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도 유람기

by 물구나무

대장봉에서 바라보는 섬은 한눈에 들어찬다. 여객선으로 고작 10분 거리, 좁은 해협이지만 관리도는 아직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온전한 섬이다. 고함이라도 지르면 들릴 것도 같다. 코앞에 섬을 두고도 하루 두 번뿐인 배편을 기다려야 하는 관리도는 가까워서 더 조바심 나게 하는 섬이다. 마을은 포구가 있는 곶지 하나뿐이다. 오래전, 간첩이 출현하여 십이동파도에서 주민을 납치했던 사건 때문에 서너 개로 흩어져 있던 마을을 하나로 모았다. 여객선은 마을 포구에서 제법 떨어진 발전소 근처 선착장으로 드나든다. 마을로 들어가려는 걸음이 아니고 관리도의 진풍경을 즐기려면 발전소 뒤편에서 능선으로 갈라지는 오르막을 탄다.

야트막한 오솔길이다. 바닷바람을 견디고 자라는 곰솔은 솔잎부터 뻣뻣하고 나무껍질도 훨씬 어둡다. 먼바다에서 불어온 풍파에 밀리듯 기우뚱한 나무들이 모여 이루는 솔숲은 바람이 없어도 넘어질 듯 보인다. 출렁거리는 솔잎 사이로 갈라진 바람가 파도 소리처럼 들린다. 중턱에 당집이 있던 자리를 지날 즈음이면 기분부터 오싹해진다. 80년대 중반까지도 마을 당제를 지냈었다고 하는데 관리도 영신당도 지금은 터만 남았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지내는 당제 말고 개인별로 지내던 유왕제가 있다. 용왕님께 풍어와 안녕을 빌고 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다. 남성이 제주를 맡아 지내는 당제와 달리 여성이 주관했다.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망식이떡이다. 쌀가루를 팥죽 새알처럼 둥글게 만들고 개떡처럼 납작하게 한 후 콩이나 팥으로 고물을 묻혀서 만든다. 객선 터 부근 바다로 뻗어나간 바위 어디쯤 적당한 자리를 잡고 고사를 마치면 제물로 썼던 음식을 바다에 던진다. 귀신들이 배불리 먹고 가라는 의미라고 한다. 귀신이나 사람이나 배가 불러야 편해지는 이치는 이승과 저승이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낙조전망대는 마을 뒷산 정상을 지나 내리막길에 있다. 관리도 서편으로 펼쳐진 바다는 그저 막막하다. 초점 하나 맞출 작은 섬조차도 없는 수평선은 멀미가 날 정도로 원근감이 없다. 차라리 사방팔방으로 열린 정상 풍경이 더 낫다. 점점이 멀어져 가며 끊어질 듯 이어진 무산십이봉도 그렇고 관리도를 한눈에 담았던 대장봉과 장자도의 풍광도 이국적이다. 특히 저녁노을에 취한 암벽이 시시각각 붉어지다가 짙고 푸른 어둠을 머금어가는 장면도 관리도가 아니면 볼 수 없다.


전망대를 지나면 출렁거리듯 작은 봉우리를 이어가는 능선길이 계속된다. 깃대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하나는 남고 둘은 부족한 폭을 지녔다. 좁은 길로 걷는 산행은 점을 선으로 잇고 따로 또 같이 묶어가는 걸음이 편하다. 능선의 오른편은 가파른 낭떠러지다. 세월의 힘으로 깎아지른 절벽이지만 벼랑 끝에서 절벽의 장관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깃대봉 정상을 지나 꺾어지는 길목에서 멀리 뻗어나간 쇠코바위와 만물상 장관을 비스듬히 가늠해 보며 상상력을 더해볼 따름이다. 같은 절벽을 보면서도 만 개의 불상을 찾아내는 시선이 있고 수만 병사의 도열로 바라보는 눈길도 있다. 바위의 이름은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것이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 결국 내면의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길은 여러 차례 갈라진다. 해가 아직 중천이면 쇠코바위까지 다녀와도 좋지만, 선택에는 대가도 따르기 마련이다. 인적은 여전히 드물고 가파른 길은 매력이 있지만, 무언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를 두려움도 따라붙기 마련이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은 들고나는 해안을 따라간다. 시멘트로 포장된 널찍한 길 위에서 걸음은 느긋해진다. 서너 가구씩 모여 있었을 성싶은 터가 보이면 이런 곳에 집 짓고 살아볼까 싶다가도 고개를 젓고 만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터를 빼고는 이미 외지인에게 넘어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덤벼드는 투기꾼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거래는 없어도 한번 오른 땅값은 떨어질 줄 모른다. 그렇다고 들어와 살려는 것도 아닐 텐데...


문득 배 시간에 쫓기기 시작하면 한눈도 팔지 못한다. 관리도를 제대로 느끼려면, 하루쯤 머물다 가야 한다. 그래야 얼굴 붉히도록 빨갛게 달아오르는 노을빛에 흠뻑 애를 태우기도 하고, 밤새 쏟아지는 별빛에 맞아 멍이 들기도 한다.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제철 생선은 눈으로 보는 바다와 입으로 맛보는 바다가 어찌 다른지 알게 한다. 배를 타는 수고도 필요하다. 더러 관리도 바깥 절벽을 멀찍이 지나는 유람선도 있지만, 낚싯배를 얻어 탈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하늘로 뚫린 쇠코바위 천공굴 가까이 배를 바짝 붙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섞어가며 눈요기를 시켜주는 입심 좋은 선장도 만날 수 있다. 관리도 바깥 절벽에 펼쳐놓은 세월이 빚어 놓은 숨은 절경을 빠뜨리고서 관리도 유람을 자랑하기는 어렵다.


한여름이 아니면 장자도나 선유도에서 바라보는 해는 관리도 너머로 기울어간다. 어둠을 등지고 바다를 건너오는 마을의 불빛은 조용하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곤히 잠들어 가는 섬사람들의 하루처럼 평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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