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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두 번째 얼굴, '환대'의 정점

퍼펙트 큐(Perfect Cue): 보이지 않는 신호들

by 잇쭌


태웅의 두 번째 꿈. "이젠 '격'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송정옥'의 철학을 담은 모던 코리안 파인 다이닝 '송정(松亭)'이 기획된다. '초대성'의 노포와 정반대 전략이 펼쳐진다.




태웅의 두 번째 꿈. "이젠 '격'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송정옥'의 철학을 담은 모던 코리안 파인 다이닝 '송정(松亭)'이 기획된다. '초대성'의 노포와 정반대 전략이 펼쳐진다.


새벽 1시.


'송정옥'의 홀에는 다섯 개의 '참혹한 실패' 사례가 널브러져 있었다. 새어 나온 국물, 눅눅한 튀김, 식어버린 밥. 이태웅은 난생처음 '맛'이 아닌 '경험'을 해부했다. 그리고 차현서의 '증거 이론'이 배달이라는 세계에서 얼마나 더 처참하게 작동하는지 깨달았다.


"합격입니다, 사장님."


차현서가 늦은 밤, 정리를 위해 다시 가게에 들렀다. 그녀는 태웅이 작성한 '언박싱 부정 증거 리스트'를 보며 말했다.


"이제 '배달'이라는 게임의 룰을 이해하셨군요."


"이건... '게임'이 아니라 '지뢰밭'이네요."


태웅이 눅눅한 튀김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며 말했다.


"이런 걸 팔고도 '별점 4.9'라니. 고객들은 '맛'을 포기한 겁니까?"


"아뇨." 현서가 태블릿을 켰다. "고객은 '맛'을 포기한 게 아니라, '기대'를 조정한 겁니다. '식당에서 먹는 맛'이 아니라, '집에서 편하게 받는 편리함'에 비용을 지불하는 거죠. 이 '실패 사례'들은 그 '편리함'마저 배신한 거고요."


그녀가 태블릿에 깔끔하게 정리된 HMR(가정간편식) 기획안을 띄웠다.


"우리는 이걸 만들 겁니다. '송정옥'의 '맛'을, 완벽한 '언박싱' 경험으로 설계한 HMR. '편리함'과 '맛' 모두를 잡는 거죠. 이건 '송정옥'의 훌륭한 '캐시카우(Cash Cow)', 즉 현금 창출원이 될 겁니다."


이태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캐시카우'. 그는 이제 '맛'의 장인이 아니라 '경영자'로서 현서의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배달은 '송정옥'의 '확장'이었다.


"...하지만,"


태웅이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현서의 태블릿, 그 '언박싱' 기획안이 아닌, 그 너머를 향해 있었다.


"이건... 제 '꿈'은 아닙니다."


"..."


"이건 '더 많은 사람'에게 '맛'을 전하는 방법이지만, 제 '철학'을 전하는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시선이 3주 전, 처음 현서가 보여줬던 태블릿의 '오른쪽 화면'으로 향했다.


'환대(Hospitality)'.


예술작품처럼 플레이팅된 모던 코리안 파인 다이닝의 사진.


"현서 님."


태웅이 현서를 바라봤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장인'의 고집이 아닌, '아티스트'의 열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젠... '격(格)'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송정옥'이 60년간 지켜온 이 '진한 맛'이, 단지 1만 원짜리 국밥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30만 원짜리 코스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차현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캐시카우'를 이해한 경영자가 '플래그십'을 꿈꾸는 순간.


"좋습니다, 사장님."


그녀가 태블릿 화면을 전환했다. '송정옥(松亭屋)'의 '屋(집 옥)'자가 사라지고, '송정(松亭)'이라는 두 글자가 떠올랐다. '소나무가 있는 정자'. '집'이 '정자'가 되는 순간, '대중성'은 '고급성'으로 변했다.


"그럼, '송정'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현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이건 '언박싱'과는 정반대의 게임입니다. '송정옥'에서 우리가 했던 모든 '긍정 증거'의 룰을, 정반대로 뒤집어야 합니다."


"정반대...라고요?"


"네. '송정옥'은 '환대'의 비즈니스지만, 그 본질은 '초대성(Inclusivity)'입니다. '누구나 어서 오세요'죠. 하지만 '송정(松亭)'은..."


현서가 태웅을 바라봤다.


"철저한 '배타성(Exclusivity)'입니다."


그녀는 '송정옥'을 살렸던 '긍정 증거'들을 하나씩 뒤집기 시작했다.


"첫째, '가마솥'을 밖으로 꺼내셨죠? '송정'은 '간판'조차 숨길 겁니다. (Theme 4) '아무나 올 수 없다'는 '진입 장벽' 자체가 '심리적 증거'가 됩니다."


"둘째, '통창'으로 '사회적 증거'를 보여줬죠? '송정'은 '두꺼운 벽'으로 내부를 완벽히 가릴 겁니다. '신비감'과 '프라이버시'가 그 '격'을 만듭니다."


"셋째, '송정옥'은 '음식'을 팔았습니다. 하지만 '송정'은..."


그녀가 태블릿에 2시간 30분짜리 타임라인을 띄웠다.


"'시간'을 팔 겁니다. (Theme 3) 2시간 30분짜리 '환대'라는 '경험' 전체가 하나의 '상품'입니다. 고객은 '맛'이 아니라, '내가 특별해지는 시간'에 돈을 냅니다."


이태웅은 숨을 죽였다. '송정옥'이 '부정 증거'를 제거하는 '수리'의 과정이었다면, '송정'은 '긍정 증거'를 설계하는 '창조'의 과정이었다.


"사장님."


현서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송정옥'의 '확장'과 '송정'의 '진화'. 두 개의 전쟁입니다. 준비... 되셨습니까?"


이태웅은 60년 된 가마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자신의 '두 번째 얼굴'이 될 '송정(松亭)'의 청사진을 바라봤다.


"...합시다."







18화에서 계속......




[차현서의 컨설팅 노트] #17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은 '비싼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파는 비즈니스다.


'노포(Nopo)'의 '환대'가 '초대성'(Inclusivity)에 기반한다면,


'파인 다이닝'의 '환대'는 '배타성'(Exclusivity)에 기반한다.


'노포'의 가치가 '모두가 아는 맛'이라면,


'파인 다이닝'의 가치는 '아무나 모르는 경험'이다.


이 '진입 장벽'과 '희소성'을 설계하는 것이 '격(格)'을 만드는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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