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사람이 싫은 날, 하나님 나라를 그리며

by JJ Ella


<사람이 싫은 날,

하나님 나라를 그리며>


사람이 싫은 날이 있습니다.
말과 글로 난도질하고

표정 하나에도 상처를 주는 사람들,
차라리 혼자인 게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사람이 싫다’는 마음은
누군가를 미워해서라기보다,
지쳐버린 내 마음이 내는

작은 신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떠올려 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자조차 초식동물처럼 변하고,

아이가 독사 굴 앞에서 놀아도

해를 입지 않는 세상입니다.


이 모든 묘사는 문자적 현실이라기보다,

상처와 악함이 전혀 없는 완전한 평화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된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메시아와 평화의 왕국(이사야 11, 1-9)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דַּעַת)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단어풀이 : 경륜

한국 성경에 경륜 또는 모략으로 번역된

이사야 11:2에서 말하는 "경륜"은

단순한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 안에서의 체험적 앎을 뜻합니다.

이는 창세기 4:1

“아담이 하와를 알았더니(yada‘)”라는 표현처럼,

히브리어에서는 ‘앎’이 곧 관계를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통해 오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앎을 뜻합니다.]**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힘없는 이들을 정의로 재판하고

이 땅의 가련한 이들을 정당하게 심판하리라.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막대로

무뢰배(불량배)를 내리치고

자기 입술에서 나오는 바람으로

악인을 죽이리라.

정의가 그의 허리를 두르는 띠가 되고

신의가 그의 몸을 두르는 띠가 되리라.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도

사람들은 악하게도 패덕하게도

행동하지 않으리니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들으면 좋은 찬양 :

악뮤 이찬혁 파노라마, 장례희망 오피셜 영상]

https://youtu.be/Y7C8qIpo7Dg?si=sCrOVHcUnHkHDSMQ

https://youtu.be/L_Ph8rov5E8?si=KjXvZD5BDv-FK70O


[이찬혁 청룡영화상 공연, 파노라마]

https://youtube.com/shorts/G7KpzemUMD4?si=-TRjH3krvJGZJ3sG

나를 둘러싼 사람들

고장 나버린 내 몸을 두고

저 돌팔이 의사가 사망 선고를 하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스쳐 가네 파노라마처럼


[이찬혁 청룡영화상 퍼포먼스, 장례희망]

https://youtube.com/shorts/86_QHmtSI8E?si=suiqxntOcmGQ7llC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땅 위에 단어들로는 표현 못 해

사진을 못 보내는 게 아쉽네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내 맘을 다 전하지

못한 게 아쉽네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함께 일어나 춤을 추고 뛰며 찬양해


할렐루야

꿈의 왕국에 입성한 아들을 위해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이찬혁 퍼포먼스의 신학적 해석]


청룡영화제에서 이찬혁 군이 보여준

퍼포먼스를 보며

"저 친구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예술가’구나,

그동안 동생을 빛나게 해주고

지금은 그가 독수리 처럼 날아 오르는구나."


"그의 영감은 단지 노력이나 재능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영감에서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약 성경 출애굽기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출애굽기 31:3)


이찬혁의 무대는 그 말씀의 '아웃풋(output)'

직접 눈으로 본 것 같았습니다.


그의 퍼포먼스를 곱씹어보면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그는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무대에 등장합니다.


관객들은 잔이 쏟아질까 봐

조마조마해하며 집중하게 되죠.


그러나 그는 마치

"인생에서 그런 사소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는 듯
춤을 추며 잔을 쏟아버리며


너무 작은 일에 안절부절하며

매여 있는 우리를 향한 통쾌한 일침을 날립니다.


이어서 들려오는 노래는

그가 작사·작곡한 〈장례희망〉입니다.


“할렐루야
큰 목소리로 기뻐 손뼉 치며 외치세”

라는 코러스와 함께

그는 곧 입관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특이하게도 뒤로 눕는 방식이 아니라,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가듯이

관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퍼포먼스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이다.”

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정말 전율이 흘렀습니다.


신학적 해석이 담긴 퍼포먼스를
이토록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찬혁 군과 그의 여동생,

악동뮤지션을 보고 있자면


하나님이 친히 함께하고 계시는 영혼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재능과 영감,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며

음악, 춤, 모든 예술은 결국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된

도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사람이 싫은 날의 기도문]


아버지,

어제와 오늘,

악한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지치고 고단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에는

악함도 패덕함도 없음을 기억하며,
주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할

그날을 소망하며 인내하게 하소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으로

저희 마음을 채워주시고,

아직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사
그들 또한 주님을 알고,

주의 나라를 함께 희망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저희를 힘들게 하는 원수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해악을 끼치는 자로 머물지 않게 하시며,
주님의 빛과 소금으로 새로워지는

은혜의 기회를 허락하소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시작의 문이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을 뵙는 생의 마지막 순간,
저와 제 장례식에 오는 모든 이들이
‘할렐루야!’ 기쁨의 손뼉을 치며 외치는
그런 축제 같은 이별을 맞이하게 하소서.


짧은 파노라마 같은 인생을 살며,
돌아보면 너무나 사소하고 덧없는 세상 일들에
두려움과 불안으로 매이지 않도록
언제나 주님 안에서 저희를 붙들어 주옵소서.


이 땅, 대한민국에도 이찬혁과 같은

주님을 아는 예술가들을 많이 일으켜 주시고,
문화로 선교하는 나라 되게 하시어

이 민족이 주님의 나라와 뜻을 위해
아름답게 쓰임받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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