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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증거"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깨진 유리창'은 가게 외부에만 있지 않았다. 텅 빈 홀(사회적 증거), 무심한 직원(인간적 증거). 태웅은 자신의 성역이 '부정적 신호'로 가득 찼음을 깨닫는다. 자존심이냐, 생존이냐. 그는 마침내 전화를 건다.



길 건너편에서 바라본 '송정옥'의 모습은 이태웅에게 충격이었다. 깜박거리는 '정(情)'자, 빛바랜 '여름 특선' 포스터. 그것은 60년 전통의 역사가 아니라, 관리를 포기한 주인의 '태만'을 고발하는 증거였다.


그날 저녁, 태웅은 주방에 틀어박혀 육수만 젓던 습관을 버렸다. 그는 카운터 뒤,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손님'이 아닌 '관찰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차현서가 남기고 간 구겨진 진단서를 다시 펼쳤다.


[2. 사회적 증거 (Social Cues): 최악 (-100점)]

피크 타임(19:00) 홀 공석률 90%. '텅 빔' 상태만 노출됨.


[4. 인간적 증거 (Human Cues): 매우 미흡 (-70점)]

직원 유니폼 부재(일상복 착용). 고객 응대 시 '눈 맞춤' 없음.


그의 시선은 홀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존재, 20년을 함께한 박 여사에게 향했다. 그녀는 태웅의 아버지 때부터 홀을 지킨,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앞치마를 둘렀지만, 속에는 화려한 꽃무늬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직원 유니폼 부재. 체크.)


저녁 7시 30분.


'딸랑-' 문이 열렸다. 30대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들어섰다.


태웅의 심장이 뛰었다. 그들이 바로 어제 차현서의 영상 속 '이탈 고객'과 비슷한 타깃이었다.


"어... 두 분이세요?"


박 여사는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턱짓으로 4번 테이블을 가리켰다. (고객 응대 시 '눈 맞춤' 없음. 체크.)


커플은 망설이며 자리에 앉았다. 홀은 여전히 그들 외에는 비어 있었다. (피크 타임 홀 공석률 90%. 체크.)


"저기요... 주문할게요."


박 여사가 느릿하게 다가왔다.


"국밥 두 개요?"


"아뇨, 메뉴판 좀..."


여자가 테이블 위의 끈적한 메뉴판을 집어 들려다 멈칫했다. 태웅은 어제 닦았다고 생각했지만, 끈적임은 여전했다. (물리적 부정 증거. 체크.)


"여기... 돈까스도 되네요?" 남자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네. 학생들이 찾아서."


"그럼... 저는 국밥 특으로 주시고요, 여자친구는 돈까스로..."


"아, 돈까스는 오늘 안돼요."


박 여사의 대답은 무심했다.


"그럼... 제육은요?"


"그것도 오늘 재료가..."


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태웅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돈까스'와 '제육'은 사실상 메뉴판에만 존재하는, 한 달에 한두 번 나갈까 말까 한 메뉴였다. 아버지가 구색 맞추기로 넣어둔 것을 그저 방치했을 뿐이었다.


"그럼... 국밥 두 개 주세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역력했다.


박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곤, 탕탕 소리가 나게 김치와 깍두기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쿵'하는 소리와 함께, 깍두기 국물이 테이블에 살짝 튀었다.


이태웅은 그 순간 깨달았다.


차현서가 말한 '인간적 증거'란, 단순히 불친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 '손님을 존중하지 않음'의 신호였다. 20년 지기 박 여사의 '무심함'이, 이태웅의 '태만함'과 정확히 닮아 있었다.


여자는 결국 국밥을 절반이나 남겼다.


그들이 나간 후, 태웅은 구겨진 진단서를 다시 바라봤다.


[3. 심리적 증거: 위험 (-60점)]


[5. 정보적 증거: 조잡 (-75점)]


[7. 사회문화적 증거: 혼란 (-40점)]


'전문성' 없는 '잡탕 메뉴'(심리). '오탈자'와 '수정테이프'(정보). '노포'와 '분식집'의 '혼란스러운 정체성'(문화).


차현서가 지적했던 모든 '증거'들이, 방금 전 15분 동안 텅 빈 홀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맛'만 지키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맛'은, 수십 겹으로 쌓인 '부정적 증거'라는 성벽에 갇혀 질식해가고 있었다.


그는 훌륭한 '요리사'였을지 몰라도, 빵점짜리 '경영자'였다.


차현서가 그에게 '일주일'을 주겠다고 했다.

엿새가 지났다.


그는 '맛'으로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이태웅은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박 지점장에게 받은 '차현서'의 번호를 찾아 망설였다. 자존심이 불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방금 전, 절반이나 남기고 간 그 '국밥'을 떠올렸다.

자신의 '신념'보다, 저렇게 버려지는 '육수'가 더 아까웠다.


그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차현서 컨설턴트님."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송정옥, 이태웅입니다."


"..."


"일주일... 주신다고 했죠. ...내일, 시간 있으십니까?"




6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5


텅 빈 가게는 '조용해서 좋은 곳'이 아니다.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으니 당신도 오지 말라'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부정 증거'다.


또한, '인간적 증거'는 '친절'의 문제가 아니다. '태도'의 문제다.


무심한 직원은, 그 자체로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살아있는 깨진 유리창'이다.


'맛'이 아무리 훌륭해도, 고객이 '사회적 불안감'과 '인간적 무시'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맛'을 경험해 줘야 할 의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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