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사장님,파사드는 '영업사원'입니다." 휑해진 벽과 깨끗해진 입구. 그곳에 '송정옥'의 '철학'을 입히는 작업이 시작된다. '초대성'이라는 노포의 전략, '냄새'와 '스토리'가 파사드에 심어진다.
이태웅은 어제 차현서가 던지고 간 '단순한 메뉴판'을 받아들였다. 돈까스와 제육이 사라진 메뉴판.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애써 납득시키고 있었다.
"자, 이제 2단계 '강화(Amplify)'입니다."
차현서가 깨끗해진 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제까지 우린 '깨진 유리창(부정 증거)'을 수리했습니다. 훌륭합니다. 하지만 이젠 '깨끗하지만 텅 빈' 가게가 되었죠. 아무런 '매력'이 없습니다."
그녀가 이태웅을 바라봤다.
"사장님, 파사드는 24시간 일하는 '영업사원'이라고 했습니다. 어제 우리는 그 영업사원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켰습니다. 오늘은 그에게 '컨셉'이라는 '수트'를 입힐 차례입니다."
"수트...요?"
"네. '송정옥'만의 수트죠. 사장님."
현서가 주방 안쪽을 가리켰다. 태웅의 성역, 거대한 무쇠 가마솥이 김을 뿜고 있는 곳이었다.
"저 가마솥. 저게 '송정옥'의 심장이죠?"
"그렇습니다. 60년 내내..."
"그런데 왜 심장을 갈비뼈(주방) 안에 숨겨둡니까?"
현서의 질문은 늘 예상을 벗어났다.
"저 '가마솥'이야말로, 사장님이 가진 가장 강력한 '긍정적 증거(Positive Cue)'입니다. 저걸 '파사드'로 꺼내야 합니다."
"가마솥을... 밖으로요? 가게 입구로?"
태웅과 박 여사가 동시에 경악했다.
"그 무거운 걸 어떻게... 그리고 위험하게..."
"파인 다이닝은 '배타성'이 전략이라 간판을 숨깁니다."
현서가 진단서의 '업종 전략' 부분을 탭했다. (Theme 4)
"하지만 사장님의 '노포'는 정반대입니다. '초대성(Welcoming)'이 전략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환영한다'는 신호를 줘야죠."
그녀가 새로 교체된 깨끗한 통창을 가리켰다.
"저 창문 바로 안쪽에, '가마솥'을 위한 자리를 만드십시오. 밖에서도 펄펄 끓는 육수와 김이 보이도록."
"..."
"고객은 '맛'을 보기 전에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습니다. 저 가마솥은 3가지 '긍정적 증거'를 동시에 수행합니다."
현서가 손가락을 꼽았다.
"하나, 펄펄 끓는 김. (강력한 '물리적 증거')"
"둘, 입구에서 풍기는 구수한 곰탕 '냄새'. (치명적인 '후각적 증거')"
"셋,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정성껏 끓이고 있다'는 '시간적 증거'."
"고객은 이 '오감'의 초대에 저항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노포'의 가장 강력한 파사드 전략입니다."
이태웅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다.
가마솥. 그건 그에게 '일터'이자 '무기'였지, '전시'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서의 말대로, 그 완벽한 '맛'은 주방 안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현서가 휑해진 벽을 가리켰다.
"어제 뜯어낸 조잡한 포스터 자리에 '스토리'를 입힐 겁니다."
그녀가 태블릿을 넘겼다. 그 안에는 '송정옥'의 60년 역사가 담긴 세련된 '브랜드 스토리보드' 디자인 시안이 들어있었다. '1대 창업주의 철학', '3대 이태웅의 고집', '가마솥의 비밀'.
"사장님의 '맛'은 '정보'가 되어야 합니다. 고객은 '곰탕'을 먹는 게 아니라, '60년짜리 스토리'를 먹는다는 '심리적 증거'를 주는 겁니다."
이태웅은 시안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낡고 구겨진 신문 기사가 아니었다.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그리고 자신이 '전문가'이자 '장인'으로 존중받고 있었다.
태웅은 주방을 바라봤다. 그리고 결심했다.
자신의 '심장'을, 세상 밖으로 꺼내기로.
"박 여사님. 설비 업체... 알아봐야겠습니다. 저 솥, 밖으로 꺼냅시다."
10화에서 계속......
파사드는 24시간 일하는 '영업사원'이다.
'부정 증거'를 제거(청소/버리기)했다면, 이제 '긍정 증거'라는 '컨셉'의 수트를 입혀야 한다.
'노포'의 파사드 전략은 '배타성'이 아닌 '초대성'이다.
'가마솥'은 주방 기구가 아니라, 고객을 초대하는 가장 강력한 '물리적/후각적/시간적 긍정 증거'다.
심장을 밖으로 꺼내라.
'맛'은 '정보'가 되어야 한다.
'60년 역사'는 '자랑'이 아니라, '우리는 전문가'임을 증명하는 '심리적 증거'다.
고객은 '음식'이 아닌 '스토리'에 기꺼이 돈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