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한 오사카 여행기(2016년)
“혜진아, 여행 너무 좋다. 또 가야겠어.”
“혜진아, 우리 그때 마지막 날 갔던 백화점 이름이 뭐였지?”
“혜진아, 엄마는 일본이 맞는 것 같아. 오사카보다는 교토 같은 분위기가 더 좋더라. ”
올해 7월, 엄마와 오사카로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 대한 잔상이 일상에 무뎌지기 전까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갔던 곳들의 정확한 지명을 한 번에 기억할 수 없는 나이대가 무색하게,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내게 물었고,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대답해주었다.
엄마와의 여행은 정확히 6년 만이다. 2010년 7월, 우리는 호주로 10일 정도의 가족여행을 갔었다. 당시 나는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 대학교 1학년이었고, 여행의 주체는 나여야만 했다. 내가 원하는 관광지, 식당 위주로 여행을 채우기 바빴고, 근사한 풍경 앞에서는 내 독사진 하나면 족했다. 호주의 광활한 대지와 푸른 바다는 숨 막히도록 아름다웠고, 거대한 자연 앞에 느낀 경건함은 범접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이었다. 호주에 대한 내 기억은 이러했다.
엄마는 대신, 그 여행을 “엄마, 비켜!”라는 네 글자로 정리했다. 파도가 빚어낸 절벽과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었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도 아니고, 지상낙원이나 다름없었던 '탕갈루마 리조트'도 아닌 그 부끄러운 한마디라니... 아마도 그 말은 내가 풍경사진을 찍을 때 앵글에 자꾸 엄마가 들어오는 탓에 무심코 그녀에게 내뱉은 말일 테다. 내 기억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그 말 한마디가 엄마에겐 꽤나 상처였던 모양이다.
그토록 그때의 난 엄마에게 무신경하고 무관심했다. 당시 스무 살이던 내게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에는 아무런 의미부여가 없었다. 호주는 그저 '내 생애 첫 자유여행'이란 타이틀로 시작해 마무리되었으며, 그 여행의 동반자는 우연히도 엄마였을 뿐이었다. 사실 그 자리는 그 누구였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 여행을 끝으로, 엄마와 나는 6년간 한 번도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나 혼자만큼은 예외였다. 미국 교환학생, 2달 유럽여행 등 매년 빠짐없이 난 해외로 나갔었다. 그렇게 난 낭만적인 20대를 만끽하며, 나만의 세계를 재빨리 구축해 나갔다. 축적되는 시간에 비례하듯, 그 세계는 점점 확연해지고 견고해졌다. 물론 그럴수록 엄마의 세계와 거리가 생겨남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무 살 직전까지 나는 엄마의 세계 안에 있는 착한 딸이었다. 엄마의 시야가 닿는 거리 내에서,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늘 예상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행동들이 전부였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십 대의 문턱에 오르며 상황은 바뀌었다. 과 활동, 동아리 활동, 대외활동, 연애, 취미생활들은 내 가치관과 취향을 만들고 다듬어 주었다. 이 중에서도, 내 취향 피라미드의 궁극이자 총체라 할 수 있는 것은 단연 '여행'이었다. 내게 여행이란,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데에 가장 큰 매력이 있었다. 낯선 세계에 나를 잘 모르는 타인들과 둘러싸일 때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설렘과 새로운 자극. 이렇듯 내게 여행이란, '익숙함'의 가장 많은 파이(π)를 차지하며 나의 내밀한 과거까지 모두 섭렵한 '엄마'와는 어쩌면 정 반대편에 위치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엄마의 세계와는 전혀 맞닿은 구석이 하나 없는 세계, 엄마에겐 영영 미지의 세계였을, 그 세계가 내 과거의 여행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여행을 통해 나의 세계를 압축해서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서 몰래 간직해오던 감성과 취향들을 엄마와 함께 나누고 싶어 졌다.
