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보여준 그 혁신속에서 미래를 엿보다

레인 누니 저, 오현석/박기성 역, '애플, 파괴적 혁신의 시작'

by Jinho Yoo

알테어 8800 이야기

간만에 차례 정리도 없이, 마음이 가는대로 써보는 글을 적어봅니다. 우선 이 시대에 애플 II라니… 이제 이 물건을 제대로 본 사람도 없고, 여기에 뭔가 돌아가는 걸 본 사람들도 드문데 말이죠. 그래도 저는 이 책을 받자마자 이틀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우선 이 책은 애플 II를 그 당시의 ‘iPhone’과 같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한 과정이 경이롭고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전까지는 이른바 ‘시분할 컴퓨터’와 같이 여러 사람들이 ‘하나의 기계’를 쓰는 구조였습니다. (그 전에 펀치카드 쓰던 분들 이야기는 안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이크로칩의 발달로 개인의 책상위에 뭔가 올려놓고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바로 마이크로 칩을 확장한 마이크로 컴퓨터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세계최초의 마이크로 컴퓨터는 아래에 있는 ‘알테어 8800’입니다.

image.png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에 올라온 알테어 8800의 광고

그런데 저 잡지 광고를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드신다면 ‘신세대(?)’가 틀림없습니다. 모니터도 키보드도 없죠? 맞습니다. 한마디로 이것만 사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먼저 확장카드를 붙여서 단말기를 연결해야 합니다. (이거 없으면 저 패널의 토글과 LED만을 이용해서 컴퓨터를 써야 합니다, 상상도 안갑니다.) 스위치로 기계어 명령어를 메모리에 주입하고 프로그램을 실행후 결과는 LED로 나오는 방식입니다.

알다시피 이 기계에 BASIC 인터프리터를 만든게 마이크로소프트라고 했는데, 그럼 어떻게 BASIC을 돌렸을까요? 우선 메모리가 부족해 메모리를 확장해야만 했으며, 직렬 통신 포트 확장 카드, 텔레타이프 등 비싼 장비를 추가로 구매해야만 했습니다. 게다가 단말기로 BASIC을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다 구성했다고 해도 처음에 BASIC 인터프리터를 로딩하기 위해 부트로더만큼은 부팅 때마다 직접 스위치로 입력해야 했습니다. 그 다음 베이직은 종이 천공 테이프로 로딩해와야 했습니다. 이 아스트랄한(?) 환경이 이해가 안가시면 아래 영상을 보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xU_3dEJ2nM

이 영상을 보신 분들이라면, 컴퓨터에 BASIC코드를 돌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최초의 컴퓨터’였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이 시대에 컴퓨터라하면 여러사람이 한대의 기계를 공유해서 쓰는 ‘시분할 시스템’이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에 의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무언가 ‘컴퓨팅을 개인적으로 돌릴 수 있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뭐랄까,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만의 기계로 인간을 닮은 그 무언가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게다가 저는 이 기계가 ‘개인’만 쓰는 것이니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할 이유도 없었기에 더 다양한 시도를 해봤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플 컴퓨터의 시작

사실 우리는 스티브 잡스를 애플하면 떠올리지만, 애플 컴퓨터는 ‘사실상’ 스티브 워즈니악의 작품입니다. 워즈니악은 사람들이 모임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은 관심이 없어서 소외감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만큼 생소한 물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워즈니악은 인텔 8008 마이크로프로세서 복제품의 회로도를 밤에 자세히 보고 이 실체를 깨달았습니다. 이 복제품이 본인이 5년전에 만든 물건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훗날 애플 I이라 불리는 기계를 스케치했습니다.


