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음식을 만든다

by 잇쭌


최연수 선배와의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강민준은 약속 장소인 호텔 카페로 향하는 대신, 정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마지막 '시장 조사'를 위해서였다.


그가 도착한 곳은 '벨로시티 피자(Velocity Pizza)'. '15분 배달'이라는 경이로운 속도를 무기로 최근 급성장한 배달 전문 프랜차이즈였다. 이곳은 효율성의 끝판왕, 푸드테크의 최전선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민준은 최고의 가게를 만들기 위해, 최악의 주방을 직접 목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장 안은 손님이 앉을 테이블 하나 없이, 픽업을 기다리는 라이더들과 거대한 주문 현황 스크린만이 번쩍이고 있었다. 민준은 픽업 고객인 척 구석에 서서, 통유리 너머의 오픈 키친을 응시했다.


그곳은 주방이 아니라 공장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대화 한마디 없이, 스크린에 뜨는 지시에 따라 피자 도우를 펴고, 토핑을 얹고, 오븐에 넣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분업화되어 있었고, 그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아니라 긴장감과 피로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민준의 시선이 한 젊은 여성 직원에게 꽂혔다. 스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그녀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영혼이 빠져나간 자동 기계처럼, 정해진 동작을 기계적으로 반복할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저 눈빛….’


민준은 수첩을 꺼내려다 멈칫했다. 기록할 필요도 없었다. 저 텅 빈 눈빛이야말로, 이 시스템이 가진 모든 문제점을 웅변하고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주방 중앙의 메인 스크린에 시뻘건 경고창이 번쩍였다.


[!!ERROR: 단체 주문 주소 오입력!!]


스물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점장이 헤드셋에 대고 다급하게 외쳤다.


"아닙니다, 본사님! 저희는 시스템에 입력된 주소 그대로 내보냈습니다! 시스템 오류 같습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고성이 들려오는 듯, 점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통화를 마친 그는 분노와 모멸감으로 떨리는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는, 그 분노를 가장 손쉬운 상대에게 터뜨렸다.


"야! 김민지! 아까 단체 주문 포장할 때 주소 라벨 확인 똑바로 안 했어?"


모든 시선이 텅 빈 눈빛의 그 여성 직원에게 쏠렸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만 파르르 떨었다. 시스템이 저지른 실수의 책임은, 가장 약한 인간의 몫이었다.


민준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그는 조용히 가게를 나섰다. 씁쓸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결국 저거였어.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을 부품으로 취급하는 시스템. 실수가 나면 가장 약한 부품을 교체하면 그만이라는 오만함. 저렇게 상처받은 손으로 만든 피자가, 과연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을까?'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음식을 만든다.


너무나 단순한 진리였지만, 모두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진실이었다.


민준은 약속 장소인 호텔 카페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자신의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아니, 반드시 이 길로 가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온몸을 채우고 있었다.


카페 안, 창가 자리에 최연수 선배가 앉아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호텔 레스토랑에서 최연소 매니저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 하지만 대기업의 경직된 시스템 안에서 누구보다 답답해하고 있다는 것을 민준은 알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선배님."


"괜찮아. 그래서, 나한테 할 얘기라는 게 뭔데? 투자 제안이라도 하려고?"


최연수는 특유의 시니컬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민준은 가방에서 사업 계획서 대신, 낡은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예상치 못한 첫 질문을 던졌다.


"선배님, 혹시… 요즘 식당에서 일하는 친구들 눈빛, 본 적 있으세요?"


최연수의 눈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 매출, 이익, 시장 점유율 같은 단어가 나올 거라 예상했던 그녀의 허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민준은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는 그 텅 빈 눈빛들을 바꾸고 싶습니다. 기술이 사람을 부품으로 만드는 곳이 아니라, 기술 덕분에 사람이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고의 직원 경험(EX)이 최고의 고객 경험(CX)을 만든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


최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껏 수많은 사업 계획서를 검토해왔지만, '직원의 눈빛'으로 시작하는 사업 계획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잊고 있던 뜨거운 무언가가 다시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민준은 확신했다. 이것은 단순한 스카우트 제의가 아니었다.


이것은, 세상을 바꿀 혁명에 동참하라는 제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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