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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Mar 22. 2022

장난감이 많으면 안 되나요?

우리 아이 이대로도 괜찮을까



아이 둘을 키우는 우리 집에는 장난감이 정말 많다. 그냥 보통 많은 게 아니고 진짜 진짜 많다. 자동차, 변신로봇, 공룡, 공구놀이 등... 물론 대부분의 장난감이 물려받은 것이지만 말이다. 아이들은 장난감과 함께 잠들고 눈뜨자마자 장난감을 찾고 장난감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을 본다.


온 집안 구석구석 굴러다니는 크고 작은 장난감을 정리해 넣는 것은 모두 엄마인 나의 몫이다. 다 버리고 싶을 때도 많지만 결코 작은 가격이 아닌 장난감들은 쉬이 버려지지도 않는다. 그저 한숨 쉬며 장난감 박스에 밀어 넣기를 무한 반복할 뿐이다.


장난감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아이는 늘 새 장난감 타령을 한다. 새로운 시리즈는 왜 자꾸만 나오는 건지... 마치 나이별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줄이라도 서 있는 양 아이는 내가 모르는 장난감 이름을 잘도 댄다.

 장난감을 물려준 사촌은 이제 중학교엘 입학했다. 아이가 그렇게 자라는 동안 아직도 같은 장난감이 유행인 걸 보니,  카봇도 또봇도 미니 특공대도 터닝 메카드도 정말 대단하다 싶다.



6살이 된 큰 아이는 요즘 터닝 메카드에 푹 빠져있다. 아이 손에 딱 쥐어지는 작은 크기의 변신 로봇 자동차 장난감인데 카드에 닿으면 자동으로 변신한다.


"이거 내가 혼자 다 먹으면 아칸 사줄 거지?"  


"아빠 생일 케이크는 터닝 메카드 올라간 초콜릿 케이크로 꼭 사야 해!"


"착한 일 10개 했으니까 장난감 사주세요."


매 사에 조건을 달아대며 장난감을 사달라 졸라대는 6살. 매번 '이거 하면 이거 해줄게.'라고 조건을 달아 아이를 구슬렸던 지난 시간이 후회스러울 지경이다.


"이렇게 장난감이 많은데 또 사자고?"


"하지만 그리핑크스는 없단 말이야!"


정말 갖은 이유를 들어가며 장난감을 사달라 조르는 아이의 창의성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넘쳐나는 장난감을 보면 절로 한숨만 난다. 코로나로 집에 갇혀 지내는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아이의 장난감 집착은 더 심해졌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게 맞는 걸까?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





내가 지금의 아이만 하던 시절에는 장난감이 정말 귀했다. 나 역시 그 나이에 집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논 기억은 거의 없다. 친구들과 하릴없이 동네를 쏘다니며 놀이터에서 땅을 파고 숨바꼭질도 하고 우르르 왔다 갔다 하며 놀다가 밥 먹을 시간에 엄마가 부르면 하나 둘 집으로 들어갔던 그 시절이 너무 까마득한 옛날같이 느껴진다.


비가 와 밖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집 안에서 별별 놀이를 다 만들어가며 놀았었다. 종이인형놀이, 눈 가리고 잡기 놀이, 고무줄놀이, 책 집짓기 놀이 등... 집에 있는 것들을 다양하게 활용하면서 말이다.

 티브이도 나오지 않던 그 시절의 한낮은 정말 무료했던 기억이다. 아무런 할 일이 없어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르던 그 시절의 오후가 가끔은 그립다.



각해보면 우리 집은 유독 장난감에 인색했다.


"이제 다 컸으니 이런 건 없어도 되지?"


하며 집에 있던 몇 안 되는 소꿉놀이를 옆집 동생에게 줘 버린 게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우리 집에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그 흔한 바비인형 하나 없었다.


한 번은 나도 바비인형이 너무 갖고 싶어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형이 받고 싶다 말했는데, 어쩐 일로 엄마가 사주겠노라 하는 거였다. 그때의 어린 나는 크리스마스 아침을 얼마나 기다렸나 모른다.

