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보통의 행복
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쨍쨍함이 함께이다. 한 여름의 느낌이 아니니 좋다. 이거슨, 이거슨.. 가을의 느낌이다. 가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긴 팔 남방을 걸치고 긴 청바지 차림으로 나왔다.
내가 사는 곳 아파트는 높게 위치해 있어서 내려갈 땐 쉽지만 올라올 때가 힘들다. 볼일 보러 나가는데 오늘은 용기를 내어본다. 꽤나 거리가 있는 곳인데(버스로 3코스) 걸어서 가본다. 쭈욱 걸어가서 올라가면 쉬운 코스인데 순간 잘못 선택으로 중간길로 올라갔다 사잇길로 들어갔다가 또 쭈욱 올라갔다. 예전이면 느끼지 못했을 체력의 한계가 느껴진다. 물론 운동부족이란 걸 알지만 내 나이도 무시 못한다는 걸. 헉헉 거리며 올라간 정상에는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런데 내리쬐는 해가 문제였다. 오르막을 올랐을 때 이미 땀이 배어 나와 내리막을 걸어도 더웠다. 그 더위를 해님이 더해주었다. 쨍쨍 해가 아닌 은근히 흐린 날의 해님이 왠지 더 얄밉게 느껴졌다. 3코스 생각보다 멀었다. 순간 잘못한 선택이란 걸 알았다. 한 손엔 조금 무게가 나가는 가방을 들었기 때문이다. 3코스라도 이런 날은 피하자고. 그리고 운동부족을 꼭 만회하자고.
이틀 전 정리로 왼쪽 손가락이 삐끗거렸다. 심한 건 아닌데 붓기가 있고 주먹이 잘 안 쥐어졌다. 어제부터 인근 정형외과에서 주사도 맞고 물리치료를 했다. 의사 선생님이 4일 정도 보셨는데 어제 하루 치료했는데도 훨씬 낫다. 오늘도 물리치료를 받았다. 내일이면 많이 괜찮을 것 같다. 누워서 잠시 받는 물리치료는 한숨 자기에 딱이었다.
점심으로 내 단골집 <선비 꼬마김밥>에 들어왔다. 꼬마김밥 5개와 우동을 주문했다. 이사 와서 처음 먹었을 때 맛이 좋아서 그때부터 쭈욱 단골집이 되었다.
목요일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실로 오랜만에 일을 가져본다. 무엇이 되었든 열심히 해보고 싶다. 나의 판단력, 나의 재치, 나의 움직임, 순간 대처능력이 녹슬었는지 아직 쓸만한지 체크해보고 싶다. 요양보호 사 선생님께 문자로 목요일부터 알바를 한다고 말씀드렸다. 어른 모시고 생활하는 게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며 새로운 시작을 응원해 주셨다. 어머님 드시라고 집에 반찬도 조금씩 가져다주시고 어머님 케어를 꼼꼼하게 잘해 주셔서 감사하다. 일주일에 5번 방문하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 새로운 가족이 생겨서 좋다.
이곳에 처음 이사와 내게 힘이 되어 준 곳,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에서 이 글을 쓴다. 들어왔을 때 한 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사장님께 음악이 너무 조용한 거 아닌가요?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로. 어느새 가요가 흐른다. 두 곡째를 듣는데 문득 여기 카페 사장님은 조용하고 차분한 풍의 음악을 좋아하시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아니면 사장님 기분이 오늘 이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차분하고 조용한 게 좋다. 아까 곡은 너무 조용했지만.
집을 나오면서 풍년 압력밥솥을 들고 나왔다. 처분하기 위해서다. 결혼 때 받은 선물인데 이제 내 품을 떠날 때가 왔다. 압력밥솥이여...하며 떠나보냈다. 쓰레기장으로 들고 갔는데 정리하시는 분들이 왜 그걸 버리냐고 하셨다. 아직 쓸만한데 무게가 나가 불편해서요. 그랬더니 아저씨들 왈, 닭 한 마리 사가지고 와서 고아먹으면 딱이겠네 하셨다. 사용 잘 안 해서 애물단지였는데 떠나보내니 시원하다.
단골 카페를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를 좋아하고 맛난 커피를 좋아하는 나, 인근의 맛난 음식을 먹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는 이 자유함이 아주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보통의 행복에 말이다. 언젠가는 이 행복감을 또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지금 이 행복감이 넘 좋아서일 거다. 주기적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지금 이곳 같은 공간이 내게 있음에 눈물이 난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조용한 음악이 거드니 한없이 센티해진다. 아...... 놔...... 가을 타네ㅠ 아아를 마시며 생각했다. 이제는 뜨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