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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악마는 '끈적임'과 '냄새'에 있다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최악의 '깨진 유리창'은 아직 손도 안 댔습니다." 차현서의 2차 트리아지(Triage). 그녀가 지적한 것은 '맛'의 문제가 아닌, '썩은 걸레 냄새'와 '기름때 끈적임'이라는 치명적인 물리적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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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이태웅은 이른 아침, 텅 빈 홀을 둘러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차현서가 휘몰아치고 간 자리는, 마치 태풍이 휩쓴 듯했다. 벽에 붙어있던 낡은 포스터와 변색된 신문 기사 스크랩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흉터처럼 남은 벽지의 속살이 드러났다. 새로 주문한 유리창은 오늘 오후에나 도착할 예정이었다.


60년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뜯겨나간 듯, 가게는 휑하고 초라했다.


'버리는 것'이 '제거'의 전부라면, 이건 성공이 아니라 실패처럼 보였다.


"사장님, 이거... 정말 괜찮은 거유?"


아침 일찍 나온 박 여사가 휑한 벽을 보며 불안한 듯 물었다. "너무 없어 보이는데... 손님들이 정떨어지겠어."


"..."


이태웅도 같은 생각이었다. '맛'이라는 기둥 하나만 남기고, 가게를 지탱하던 '추억'이라는 뼈대마저 뽑아버린 기분이었다.


그때, '딸랑-'


차현서가 약속한 10시 정각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태블릿PC가 아니었다. 그녀는 검은색 더플백을 테이블 위에 '쿵' 소리 나게 올려놓았다.


"자, 2차 '트리아지(Triage)' 시작하죠."


"2차요? 어제... 다 버리라고 해서 버렸잖습니까."


이태웅의 목소리에 불만이 묻어났다.


"눈에 보이는 '정보'와 '시간' 증거를 버린 거죠."


현서가 더플백을 열었다. 나온 것은 놀랍게도 전문 청소 용품들이었다. 형광펜처럼 생긴 휴대용 UV-C 살균기, 정체불명의 스프레이 통들, 그리고 새하얀 극세사 타월 수십 장.


"최악의 '깨진 유리창'은 아직 손도 안 댔습니다."


현서가 태웅과 박 여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바로, '냄새''끈적임'입니다."


그녀가 진단서 1번 항목을 다시 읊었다.


'물리적 증거 (Physical Cues): 심각 (-85점). 원인 불명 쾌쾌한 냄새. 홀 전체 테이블 끈적임.'


"냄새라니! 우리는 매일 육수를 끓이는데!" 태웅이 반박했다.


"박 여사, 우리 매일 쓸고 닦지 않습니까?"


"그럼유! 내 팔자가 청소부 팔자인데!" 박 여사가 발끈했다.


"그 '쓸고 닦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현서는 주방 입구, 구석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대걸레와 낡은 행주들을 가리켰다.


"박 여사님, 저 행주... 언제 삶으셨죠?"


"삶긴 뭘 삶아유. 매일 비누로 빨아서 널어놓지."


"저 대걸레는요?"


"물로 헹궈서 말리지."


현서는 말없이 스프레이 통 중 하나를 가져가, 낡은 대걸레에 뿌렸다. 그러자 역한 시큼함과 곰팡이 냄새가 섞여 홀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태웅은 자신도 모르게 코를 막았다.


"이게 사장님 가게의 '냄새'입니다."


현서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사장님은 '육수 냄새'가 이길 거라 믿으셨겠지만, 고객의 코는 '썩은 걸레 냄새'를 먼저 맡습니다. 이 '물리적 부정 증거'가 고객의 뇌에 '여긴 비위생적이다'라는 신호를 0.1초 만에 전송합니다."


그녀는 낡은 대걸레와 행주들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끈적임'."


현서는 새 극세사 타월에 스프레이를 뿌려, 태웅이 어제 닦았던 4번 테이블을 닦았다.


"박 여사님, 테이블은 뭘로 닦으시죠?"


"그냥 물로... 아니면 아까 그 행주로..."


현서가 닦아낸 새하얀 타월은, 불과 몇 초 만에 누런색 기름때로 변해 있었다.


"사장님과 박 여사님이 '닦았다'고 생각한 건, 사실 '기름때를 얇게 펴 바른 것'에 불과합니다. 고객은 이 '물리적 부정 증거'에서 사장님의 '태만함'을 읽습니다."


현서는 이태웅에게 새 타월과 스프레이(기름때 제거용 세정제)를 건넸다.


"지금부터, 홀의 모든 테이블과 의자 다리를 직접 닦으십시오. 박 여사님은 앞으로 행주와 대걸레는 매일 '삶거나', 혹은 '일회용'을 쓰십시오. 이건 '제안'이 아니라 '프로토콜'입니다."


"아니, 젊은 양반이... 내가 이 집에서 20년을..."


박 여사가 불만을 터뜨리려던 순간, 태웅이 그녀를 막아섰다.


"...박 여사님. 합시다."


태웅이 현서가 준 스프레이를 테이블에 뿌렸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기름때가 녹아내렸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그날 오전, 60년 전통 '송정옥'의 3대 사장 이태웅은, 3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가게 테이블을 직접 '청소'했다. 육수 솥 앞이 아닌, 홀에서 비 오듯 땀을 흘렸다.


'맛'만 지키면 된다고 믿었던 그의 손에는, 60년 묵은 '기름때'가 묻어 나왔다.






8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7


고객은 '육수 냄새(긍정)'와 '걸레 냄새(부정)'를 구별해서 맡지 않는다.


더 자극적인 '부정적 신호'가 모든 '긍정적 신호'를 압도할 뿐이다.


'끈적이는 테이블(물리적 부정 증거)'은 '부지런하지 못한 직원(인간적 부정 증거)'의 직접적인 '결과'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악마는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


'트리아지'는 낡은 것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잘못된 '습관'과 '시스템'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가장 기본적인 '청결'이라는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어떤 '맛'도 고객에게 전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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