 기다렸던 크리스마스 날, 나는 처음으로 인형 선물을 받았다. 대했던 바비인형 아닌 왠 멍청하게 생긴 고릴라 인형이었지만 말이다. 그날 받은 충격이 어찌나 컸던지 어른이 된 아직도 그때의 실망감이 생생하다.


아이들에게 자꾸만 새 장난감을 사 주는 건 어린 내가 받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가 아닐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 너도 인형은 인형이지... 이런 인형이 갖고싶었었는데..


그때는 장난감이 없어도 잘만 놀았고 시간도 잘만 흘렀다. 장난감 대신 엄청난 책을 들여주셨던 부모님 덕에 그 심심한 시간에 책을 읽었고, 학교 숙제는 검사하지 않아도 일기 검사는 꼬박꼬박 하던 부모님 덕에 아직도 마음을 글로 정리하는 걸 보면 장난감을 사 주지 않던 부모님의 교육 철학이 나름의 효과를 발휘한 듯 보인다.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장난감으로 뒤덮여 있는 지금 내 아이들의 방이 잘못된 것만 같고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속이 쓰온다.


요즘 아이들은 심심한 시간을 혼자 보내는 방법을 모른다. 부모인 나 역시 그 방법을 알려주기가 어렵다. 내가 뭘 하자고 하면 금세 실증내고 도망가버리니 뭘 하자고 하지도 못한다. 집 밖에 나가 놀면 시간이 잘 가지만 미세먼지와 코로나를 피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가는 것을 때론 귀찮아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아이답지 못하게 자라고 있는 기분이라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나 때를 생각하며 지금을 안타까워하는 걸 보니 이제 나도 꼰대라 부를 만한 나이가 된 건가 싶기도 하다. 우리 때와 다른 시대에 태어나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그 예전의 잣대를 들이밀면 안 되는 것일 텐데 말이다.





아니 저기요 여보세요?



너무 어린 나이부터 미디어에 노출된 아이들이 미디어 중독 증세를 보이는 일이 흔한 요즘이다. 뇌가 가장 활발히 성장하는 0세-3세 시기에 미디어에 너무 몰입하다 보면 뇌 발달에 문제가 생긴다고도 하는데, 코로나 시국을 살아 내면서 미디어를 보지 않고 자란 아기가 과연 있을까?


미디어 노출에 대한 부모의 걱정이 지나쳐서 그런지 또 항간에서는 아이가 생각을 하며 집중해서 보는 미디어는 또 괜찮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며 텔레비전을 보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일까?


변신 로봇 장난감으로 소근육을 발달시키고, 장난감 화장품과 소품으로 스스로를 꾸미며 자기애를 키우고, 텔레비전으로 세상을 배우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아마 부모세대인 우리들의 시간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아이 세대의 미래를 지금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우리들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의해버려 아이의 지금을 강제로 통제하는 것이 옳은 행위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육아에는 그 어떤 확신도 존재하지 않음이 아이러니 하지만, 이렇게 미숙한 부모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신의 소중한 아이를 정성껏 키워내기에 지구 상에는 이토록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하는 거겠지. 그리고 그 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엄청난 시너지가 이 지구를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만들어 가는 것이겠지. 우리들이 지금껏 해 온 것처럼 말이다.


장난감 미디어가 육아의 적 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중요한 건 그 속에서 부모가 방향을 잃지 않고 아이를 올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바보로 만드는 것은 장난감도 텔레비전도 아니고 본인이 무엇을 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성장하게 방치하는 부모의 양육방식일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기 판단력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을 해 주는 것, 그 방법이 장난감이든 텔레비전이든 그 속에서 방향을 잃어 아이를 뺏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금 부모인 내가 해내야 할 숙제인 것 같다. 아이에겐 아이의 숙제가, 부모에겐 부모의 숙제가 있다. 아이의 숙제만 강요하지 말고 부모의 숙제도 잘 해낼 수 있는 부모가 되자 오늘도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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