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푸드 플랫폼 기업의 HR 임원과 한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기술 기반의 플랫폼 기업이라면 재무 성과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뚜렷한 비전과 가치가 이미 깊이 정립되어 있었고 이를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강조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화이트보드에 피라미드를 그리며 이렇게 설명했다. 가치의 통제선이 뚜렷하면, 구성원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좌충우돌하더라도 결국 스스로 기준을 찾아 비전의 방향으로 수렴해 나아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무실 벽에 붙은 포스터 하나, 사내 행사명 하나에도 기업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는 명확한 가치 기준이 있을 때 구성원들이 그 안에서 자유롭게 실험하고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 가치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치가 내재화된 구성원은 매번 팀장에게 묻지 않아도 된다. 회사의 가치 기준이 그 자체로 나침반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가 강조했던 가치 중심의 관리 방식은 내게 의미 있는 통찰로 남아 있다.
그런데 가치를 조직 전체에 내재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넷플릭스의 최고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였던 조나단 프리드랜드(Jonathan Friedland)가 갑작스럽게 해고된 사건이다.
그는 회의 도중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를 발음했다. 더 결정적인 사건은 두 명의 흑인 HR 직원이 사안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갔을 때, 그는 사과를 하지 않고 같은 단어를 다시 언급했다.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넷플릭스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과 포용, 상호 존중의 원칙을 위반한 그를 즉시 해고했다.
당시 공지문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나단의 발언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으며, 자신의 말이 타인에게, 특히 유색인종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에 대한 인식이 현저히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Jonathan's comments were deeply troubling, and showed a significant lack of awareness of how his words hurt others, particularly people of color.)"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의 가치를 가장 신중하게 다뤄야 할 최고 커뮤니케이션 책임자가 소통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일이 낯설지만은 않다. 이탈리안 셰프가 봉골레 파스타에 마늘을 빠뜨리고, 법을 다루는 전문직이 법을 어기고, 인테리어 사업가의 집이 난장판인 경우가 있다.
신입사원은 몰라서 선을 넘지만, 경영층은 알면서도 선을 넘을 수 있다. 가치를 가장 잘 안다고 여기는 사람일수록, 그 가치를 당연 시 여기다가 무너질 수 있다. 기업의 가치는 선언하는 순간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강조하고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지켜 나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내재화된다.
익숙함은 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