그 어느 순간은, 프라하성 스타벅스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모녀가 여행하는 모습이 마냥 부럽게 느껴졌던 때일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과 내가 가장 사랑하는 행위인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감정이자 논리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 어느 순간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일 수도 있다. 엄마는 늘 울었다. 절규에 가깝게 울거나, 숨죽여 흐느끼셨다. 둘 중 하나였다. 늘 내게 위로를 주던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위로를 건넬 차례가 온 것임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당시 내가 엄마에게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위로와 따뜻한 포옹은 “여행”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일상이 결국은 유한한 것이며, 또 그 유한함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온몸의 감각으로 마주하게 된 순간, 더 이상 엄마는 내게 “당연함”과 “익숙함”이 아니었다. 여행만이 줄 수 있는 감격과 위안을 이제껏 혼자 꽁꽁 간직해왔다면, 지금부터는 여행의 온전한 토닥거림을 엄마의 어깨에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사실 이번 여름 여행은 굉장히 즉흥적이었다. 나는 작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을 했다. 나쁘진 않은 직장이었지만, 직장에 적응해나갈수록 정작 내 삶에는 부적응자가 되어갔다. 그 당시의 난 살아있단 느낌이 간절했고, 결국 9개월 만에 첫 직장을 관뒀다. 그 공백기는 엄마와 내게 뜻밖의 기회가 되었고, 우린 별 고민 없이 2주 뒤 바로, 간사이행 티켓을 손에 쥔 채 오사카에 도착했다.
난 여행 초에 엄마에게 끊임없이 내 세계를 보여주려 했다. 달리 말하면, 내 세계를 중심에 두고 엄마가 흡수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세계가 마주하길 원했던 것 같다. 나 혼자서 오랜 기간 즐겨온 취향과 감성들을 엄마에게 처음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도 금방 그것들을 좋아하고,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이러한 것들로 꽉 채워진 것이 곧 완벽한 여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것들이다.
난 디저트를 좋아하고, 유명하다는 스위츠류는 무조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반면 옷 구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첫날 들린 한큐백화점에서도 지하 식품가만 둘러보면 내가 백화점에서의 할 일은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엄마에게도 유명 롤케이크와 푸딩의 맛을 선사하고 싶어 식품가로 곧장 향해 이것저것을 구입했다. 빵을 좋아하는 엄마지만, 엄마는 찾아 사 먹는 정도는 아니었다. 꼭 먹어봐야 한다는 장인정신의 디저트류도 엄마에겐 별 감흥이 없었다. 흔한 프랜차이즈사의 베이커리라도 엄마에겐 맛있으면 그만이었다. 엄마는 그 맛이 그 맛이라고 했다. 그러나 엄마는 여성의류 층을 비롯한 많은 매장들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엄마는 한국에서도 매주 백화점으로 쇼핑을 간다. 물론 대부분이 아이쇼핑이거나 환불을 동반한 쇼핑이었지만 엄마는 쇼핑 그 자체가 낙이라고 했다. 그렇다. 내겐 식품가가 백화점의 전부였지만, 엄마는 모든 층에 발자국을 남기는 진짜 로열(loyal) 고객이었다. 백화점 외에도 가야 할 곳, 보아야 할 곳이 많은 게 여행인지라 내게 쇼핑은 항상 후순위였다. 그러나 엄마는 여기서 제일 유명한 백화점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마지막 날까지 백화점 노래를 불렀다. 마지막 날 쿠로몬 시장에서 고베규를 직접 구워 먹는 이색 체험을 알려주고 싶어 타카시마야 백화점에서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는데, 엄마는 그때의 못다 한 백화점 쇼핑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엄마는 나중에 백화점 투어를 하러 오사카에 다시 올 거라고 했다.
