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직장/학교 관계에서의 역할 연기

by 한끗

우리는 매일 보이지 않는 무대 위에서 살아간다. 출근길에 맞춘 표정, 회의 시간에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는 제스처, 동료와의 짧은 농담 속에 스며 있는 미묘한 거리감, 그리고 학교에서, 혹은 조직 안에서 나를 규정하는 직함과 평가의 언어들 속에서 나는 점점 한 인간이라기보다 하나의 역할로서 존재하게 된다. 사람들은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지만, 그 이름 속에는 언제나 역할의 그림자가 함께 따라붙고, 우리는 그 그림자를 나 자신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때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진정으로 나로 존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회가 요구하는 대본 속에 배역을 부여받은 배우로 살아가고 있는가. ‘착한 사람’, ‘성실한 직원’, ‘겸손한 후배’, ‘유능한 선배’ 같은 말들은 겉으로는 칭찬처럼 들리지만, 실은 그 안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떤 감정을 삼켜야 하는지 이미 규정된 연극의 지문이 숨어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지문에 맞추어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하루를 이어간다. 그렇게 나의 진심은 점점 얇아지고, 내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며, 결국 나는 ‘나답다’는 감각을 잃은 채 살아가게 된다.

사회학자 에르빙 고프먼은 인간을 ‘무대 위의 배우’로 보았다. 그는 우리가 매 순간 자신을 연출하고,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적절한 자아’를 내보이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읽을 때마다 묘한 섬뜩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매일의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 아래에 있다. 평가받고, 해석되고, 비교당하며,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조정한다. 타인의 기대는 보이지 않는 대본처럼 우리의 몸짓을 통제하고, 언어를 선택하게 만들며, 감정의 강약을 조절하게 한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나를 바라보는 나조차 ‘관찰자’가 되어버리고, 진짜 감정은 무대 뒤편 어딘가에 남겨진 채, 나는 그저 익숙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직장이라는 공간은 특히 그런 연극성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곳이다. 조직 안의 인간관계는 감정보다 기능이 우선되고, 대화는 공감보다 효율이 강조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솔직하기보다, 서로의 경계를 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때로는 웃음 속에도 피로가 섞이고, 침묵 속에도 계산이 숨는다. 상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동료의 부탁에 흔쾌히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도 내 시간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의 내면을 조금씩 깎아내며, 관계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미세한 상처들은 금세 잊히지만, 그 상처의 흔적은 내 안 깊숙이 남아 나중엔 무표정한 익숙함으로 굳어버린다.

학교 또한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성실한 학생’, ‘리더십 있는 선배’, ‘적당히 순응하는 후배’라는 역할을 요구받으며, 자신의 가능성보다 타인의 평가에 더 익숙해진다. 칭찬받는 기준에 맞춰 자신을 다듬고, 눈치껏 대답하고, 상황에 맞게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아를 조립하는 법을 배워왔고, 그 결과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무엇을 원하는가’보다 앞서게 된다.

나는 가끔 그런 순간을 마주한다. 모두가 웃고 있는 자리에서 문득 숨이 막히는 순간, 아무 일도 없는데 마음 한쪽이 허공처럼 비어 있는 느낌이 들 때, 그것은 아마도 내가 너무 오랫동안 무대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심을 말하고 싶지만, 진심을 말하는 순간 이 관계의 질서가 흔들릴까 두려워 침묵을 택할 때, 나는 내가 사회라는 거대한 극장의 조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동시에 그 깨달음이 나를 조금 자유롭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 순간 나는 내가 배우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인간은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역할을 수행하는 나 또한, 그 역할을 인식하는 순간부터는 선택할 수 있는 ‘나’로 다시 태어난다. 나는 언제든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다. 무대 밖의 삶은 때로 불안하고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그곳에서는 내 목소리가 진짜 내 목소리로 울린다.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살아야 하기에 결코 완전히 무대에서 벗어날 수 없겠지만, 최소한 우리는 그 연극이 연극임을 알고 연기할 수 있다. 그것이 어쩌면 ‘진정성’이라는 단어의 가장 현실적인 의미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안다. 진짜 자유란 무대를 떠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을.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 안의 나를 잊지 않고,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이 사회라는 거대한 극장에서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다시 무대에 선다. 아침의 인사를 건네고, 메일을 확인하며, 누군가의 말에 맞춰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모든 행동 뒤에는 여전히 진짜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배우이면서 동시에 관객이고,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그 역할을 바라보는 존재다. 그 자각 속에서 나는 비로소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자유롭게 흔들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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