워즈니악이 그린 첫 그림은 ‘TV’였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TV 단말기 내부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집어넣는 방식을 떠올린 것입니다. 이미 사람들에게 키보드가 달린 TV단말기는 매우 인기가 있었고 별다른 복잡한 회로 없이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워즈니악은 이 키보드 입력과 화면 출력기능을 필수요소로 생각했습니다. 아래의 애플의 광고 이미지를 보시지요. ‘You don’t need an expensive teletype.(비싼 원격서버에 연결하는 텔레타입이 필요하지 않아요)’왜? 내장된 비디오 출력과 키보드 인터페이스 (그러니까 키보드와 모니터는 사서 쓰라는 거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플I은 저 광고전단에 나온 ‘회로판’입니다. 케이스도 없었습니다.

image(1).png 당시 애플의 광고. (책에는 다른 버전이 올라가 있더라고요.) "You Don't need an expensive teletype."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이런 보드에 아래 그림처럼 나무케이스를 만들어 붙이는 개인 이용자들도 있었습니다.

image(2).png 이렇게 직접 키보드와 케이스를 만들어 붙인 그림이 애플 컴퓨터에 대해서 뒤지면 꽤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어설픈 모양을 넘어서 제대로 된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 스런 모습은 애플 II에서 제대로 구현됩니다. 모니터는 집에 있는 TV 우선 붙이면 되고, 키보드가 내장되어서 입력만 하면 화면에 뭔가 나타나게 됩니다. (알테어 8800을 생각해보세요, 키보드를 누른다고 뭐가 나오는게 없습니다.)

image(3).png 애플 II, 우리가 아는 그 모습입니다. 모니터는 집에 있는 TV를 붙일 수도 있고, 디스크 드라이브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이 애플 II의 여러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뚜껑을 열어서 확장 보드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 뜻은 애플에 다양한 미디어와 기능을 확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 애플 II의 이 확장성 때문에 많은 기능확장을 위한 하드웨어들이 나왔습니다. 제대로 된 사운드를 만들 수 있는 머킹보드, 지금의 터치 스크린 같은 기능을 하는 라이트펜, Z80 CPU가 달린 MS에서 나온 소프트카드(CP/M 같은 Z80용 소프트웨어 구동을 위해 이용), 혹은 당구장이나 볼링장 기계(이거 알면 찐 고인물입니다.)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image(4).png 이렇게 케이스를 열면 추가로 보드를 붙일 수 있었습니다.


둘째, 그 당시치고는 매우 높은 그래픽 사양입니다. 40컬럼의 텍스트 모드, 저해상도(40x48) 그래픽 모드, 고해상도 그래픽 모드(280X192)를 당시에 지원했는데, 그래픽 모드가 있기에 게임등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바로 BASIC을 전원을 키면 바로 쓸 수 있습니다. 즉, 전원만 키고 내가 컴퓨터에 바로 BASIC으로 명령을 내리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십시오. 그리고 알테어 8800에서 저 BASIC code를 쓰기까지 얼마나 걸리는 지를 비교해보십시오. 이래서 ‘파괴적 혁신’이라는 것입니다. “It works!” (Apple이 iPhone새 기능을 소개할 때마다 하는 말이죠, 그냥 돼!)

https://youtu.be/l1e8jByezhw?t=24


애플을 유명하게 만든 소프트웨어들

문제는… 이 위에서 뭘 해야 할지 한참동안이나 애플 조차도 몰랐습니다. 저렇게 개인에게 전원만 키면 컴퓨터에 일을 시킬 수 있는 준비가 되었는데 정작 이 위에서 뭘 해야 할지가 막막했습니다. 이 책에도 애플조차 광고로 컴퓨터가 뭔가 ‘멋진’일을 해 낼거라고 선전은 했지만, 정작 마땅한게 없었습니다.


책에 의하면 초기에는 초보적인 어셈블러와 텍스트 편집기, 단조로운 애플리케이션들, 허술한 게임들, 세금 계산을 도와주는 프로그램들 뿐이었습니다. 전문직 종사자가 쓰거나 소규모 사업자, 교육자를 위한 실용적이고 쓸만한 소프트웨어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디자인 수업을 들을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물건들은 만들어준 목적이 있었습니다. 컵은 물을 담기 위해서, 책상은 앉아서 뭔가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인간의 목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목적이 없는 물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컴퓨터였습니다. 그냥 컴퓨터 자체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 이걸 사람이 ‘목적’을 가지고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BASIC하나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뭐요?