다음은 카페다. 카페를 빼고는 나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카페는 나의 가장 점철된 취향 중 하나다. 홍대 부근에 안 가본 카페가 없을 정도로, 개인 카페들 각각의 분위기와 감각을 모두 지지한다. 일본은 단연 세련된 카페들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일본 여행에서 카페는 내게 꽤 큰 부분을 차지했다. 많은 블로그와 책자 검색 끝에 기타하마 부근 강변에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더러 있단 정보를 입수했다. 그 카페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곳을 선택하기 위해 사진과 리뷰를 수없이 비교하며 고심한 끝에, 한 곳을 선정했다. 고된 여행 중간에 그 카페테라스에 앉아 엄마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했다. 엄마는 커피를 하루에 두 잔씩 먹는 커피 애호가이긴 했지만, 스타벅스만 선호했다. 스타벅스의 획일된 분위기에 익숙한 엄마에게 난 트렌디한 요즘 카페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그 카페를 찾기 위한 여정 속, 흔한 스타벅스가 보일 때마다 그냥 저기나 들어가자고 하곤 했다. 엄마에겐 카페의 분위기보다는 보증된 맛이 더 중요했다. 음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맛과 분위기 모든 것을 겸비한 식당을 찾기 위해 줄기차게 검색하는 부류라면, 엄마는 지나가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엄마는 시장이 반찬인,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이쯤 되니, 내가 엄마에게 보여주려 했던 세계들이 효와 위로로 허울 좋게 포장되었을 뿐, 결국은 취향의 강요이며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내 욕심일 뿐이었다는 것을. '500일의 썸머'에서 썸머에게 건축학 책을 선물하는 톰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엄마에게도 엄마 나름대로의 세월과 감성이 녹아있는 그녀만의 세계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그제야 비로소 엄마가, 엄마의 세계가, 내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인공적이고 북적거리는 거리보다는 교토의 고즈넉한 거리를 참 좋아했다. 유명한 게 하나 없던 이름 모를, 그저 조용한 골목들을 그녀는 좋아했다. 길을 헤매다 잘못 들어선, 관광객 하나 없는 거리를 걸으며 엄마는 이 거리가 제일 예쁘다고 말했다. 엄마는 있는 그대로 자연의 날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남에게 기대거나 폐를 끼치기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오사카에 사는 삼촌은 우리들을 오사카의 유명한 맛집으로, 교토로, 공항으로 다 데려다주고 싶어 했지만, 엄마는 그마저도 불편해했다. 차라리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이동하는 편이 엄마에겐 더 편한 일이었다. 엄마는 자발적 고생이 곧 여행의 묘미이며, 사람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3박 4일의 여행이 끝났다.
이번 여행은 6년 전의 여행과도 꽤 달랐다.
내 사진이나 풍경사진이 우선이었던 6년 전과 비교해, 이번에는 엄마 사진을 몇십 배는 더 많이 찍었다. “엄마 비켜”라는 말은 “엄마 여기 서봐”라는 말에게 미련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좋은 풍경이 나타나면 난 엄마가 이 공간의 주인공이 되길 바랐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행복한 표정과 감정을 카메라에 전부 담고 싶었다. 다음에 아무 때나 꺼내볼 수 있도록.
사실 평소의 나는 빡빡하게 여행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엄마의 여행 스타일과 조율하여 조금은 느슨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몇 가지 계획들은 포기해야 했었지만, 때때로 그 포기는 더 멋진 대안을 우리에게 갖다 주기도 했다. 다른 편의 만족감이었다. 꽤 따뜻했다.
그렇게 여행은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여행의 여운은 여전하다.
아니, 이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비일상적인 행위인 여행을,
가장 일상적인 존재인 엄마와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했다.
엄마를 당연하게 여겨온 지난날들이 내 안에서 빠르게 지나간다.
그 기억의 경계에 잠시 서서 그날들을 멈춰 세운다.
그제야 그간 당연함으로 오인해온 흐리멍덩한 무언가가 선명해짐을 느낀다.
자로 잴 수 조차 없는 얄팍한 그것들로 엄마를 정의 내리려 한 날들을 반성한다.
멈춰 선 용기는 후회를 거쳐, 다가올 날들을 제대로 맞이할 수 있는 용기가 되었다.
참 다행이다.
여행의 끝자락에서나마 비로소 엄마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서.
다시,
우리는 서울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전과는
분명 온도가, 밀도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인지 난 여전히 내 평생을 함께 해온 당신이 궁금하다.
그렇게 서로의 세계가 서로를 향한 채, 조금씩 겹쳐가는 중이겠지,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