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식당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by 잇쭌


강민준은 익숙한 골목 어귀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의 혀끝에는 아직도 단골 파스타 집 '루치아의 키친'에서 맛보았던 알리오 올리오의 풍미가 맴도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차가운 금속성 간판이었다.


[메카 파스타(Mecha Pasta)]


"…이름 한번 요란하네."


실소와 함께 가게 문을 열었다. '딸랑' 하는 정겨운 종소리 대신, '삐빅-' 하는 기계음이 그를 맞았다. 예전 같으면 주방에서 "민준 씨, 어서 와!" 하던 사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을 시간. 하지만 지금 그를 반기는 것은 허공을 응시하는 파란색 키오스크뿐이었다.


<주문하시려면 화면을 터치하세요>


민준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는 화면을 몇 번 두드렸다. 늘 먹던 알리오 올리오, 면은 알덴테로, 마늘은 듬뿍. 하지만 키오스크에는 '면 익힘 정도'를 조절하는 옵션 따위는 없었다. 그저 정해진 레시피를 선택하고 결제하는 것만이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사장님과의 눈맞춤 한 번이면 해결될 일이, 이렇게 복잡하고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군.'


결제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서빙 로봇이 다가왔다. 로봇은 정확한 각도로 테이블에 파스타 접시를 내려놓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서빙.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오늘 마늘 좋네요."라고 말을 건넬 수도,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에 멋쩍게 웃어주는 표정을 볼 수도 없었다. 로봇은 그저 임무를 완수한 기계처럼, 묵묵히 제자리로 돌아갈 뿐이었다.


민준은 포크를 들기 전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전에는 혼자 온 손님들도 사장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지금 가게 안은 마치 도서관처럼 고요했다. 모두가 스마트폰 화면에, 혹은 눈앞의 음식에만 코를 박고 있었다. 소통이 사라진 공간은 활기를 잃고 정적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키오스크 앞에서 한참을 헤맸고,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봤다.


"여보, 이거 어떻게 하는 거요…."


결국 노부부는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 안쪽에서 각종 스크린을 들여다보던 김 사장이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손님, 주문은 저쪽 키오스크에서 하셔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그런 거 잘 못해서…."


"죄송합니다만, 지금 주문 시스템이 전부 통합돼서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 저쪽으로…."


김 사장의 목소리에는 예전의 온기가 없었다. 그는 손님을 응대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를 처리하는 기술자처럼 보였다. 결국 노부부는 멋쩍은 표정으로 몇 마디 나누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가게를 나섰다. 쾅, 하고 닫히는 문이 마치 이곳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민준은 그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장님은 인건비를 아끼고 효율을 높였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정작 무엇을 잃고 있는지는 모를 거야. 저 노부부가 다시 이곳에 올까? 나처럼 사장님과의 대화를 즐기던 단골들은? 저건 단순히 손님 두 명을 놓친 게 아니야. 가게의 '영혼'을 팔아넘긴 거라고.'


차가운 효율성. 그것은 따뜻한 관계를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민준은 맛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 파스타를 비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지나쳤다. 예전 같으면 "민준 씨, 오늘 파스타는 입에 맞았어?"라고 물었을 사장님은, 여전히 배달 앱의 주문 현황이 떠 있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단골 식당이, 더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민준은 가게를 나섰다. 씁쓸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감정은 이내 심장을 뛰게 하는 어떤 확신으로 변했다. 그는 길 건너편,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임대 문의' 종이가 붙어 있는 낡은 상가 건물을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낡고 비어있는 공간으로 보겠지만, 민준의 눈에는 이미 그곳의 미래가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


주방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주인은 모든 손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안부를 묻는 곳.


효율보다는 사람 사이의 '온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


민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메모장을 켰다. 그리고 자신의 첫 가게가 될 그곳의 이름을, 망설임 없이 적어 내려갔다.


[아날로그 키친 (Analog Kitchen)]


"그래, 바로 이거야. 나의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차가운 기술의 시대에, 그는 가장 따뜻한 아날로그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1화 끝)


작가의 한마디: 효율의 끝에서, 우리는 무엇을 되찾아야 할까요? 민준의 뜨거운 도전을 함께 응원해주세요! (별점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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