그러다가 비지캘크가 나왔습니다. 비지캘크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스프레드시트의 원조로 진정한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의 시작이었습니다. 숫자로 뭔가 하는 일들, 과학계산이나 회계외에도 모든 비즈니스를 ‘전산화 하는 과정’이 이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서 할 수 있게 된것입니다. 마침 넉넉한 메모리와 디스크라는 매체를 사용할 수 있는 애플 II가 있었기에, 이 위에 비지캘크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이 비지캘크 덕에 소프트웨어를 유통시키는 퍼블리셔라는 비즈니스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고 구조마저 스프레드시트로 모든 것을 정리하며 반드시 숫자로 무언가 검증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스프레드시트식 지식관’이라고 합니다.

사실 회사를 다니다보면 각 부서에 있는 ‘마법의 엑셀파일’하나씩 다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뭔가 서비스를 하는데 코딩없이 데이터만 넣어도 자동화 해주는 그런 엑셀파일들 말입니다. 이런 것의 시작이 비지캘크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컴퓨터는 ‘일을 도와주는 도구’라는 목적이 생겼습니다. TV가 지능을 가지고 사람들을 돕는 물건으로 바꿔주고 있는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TONVE5wgJ4

그 외에도 이 책에서는 게임과 디스크 복사 방지를 깨버리는 프로그램, 프린트샵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절반 이상이 애플 II에서 돌아가던 재미있고 일상에 도움이 되었던 소프트웨어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아래 영상을 보면 프린트샵이 어떻게 여러가지 생활에 유용한 인쇄물을 만들어내는지 그 재미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이런 도트프린터가 최선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E4TQ1EeJB0

AI시대, 애플 II가 가져온 파괴적 혁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는 이 책을 보면서 계속 ‘문명의 전환기는 어딘가 늘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이 LLM이란 것을 만들었을 때, 이는 개인이 혼자 자신의 컴퓨터에 그냥 띄우기에는 너무 많은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다가 오픈AI가 처음으로 REST API로 호출만 해도 LLM을 사용할 수 있는 ChatGPT의 API를 선보였습니다. 저는 마치 이 상황이 집단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해야 했던 시분할 시스템에서, 개인에게 마이크로칩을 이용한 마이크로컴퓨터가 주어진 것과 같이 보였습니다.


이제 이 REST API로 쉽게 쓸수 있는 LLM에 RAG, 가드레일, Human in the loop등의 여러가지 ‘도구’들을 붙여서 ‘증강된 LLM’(Augmented LLM)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저에게는 마이크로컴퓨터에 모니터와 키보드라는 기본적인 도구가 붙은 것과 같이 보였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이 IC의 발달로 마이크로컴퓨터를 만들기까지 했으나, 도대체 이것으로 무엇을 할지 확실하지 않았던 시대와 겹쳐 보였습니다. 이후 다양한 오케스트레이션 프레임워크 기반의 에이전트들이 등장함으로 제대로 일을 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비지캘크 같은 업무용 애플리케이션의 등장과 같이 보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애플 II 이후의 역사는 어떠한가요? 사람들은 비지캘크를 쓰기 위해서, 게임을 하기 위해서, 프린트샵 같은 생활 유틸리티를 쓰기 위해서 애플 II를 샀습니다. 그 이후 IBM도 PC시장에 들어왔고 성능이 향상된 PC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더 어렵고 복잡한 일들을 하는 시대가 되었으나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 프리젠테이션 도구 외에도 여러 사무용 업무 시스템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AI시대에 이 다음은 무엇일까요? 명확한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정도 양이 넘치게 되면 늘 질적향상이 생기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지향점은 어딘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애플 II시절에도 보던 워드프로세서, 스프레드시트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SaaS형태로 쓰이고 있습니다. 즉 바뀌지 않고 반복되었던 패턴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제일 쉬운 도구는 과거에 혁신이 어떤식으로 발전되었고 어디로 갔었는지를 아는데에서 출발한다고 봅니다. 이 책은 우리가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는데 큰 영감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을 통해 1970~1980년대의 마이크로컴퓨터 시대의 기록을 보시면서 미래를 탐구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9615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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