진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차분히 질문했다. 아주 어렵게 꺼낸 말이었기에 예상과 달리 본인의 입장을 변호하고자 포장한 핑계만 듣게 되어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내 올것이 왔구나 자포자기한 듯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나는 만들어 진 음식을 싫어해, 포장 된 재료를 보낸 줄 알았지.'

답답함을 넘어 웃기고 슬펐다. 애들 공부하면서 먹으라 보냈는데 그럼 그 시간에 떡볶이 만들어주려 했던 것이라면 그녀의 수업 방식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고 (빡빡한 스케줄을 뻔히 아는데) 자기 아이들만 먹이려 했던 거라면 그녀의 성품을 의심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그 동안 건네 준 음식을 먹으며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냥 미안하다 라는 말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진심어린 사과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한 듯 보였다.


'미안해 하지 말라고 하지만 매번 받기만 해서 불편했고 나도 모르게 눈치보일 때도 있었어. 모든게 다 내가 받기만 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우리 관계의 주도를 네가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하더라고'


그에 대해 참으로 할 말이 많았지만 말문을 막은 것은 그 사람의 마지막 말이었다.

관계의 주도

사소한 먹거리로 시작된 진흙 탕에서는 의외의 침전물들로 가득했다. 전혀 다른 해석이 서로의 대화를 방해했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허리에 동여맨 줄을 억지로 끙끙거렸나 싶었다. 그저 비슷한 길을 걸으며 팍팍한 인생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바랬을 뿐인데 결과는 참담했다. 과연 이 사건에 대한 그녀의 시점과 스토리는 어떨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이야기의 끝은 없다. 잠시 너와 나의 입장만 날이 시퍼렇게 서 있을 뿐 세월이 무색하리만치 그 동안 나눈 많은 대화와 만남, 추억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 이제껏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다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 문제와 이번 일을 구분하지 못하신다면.'


나는 그저 미안하다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고 들어야 마땅하다 여겼다. 아니 미안하다는 말로 그 당시 나를 위로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떤 이유와 모양이든 우리 모두 충분히 실수하기도 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기에 잘못의 인정이 좀 더 바르고 빠르길 바랄 뿐이었다. 어른들의 감정 놀이에 아이가 상처를 받아서야 되겠는가. 전화를 끊고 분을 삼키지 못하고 있던 때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아이들이 친하고 서로 연결 되어있는 문제도 있고...첫번째 그런 경솔한 말 한거 사과할께. 두번째 절대 그럴 의도는 아니였지만 오해하게 해서 미안하고, 세번째.. 이래서 미안하고, 네번째 이래서 미안해.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을 돈으로 본다고 말했던 건 그런 뜻은 아니였는데, 오해야.'


두번째 통화 내용도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웬지 일부러 입력한 것을 어색하게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건 뭘까. 만약 그렇다면 이런 치밀한 계산은 왜 필요한 것일까.  그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리도 그 사람을 얽매고 있는 것일까. 그 사람은 왜, 무엇에 묶여 본심을 감추고 늘 계산이 먼저인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숨은 그림 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