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1월의 나. 묵은 해 1월의 나는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새해를 맞이하며 변화한 나와 변하지 않은 나에 대해 고찰하며 글을 써보려 했더니 좀처럼 진행이 되질 않는다. 글을 쓰는 와중에도 심오해졌다가, 우울해졌다가, 어느 순간 돌연 희망차거나 대범해지며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 때문에 글도 함께 오락가락이다. 아무래도 아직 변화가 진행 중이고, 나는 그 변화에 여태 적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직 무언가 고찰을 하거나 결심하기엔 시기상조인 현재 진행형의 변화. 그러므로 온전하고 거창한 글을 쓰겠단 마음을 버리고 간단하게 끄적거리듯 나의 상황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나도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를 좀 알아야겠으니까.
작년에 비해 올해 들어 달라진 점은 다음과 같다.
직업이 바뀌었다. 엄청난 변화다. 잠시 글로 돈을 벌어먹겠단 생각은 접어두고 영어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름 부원장이란 직함도 생겨서, 학원 관리와 더불어 수업도 몇 개 하고 있다. 한글보단 영어를 더 많이 보고,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기보단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주고 장난을 걸기도 하며 입으로 떠드는 일이 더 많아졌다. 전에도 아르바이트, 보조, 임시 등의 수식어를 단 채 많이 해본 일이긴 한데, 본격적으로 나를 선생님 혹은 부원장으로 소개하며 일을 하는 건 처음이다.
사실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이를 갈던 일이다. 해보니 생각보다 할 만하고, 의외로 잘 한다. 하지만 즐겁진 않은 것 같다.
엄청난 변화 2번. 그동안은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서울 1인 거주자였다. 지금은 서울보다 대전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가족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고, 그 학원이 대전에 있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다. 월요일 아침 일찍 대전에 내려와 평일을 부모님과 동생이 사는 집에서 머문 후 금요일 밤, 일이 끝나면 서울로 올라와 주말을 보낸다. 이렇다 보니 나도 내가 어디서 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서울 집도, 대전 집도 내 방은 있지만 내 공간은 아닌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깨달은 것도 있다. 나는 무조건 홀로 있는 나만의 시간을 최소한 하루는 확보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주말에 일이 있어 혼자 지내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일주일 내내 예민한 상태가 지속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곤 생각했는데, 필수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주말 하루는 친구를 만나고, 하루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잠으로 하루를 날려버리게 되더라도 그 고요한 시간이 나에겐 필수다.
1번과 2번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엔 마음가짐의 변화가 큰 몫을 했다. 사실 내게 학원 일을 한다는 건 ‘실패했다’라거나 ‘포기했다’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남들이 보면 무슨 말인가 싶을 테고,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면 화가 날 이야기지만. 그러나 20세 성인이 된 이래 삼십 대가 된 지금까지도 ‘그런 걸 하느니 학원이나 하라’며 온갖 회유와 협박과 가스라이팅을 일삼던 엄마에게 시달리고 있다 보니 내겐 지금 상황이 현실에 굴복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다만 당면한 현실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글 쓰는 일만 가지고 먹고살기엔 내 수익이 너무나 미미하고,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하며 살지만 먹고 살 만큼은 있어야 하는 건 맞으니까. 일단 돈을 벌어야 한다. 다만, 현실에 안주한다든지, 포기하거나 실패했다든지 하는 극단적인 표현은 쓰지 않기로 했다. 이건 타협이고, 직시고, 준비다. 요즘 시대에 직업을 정했다고 평생 그걸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일도 해보고 저런 일도 해보는 거지 뭐. 내가 좋아하는 일은, 잠시 멈췄다가 안정을 찾은 다음 다시 정비하고 시작해도 늦지 않다.
하기 싫다고 무작정 밀어내지 않고 일단 해보자고 마음먹었더니, 생각보다 일도 할 만하다. 이만하면 제법 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재능이 너무 많구먼. 당분간은 이런 자뻑으로 나를 달래가며 일을 해보려 한다.
반면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사실 난 사고방식이 다소 극단적일 때가 있어서, 지난번 출간한 책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슬슬 포기하고 글 쓰는 걸 그만두자고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참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작가라고 말하기도 민망하다고 나를 타박하며 죄다 그만두려고 했는데. 웬걸. 그게 쉽지 않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뭔가를 쓰는 걸 좋아하긴 하는 모양인지, 마음이 우울하거나 오히려 즐거울 때면 자꾸 이 소재, 저 소재가 떠오른다.
그럼 굳이 좋아하는 걸 부정할 필요는 없지. 그냥 취미 삼기로 했다. 이걸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은 받을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더 좋은지도 모른다. 이연 작가의 책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에서 작가는 “무명을 즐겨라.”라는 말을 한다. 어차피 아무도 날 모르는 김에 누가 이걸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버리고 내가 쓰고 싶은 거나 쓰기로 했다. 마감의 압박이 없으니 쓰는 속도도 한없이 느리지만, 이 또한 취미인데 뭐 어쩌랴 싶다. 다만 쓴 것은 웹 소설 플랫폼이든, 블로그든 어디든 올려놓기로. 그럼 누군가의 눈에 띌지도 모르지. 아니면 말고.
살고 싶은 미래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대전을 벗어나고 싶고, 글 쓰는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싶고, 친구들과 어울려 살고 싶다. 학원 일이 할만해졌다고 이걸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아닌 것 같다. 내 행복의 기준과 엄마의 행복 기준이 다르다 보니, 엄마가 반쯤 강요한 일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그걸로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지난번에 썼던, 친구들과 한 건물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모습을 여전히 꿈꾼다.
그럼 어디든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는 길을 닦아놓아야 한다. 지금 당장의 모습은 내가 원하는 모습과 영 멀어진 것 같긴 하지만, 돌고 돌아가더라도 결국 원하는 곳에 도착만 하면 되니 걱정할 건 없다. 하기 싫다고 거부하던 일도 막상 해보니 잘하는 걸 보면, 나도 몰랐던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좀 더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걸 찾다 보면 또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길을 틀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원하는 미래상이 여전히 있는 건 참 다행이다.
이게 나의 근황이다. 많이 바뀌고, 그 와중에 무언가는 변하지 않아 이리저리 흔들리는 상태. 그래서 2024년의 목표는 ‘안정’으로 정했다.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하여간 무엇이든 안정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 올해의 목표다. 이다음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딛고 올라설 안정을 닦아놓는 것. 과연 2025년 1월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돌아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