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의 일이다. 오며 가며 자주 만나던 일본인 남자 순례자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인가 어렸던 그 친구는 런던에서 알바를 하며 지내다 딱히 할 일도 없고 돈도 없어서 일을 쉬는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고 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관광코스로 지금은 더 유명해지긴 했지만 다른 유럽의 물가에 비하면 굉장히 저렴했다. 넉넉하게 10 유로면 하루치 숙식이 모두 해결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자신의 모국인 일본을 싫어했고, 돈을 아끼러 이 길에 왔기 때문에 지독하게 돈을 아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던 나이 있는 순례자들에게 돌아가며 밥이나 술을 얻어먹었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한 그의 태도에 일부는 불만을 가지고 있기도 했었다. 너무 가까워지지는 말아야겠다 생각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 어린 일본인 남학생들은 같은 아시안인 내 주변을 늘 배회하는 기분이 들었다.
길을 걸으며 수시로 커피를 마셔야 하고, 너무 뜨거운 오후엔 시원한 맥주도 마셔야 하며 저녁엔 당연히 와인을 먹어야 하는 나 같은 퇴사자 백수 순례자에게 돈을 쓰지 않는 순례자 친구는 조금 불편한 존재였다. 매일 내가 다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나에게 뭘 얻어먹거나 하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겠지만, 매번 나를 찾는 그가 내 지갑을 찾는 것만 같아 어쩐지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하루는 길을 가다 중간에서 그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단 둘이 걷게 된 그 시간이 다소 불편했던 건 그 친구에 대한 불만이 내 마음에 가득해서였겠지. 그와 함께 걷는 그 시간 동안 나는 커피 한잔 사 먹지 못했다. 혹시나 또 내가 사줘야 할까 싶은 쪼잔한 마음에서 말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 같이 앉아 물을 마시며 쉬고 있는 데 그 친구가 나에게 말을 했다.
"Hey Jiney, Why are you look down on me?"
순간 너무 놀라 무슨 소리냐고 그런 적 없다며 황급히 대답했지만 아직도 그날의 긴장이 생생할 정도로 당황했었다. 철없던 그때는 그의 그런 발언이 일본인 특유의 피해의식이라 여겼고, 나는 너를 무시한 적이 전혀 없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지?라고 뻔뻔하게도 생각했던 것 같다. 가난했던 그 친구를 무시하고 피했던 게 분명하다는 걸 지금은 잘 알지만 그땐 정말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무시하는 속물이라는 걸 그때는 인정할 수 없었으니까.
산티아고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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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새 동네에는 아이들이 참 많다. 우리 역시 아이의 진학을 염두에 두고 집 가까이 학교가 있는 이곳을 선택했기에 같은 이유로 이곳에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들이 모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같은 유치원엘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수십 명의 친구들을 매일 등 하원 길에 마주치고 또 놀이터에서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네 친구가 많이 생기게 되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겠다고 저들끼리 약속을 잡고 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친구가 되면 엄마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저마다의 환경에서 제각각 살아온 엄마들과 친해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공통된 관심사도 찾기 어려웠고, 어떤 수준으로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 지도 처음엔 막막했다.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며 나름의 일행들이 생겨났다.
처음은 아이들이 시작해도 나중엔 엄마들의 의지로 아이의 오늘 놀이 상대가 정해지곤 했다. 저 엄마는 별로다 싶으면 그 집 아이랑은 놀이터에서 만나도 조금 떨어져 놀게 되고 마음에 드는 엄마와는 집에 초대해서 저녁까지 함께 먹이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아이의 바람인지 엄마의 의지인지 헷갈리는 상태의 일상들이 이어지는 중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마주치는 이웃이 있었다. 같은 동에 살고 아이들이 같이 단지 내 어린이집엘 잠시 다니다 집 앞 유치원을 가게 되고 또 같은 반이 되었다. 놀이터에서도 만나고 아이를 등원시킬 때도 만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가도 만나고 볼일을 보다 들어오면서도 마주쳤다. 이 정도면 운명인가 싶을 정도로 자주 만나던 그 이웃과는 자연스럽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갔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감에도 그 시간의 깊이는 아주 얄팍했다. 수 없이 많은 대화가 오고 가고 많은 음식을 함께 먹었지만 여전히 친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사람을 깊게 사귀는 편인 나에겐 뭔가가 잘못된 듯 낯설게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어 이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런 기분이 한번 들기 시작하니 그 이웃과의 모든 시간이 불편해져 버렸다.
우선 그녀는 내 이야기를 잘 듣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를 해도 휴대폰을 하고 있을 때가 많았고, 내가 열심히 이야기 한 주제에 대한 피드백 없이 본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필요에 의해 함께 장을 보러 가고 밥을 먹었지만 그녀와 함께일 때 나는 주로 듣고 호응해주고 대답만 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내 얘기를 즐겨하는 편도 아니고 내 이야기만 들어달라 강요하는 것도 아니지만 번번이 묵살당하는 나의 소소한 일상과 별 거 아니지만 거창한 그녀의 일상이 반복되니 그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불편해져 버렸다.
누군가가 나를 무시한다라는 느낌을 받는 게 남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처음인 듯하다. 물론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 있는 요즘의 내 심리상태가 문제인 건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그렇게 생각이 들고 나니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더 이상 반갑지가 않았다. 왜 나를 무시하냐고 따져 묻고 싶은 건 아니다. 그냥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 준 그 사람 자체가 나에겐 어쩐지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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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예전 산티아고에서 만났던 그 일본인 남자애가 떠올랐다. 그는 나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기에 대놓고 그런 걸 물어볼 수 있었던 걸까?
내가 모르던 나의 행동들이 누군가에겐 불편함과 상처가 되었을 거라는 걸 생각하기 시작하니 마음이 못내 괴롭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내 주변의 모두를 챙기려 분주했고, 내 챙김을 받은 지인들은 응당 그에 상응하는 진심을 나에게 보여야 한다 생각했다. 그 강요 아닌 강요를 폭력처럼 휘두르며 내가 잘라낸 인연이 몇이나 되던가?
오래 알고 지낸 인연들이 끊어지게 되었을 때 '그럴만하지. 이건 걔가 너무했잖아?' 라며 스스로 합리화했고, "자꾸 친구들이랑 절교하는 거 보니 너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라던 언니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던 것은 어쩌면 나도 알고 있지만 스스로 인정할 수 없어 발악했던 건가 싶기도 하다.
내가 생각한 대로 세상이 다 돌아간다는 오만방자한 생각으로 가득 차 주변의 모두가 나를 맞춰주는 것이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온다.
"넌 너무 즉흥적이야. "
"넌 너무 주장이 강해. "
"넌 가끔 남의 이야기를 안 듣더라."
대충 흘려듣고 "나 원래 그런 애예요. " 하며 콧방귀를 뀌었던, 스쳐 지나간 인연들의 조심스러운 한마디들이 이제야 마음에 와닿는다. 참 오만하게 살았었구나 예전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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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 마주칠 그 이웃을 어떤 얼굴로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정작 그녀는 또 아무 생각이 없을 수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그 일본인 친구와도 아무 일 없이 끝까지 잘 지냈었으니 말이다. 다시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정중하게 사과의 말을 건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