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산 샤넬 백, 이탈리아 구찌 구두, 영국 직수입 버버리 코트. 30대 초반까지 나는 명품 쇼핑을 즐겼다. 어쩌다 해외 나갈 일 생기면 저렴한 명품을 찾아 이 도시 저 도시 발품을 팔았고, 그렇게 나름대로 합리적(?) 쇼핑을 해야 다른 곳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실상은 작은 오피스텔 원룸에 사는 직장인이었으나,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고서 받는 ‘좋아요’에 흡족해했고, 이는 매일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이벤트였다. 신혼여행 가서도 명품관을 돌아다니기 바빴다.
생각이 바뀐 건 아이를 낳은 뒤부터였다. 아이를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은 마음이 커지다 보니, 우선 내 씀씀이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퇴직 연령은 49세고, 노인 10명 중 4명은 빈곤층에 속한다는 무시무시(?)한 뉴스들에 눈이 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우리 부부도 퇴직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3억원 가까이 든다는데, 우리는 둘이니 얼마나 비용이 들까….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모아둔 명품 백을 중고 시장에 내놓기로 했다. 처음엔 아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치워버리고 나니 의외로 마음이 가벼웠다. 지금 들고 다니는 가방은 1만9900원짜리 에코백. 가볍고 실용적인 데다 궂은 날씨에도 걱정이 없다. 옛날 같으면 비라도 내리면 가방이 젖을까 걱정하며 나보다 가방을 챙겼을 텐데 지금은 나를 먼저 챙긴다.
비록 명품을 다 팔아버렸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이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진 느낌을 준다. 명품 소비가 나쁜 건 아니지만, 집에서 치워도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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