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과 무의 계절

by 새로나무

바깥바람이 제법 차다. 문이 열릴 때마다, 바람의 존재감을 새삼 느끼며 몸을 움츠린다. 문과 밖 사이의 얇은 경계가 주는 따뜻함에 안도하다가도, 틈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이 밑에서 위로 올라오면 싸늘해지고, 안쪽의 아늑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안과 밖의 차이를 느끼며 힘들어하는 일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그러나, 추위는 참기 힘들다. 그 차이가 너무 명확하게 살갗에 와닿기 때문이다.


7월 하순 퇴근하고 문을 열자 수증기를 머금은 더운 열기가 훅 몸 안으로 밀려들어와 당혹스러웠었다. 그때와는 정반대의 느낌이 문을 통해 나의 감각을 깨운다. 내 몸의 항상성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느끼는 느낌의 생생함이 지금 여기와 함께 한다. 나는 뭔가를 아는 존재로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존재로서 아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 감각은 그렇게 진실을 향해 있었지만, 어쩐지 뭔가를 아는 것 속에서 느낀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다. 느낌이 점점 더 소중해지고, 느낌을 통해 나를 구성하는 생태계의 안정성에 대해 한발 더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겨울 찬바람은 태백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곳의 바람은 난폭하고 날카롭고 집요했다.

골바람이 불면 몸 전체가 흔들렸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설명하기 힘든 허기 같은 것이 남았다.

그 시절엔 옷이 무거우면서도 추위를 막아주는 기능은 떨어지던 시대였다. 그때 그 추위를 녹여준 음식이 생각난다. 어머님이 겨울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만들어주시던 어묵탕. 뭉텅뭉텅 썰어 넣은 겨울 무와 대파, 그 사이에 깊게 자리한 어묵. 뜨끈한 국물과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던 무, 생선살들의 맛이 살아있었던 어묵이 추위를 견디게 해 주었다. 지금에서야 어머님의 손맛이 스며들어 있음을 희미하게 알아채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때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려는 찰나, 서비스로 대파 조각들이 아름답게 장식된 무 한 덩어리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겨울 무의 포근한 질감은 언제나 정답이다. 아직 완전히 익지 않았다고 덧붙이는 주인장의 배려를 같이 얹어 한 입 베어문다. 어린 시절보다 겨울 찬바람에 대한 해결 방법은 많아졌다. 그 음식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만큼이나 많지만 북극성은 오직 하나, 어묵과 무다. 무에서 출발해 무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음식이 무가 아닐까? 이번에도 아주 멀리 가버렸다. 이게 그렇게 멀리 가야 할 소재인가 싶다.


치아에서 녹아내리는 무의 식감 속에 국물 속에서 겪었을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의 미세한 세계를 상상한다. 목을 넘어 위장과 소장을 지나 대장에서 분해될 무가 만들어줄 몸 안의 생태계를 상상한다. 정체불명 생선들의 협업 속에 탄생한 어묵은 음식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 정체불명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생선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국물에 대파와 후추를 계속 리필받는 순간 꾸덕하고 입에 착감기는 스지와 생맥주를 한 잔 더 주문한다. 칙사대접을 받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음식들이 빚어놓은 향연 속에 취하면서

겨울밤은 더 깊어간다.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지금 여기로 불렀다.

이봐 무 한 조각 정도면 찬바람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한 입 먹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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