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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글쓰기

새벽 2시 36분의 기록

by 지니


눈이 떠졌다.

거실에 펼쳐진 대형 전기장판에서 지난밤 잠이 들었다.

밀린 필사도 하고 해야 될 게 있었지만 쉬고 싶었다.

폭신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다리를 뻗어본다. 손은 어느새 티브이 리모컨을 향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켜고 최애 프로그램인 <냉장고를 부탁해>를 플레이했다. 뽀니바틀 편이다. 여기서부터 보다 말았는데 이어지는 장면이 샘킴셰프가 "근데 술이 거의 처음 보는 거다"며 "오늘 다 맛보면.." 하며 너스레를 떤다. 엠씨 김성주가 "술판 벌어지겠구먼?" 하니 빠니보틀이 웃으며 "다들 따는 게 목적인 거죠?" 한다. 이어 안정환이 "이름이 바뀔 거예요. 따니보틀로.." 다들 입담과 재치가 장난 아니다. 10년 장수 프로그램이었던 <냉부해>는 시즌 2를 이어가고 있다. 셰프들도 방송의 세계를 알아서 요리도 잘하지만 너스레도 입담도 늘었다. 그래서 가볍게 웃으며 시청하기에 좋다. 주로 주방일을 할 때 자주 켜놓고 본다.


그런데 막상 보려니 쉬이 집중이 안되었다. 이내 티브이를 끄고 좀 전에 켜 둔 전기장판 속으로 쏙 들어왔다. 감촉 좋은 핑크색 꽃무늬 극세사 이불을 들고 나왔다. 편안하게 누워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이틀 전 올라온 소위 작가님의 서평글을 검색해서 읽는다. 얼마나 읽었을까 눈이 자꾸만 감겼다. 전기장판을 중간보다 더 올려놨던 게 생각나서 제일 낮은 데로 맞췄다. 그러고는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꿈을 꾸다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일어났는데 보니 전기장판이 고온으로 맞춰져 있었다. 불빛 없이 전기장판 불빛만 보고 하다가 잘못 맞추게 된 거였다. 얼른 끄고 장판이 식기까지 잠시 누워있다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이후로 잠이 오지 않았다. 브런치를 켰는데 꽃보다 예쁜 작가님의 라이킷 알림이 울렸다.


그때부터 폰을 만지작거리는데 갑자기 배터리가 나가는 거다. 충전을 위해 거실로 나왔고 아까 그 장판에 앉아 글을 작성한다. 2시 36분에 눈을 뜨고 난 뒤 두 시간 30분이 흘렀다. 그동안 달콤한 커피 한잔을 마셨고 블로그에 글을 적었다.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창밖의 풍경은 알 수가 없다. 아직 깜깜하겠지? 와 그런데 글을 적고 있으면 정말 시간이 후딱이다.


브런치를 하고 처음 구매했던 브런치 작가님의 책 11회 브런치 대상작 <태어나는 말들>


거실에 나왔을 때도 뭘 할지 살짝 우왕좌왕이었다. 우선 작가의 공간으로 넘어왔다. 필사를 할까? 책을 읽을까? 책장을 보다 <태어나는 말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뒷부분을 조금 남겨 둔 상태였다. 어찌하다 보니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이 책이 손으로 들어왔던 때를 떠올리며 들고 다니며 읽었던 때를 떠올리며 이 책부터 마무리하자 싶었다. 조용한 공기와 은은한 스탠드 불빛이 흐르는 공간과 책 한 권 그리고 포근한 자리. 읽었던 부분까지 표시가 된 곳으로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분위기 좋으니 나지막이 소리 내어 읽는 건 어떨까 하며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읽었다. 에세이인 듯 소설인 듯 작가의 표현이 좋았다. 묘사가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 같았다. 소리 내어 읽기에도 괜찮았다.


이건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묘사들로 움찔하며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몰입이 되다가도 타고난 집중력 저하로 시간이 꽤 걸렸던 책인데 뒷부분은 속도를 내서 읽었다. 다시 꺼내보며 느낀 점은 소리 내어 읽기가 좋다는 점, 필사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끝까지 읽고 난 뒤 다시금 이 책을 들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내밀한 언어 속으로 다시 들어가 보는 것.


그리고 새벽녘 눈을 떴을 때 지난 블로그 글을 다시 작성해 보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블로그 한지는 꽤 된다. 정보성의 글을 올려야 되는 공간이라 나와는 잘 맞질 않는다. 하지만 블로그가 있었기에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글, 일기, 요리 이야기, 일상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저품질이 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여전히 쓰고 싶은 글을 올리고 있다. 이 블로그에는 지난 글을 매일 올려주니 다시 열어 볼 수가 있다. 짧은 글이든 긴 글이든, 사진이든 지난 나의 일상들을 엿볼 수 있다.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시작한 블로그의 글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싶어졌다. 누구도 아닌 나의 만족으로 말이다. 1년 6개월의 브런치 여정으로 쌓아 온 글쓰기로 다시 예전 글들을 재조명해보고 싶다. 매거진이 될까? 브런치 북이 될까? 여하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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