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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좀 질척거려.

나는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by Jin

수술 후 몸을 추스르고, 나는 곧바로 다시 임신을 준비했다. 병원에서는 소파수술을 마친 자궁은 깨끗해져서 착상이 더 잘된다고도 했고, 다음 임신은 잘될 거라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니, 너무 걱정말라고도 했다. 나 역시 그럴 거라 생각 했다. 하지만,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해가 좋은 어느 날 본가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튀어나온, 작은 하얀 뱀이 나를 물었다. 나는 악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일어 났다. 꿈이었지만, 너무 생생해서 마치 다리에 아픔이 느껴지는 듯 했다. 그 꿈의 뒷 이미지가 생각 났다. 나를 문 뱀은 그 자리에서 이내 죽어버렸다. 이상했다. 나는 생리 예정일이 지났고 생리를 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임신이 아니길 바라며 임신 테스트를 했다. 하지만 두 줄이 떴고. 산부인과에서 다시 임신 확인을 받았다. 뱀에 물리는 꿈은 재물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도 나타나지만, 태몽으로도 해석되기도 했기에 나는 이미 꿈에서 이번 임신도 잘 못 될 거란 메시지를 어쩌면 받은 셈이었다. 두번 째 임신도 유지되지 않았다. 수술을 앞두고 오래 전 부터 약속 되어 있던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에 나갔다.


그 자리에서 첫 임신을 함께하고, 동시에 수술도 했던 친구가 임신 소식을 알려 왔다. 이번에도 그 친구와 나는 주수가 같았다. 나는 축하를 건내며, 마음 속으로 너라도 임신 유지가 잘 되고 있어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축하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나는 씁쓸하고 착잡해졌다. 그 자리에서 내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어차피 몇 명 모르는 나의 임신이었다. 이 모임에 있는 친구들 중 단 한 명만 나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다른 친구의 말에 오히려 사실을 알고 있는 친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나는 그 친구의 손을 한번 쥐고, 다른 친구들 틈에서 함께 웃었다. 그 웃음은 나의 슬픔을 바탕으로 했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면, 지금도 이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있었을까. ? 그때 임신한 친구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곧 너도 좋은 소식 있을 거야.”


친구는 분명 호의였을 테다. 다 잘 될 거라는 의미를 담은 건낸 말. 나도 그 말에 ‘그랬으면 좋겠다.’며 넘기면 되었을 텐데. 정제되지 못한 슬픔이 날을 세웠다. 마음 속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여러 마음이 가시처럼 돋아났다. 나는 싱그시 웃으며 말했다.


“안 그럴 수도 있잖아?”


어쩌면 나의 웃음 속에는 비아냥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친구는 내 말에 표정을 굳혔다. 자신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못한 나에게 날을 세웠다.


“이미 지난 일이잖아. 이제 그만 질척거려.”


…아.

그렇구나.


그 말을 듣고 나는 멍해졌다. 다른 친구들도 그 말에 조금씩 동조했다. 다음 임신이 잘 될거란 전제를 기반을 한 동조였지만 그 반대로 안 그럴 수도 있지 않는가. 나 역시 두번째 임신이 무사히 유지되고 있었다면 그 말에 그저 ‘응, 고마워’ 하고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상황이 그렇지 못했다. 나도 나에게 닥친 두번째 유산이란 상황을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기에 잘못이 없다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 임신이 유지되는 친구 앞에서 나의 두번째 유산을 언급하며 불안감을 줄 필요 없다. 생각했다.


유산으로 인한 슬픔이든 다른 형태의 슬픔이든, 누군가에게 불편한 감정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감정을 오래 안고 있는 미련한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옳은 것 처럼, 너무 쉽게 타인의 감정을 판단해선 안됬다. 나의 두번째 유산을 몰랐다 하더라도, ‘이미 지난 일이잖아. 이제 그만 질척거려.’ 이렇게 말해선 안되었다. 내 슬픔을 단숨에 사소한 일, 시덥지 않은 일. 더 이상 붙잡아서는 안되는 '이미 지난 일'로 만들어버렸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사소하고, 시덥지 않은 내 지난 슬픔으로 판단하고 마음대로 도려내려 했다. 사회는 슬픔을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받아들였다. 어쩌면 이 슬픔은 나를 스쳐 지나간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 두 존재를 추모하는 과정이었다. 슬픔이란 감정으로 밖엔 표현 할 수 없는 것 뿐이었다. 이 사회는 이 추모의 감정을 억누르라 요구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겪어보지 못한 자들의 입장에서 유산으로 인한 슬픔은 패배자의 감정이었다.


수 십명이 달리는 달리기에서 결승점에 들어가지 못하는 낙오자였을 뿐이었다. 빨리 털어내고 다시 임신을 향해 달려가야 할 감정처럼 느끼게 했다. 오래도록 가지고 있으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이 감정을 드러내는 나를 향해 그들은 예민하고 어둡고, 자신들의 즐거운 소식을 전해야 하는 자리에 불편한 감정을 붙들고 놓지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임신해서 술 못해서 아쉽다는 친구를 바라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시지 않았던 맥주를 마셨다.


이 맥주 한잔이 가지는 의미는 컸다.


나의 체념. 과 같았다. 임신의 종결.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더 이상 웃을 자신이 없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지만, 나의 뾰족한 마음의 결과가 이런 것이라면 나는 받아들였다. 씁쓸해졌다. 그날, 나는 몸이 좋지 않다는 말만 남기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 모임에 참석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단 한명은 제외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나는 정말 친구였을까. 친구라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도려내진 슬픔의 조각을 주워 들고 집으로 가는 좌석 버스를 탔다. 늦은 밤, 텅 빈 버스 안. 가장 구석자리로 가 몸을 구겨 넣었다. 앞 쪽 등받이에 머리를 깊숙이 파묻고, 나는 오래도록 울었다. 나는 이 일을 슬퍼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고, 질척거리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더 슬픈 것은 우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수술 날이 되었다. 보호자로 그가 옆에 앉아 있었다. 두 번째까지 친구에게 부탁할 수 없었다. 친구의 가득한 슬픔으로 번진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나의 슬픔으로 인해 내 친구도 덩달아 슬퍼진, 그 사실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번째 수술은 그가 강하게 말했다. 자신이 보호자로 가겠다고, 나는 마지못해 허락했다. 친구와 같은 같은 절차를 진행하고, 보호자로서 그가 사인을 한 후에야 나는 또 그 차가운 방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갔다.


그래도 두 번째니까, 이번엔 조금은 담담해 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겨울 처럼 차갑고 잘 베려진 칼 같은 수술대는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절차가 시작되었다. 팔과 다리가 묶이고, 나는 또 다시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사시나무 떨듯이 몸이 떨려왔다.


“졸리면, 주무세요.”


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 ‘왜 임신이 유지되지 않는 걸까…’ 하고 머릿 속에 떠 올랐다. 나는 도륵하는 눈물과 함께 눈을 감았다. 그리곤 깊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Photo by Jin



두번 째로

나에게 온 너에게

건내는 나의

작은 선물


행복한 가정에게서

사랑 받는 존재로

건강하게 다시

태어났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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