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컴의 면도날로 도려낸 식당 폐업의 ‘불편한 진실’
거리를 걷다 보면 유난히 가슴 아픈 풍경을 마주합니다. 불과 지난 계절까지만 해도 개업 화환이 화려하게 놓여 있던 자리에, 덩그러니 ‘임대 문의’ 종이만 붙어 있는 모습입니다.
유리창 너머 텅 빈 주방을 들여다보면, 저는 종종 그곳을 지키던 사장님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좋은 재료를 쓴다고 자랑하시던 모습, 손님에게 하나라도 더 퍼주려던 넉넉한 인심,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하던 그 성실함까지.
우리는 묻게 됩니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했는데, 도대체 왜 망했을까?”
흔히들 경기가 안 좋아서, 상권이 죽어서, 혹은 대기업이 골목을 장악해서라고 말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골목, 똑같은 불황 속에서도 어떤 식당은 줄을 세우고, 어떤 식당은 파리만 날리니까요.
이 잔인한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 저는 오늘 조금 차가운 도구 하나를 꺼내려 합니다. 바로 14세기 논리학자 윌리엄 오컴의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입니다.
오컴의 면도날은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 이상의 가정은 잘라내라”는 원칙입니다. 즉, 가장 단순한 설명이 진실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죠.
이 면도날을 식당의 성공과 실패에 들이대면, 수만 가지 핑계가 잘려 나가고 단 하나의 명제만이 남습니다.
“손님은 자신이 낸 돈보다 더 큰 가치를 얻었다고 느낄 때만 다시 온다.”
너무 뻔한 이야기 같나요? 하지만 이 단순한 부등호 (가치 > 가격) 의 원리를 오해해서, 수많은 ‘착한 사장님’들이 골병이 들고 결국 폐업의 길로 들어섭니다.
제가 만난 수많은 초보 창업자분들은 ‘양심’과 ‘성실’을 무기로 삼습니다. 그들의 계산법은 이렇습니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고, 양을 많이 주고, 내 마진을 줄이면 손님이 그 진심을 알아주겠지?"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경영학적으로는,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도박입니다. 오컴의 면도날로 본 생존 공식은 냉정합니다.
체감 가치(Value) > 가격(Price) > 원가 + 노력(Cost)
그런데 착한 사장님들은 ‘가치’를 높이겠다며 무턱대고 ‘원가’를 높입니다. 고기를 더 얹어주고, 반찬 가짓수를 늘립니다. 그러면 부등호는 이렇게 변질됩니다.
가치 > 가격 ≈ 원가
가격과 원가가 비슷해지니 남는 게 없습니다. 몸은 부서져라 일하는데 통장은 텅 빕니다. 사장님은 지치고, 표정은 어두워집니다. 손님은 귀신같이 그 ‘피로감’을 감지하죠. "이 집 사장님은 늘 힘들어 보여서 밥 먹기 미안해."
결국 손님의 발길이 끊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퍼주려다가 가게 문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의가 빚어낸 비극입니다.
반면, 오랫동안 살아남는 식당은 다릅니다. 그들은 물리적인 ‘돈(Cost)’을 쓰는 대신, 손님이 느끼는 ‘마음(Perceived Value)’을 얻는 기술을 사용합니다. ‘가성비’가 아니라 ‘가심비’를 공략하는 것이죠.
제가 컨설팅했던 한 국밥집의 사례를 들려드릴게요. 이 집은 11,000원짜리 시래기 국밥을 팝니다. 국밥치곤 싼 가격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수는 고기를 더 넣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고수는 ‘연출’을 합니다.
1. 후각을 먼저 타격합니다. 주방에서 다 끓여 내는 대신, 손님 상에 나가기 직전 거친 들깨가루를 한 스푼 수북하게 얹습니다. 뜨거운 김을 타고 고소한 들깨 향이 퍼지면 손님은 생각합니다. "재료를 아끼지 않았구나." 들깨 한 스푼의 원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체감 가치는 20% 이상 뜁니다.
2. 시각으로 압도합니다. 똑같은 양의 고기라도 국물에 잠기게 두지 않고, 뚝배기 중앙에 산처럼 쌓아 올립니다. 그 위에 파채를 수북이 올리죠. 붉은 고기와 초록 파의 색감 대비, 높이 솟은 비주얼은 손님의 스마트폰을 꺼내게 만듭니다. 사진이 찍히는 순간, 그 음식은 밥이 아니라 ‘콘텐츠’가 됩니다.
3. 이야기에 밥을 말아줍니다. 벽면에 메뉴판만 걸어두는 건 직무 유기입니다. "강원도 고랭지 바람을 맞으며 60일을 말린 시래기입니다." 이 한 줄의 문구가 붙어 있다면 어떨까요? 시래기가 조금 질겨도 손님은 *"이게 진짜 자연의 식감이구나"*라고 이해합니다. 스토리는 불만조차 납득으로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집밥 같은 식당’을 꿈꿉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은 집밥과 달라야 합니다. 집밥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먹지만, 식당 밥은 내 지갑 속의 피 같은 돈과 맞바꾸는 ‘거래’이기 때문입니다.
손님은 숟가락을 들 때마다 무의식중에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내가 낸 11,000원이 아까운가, 아깝지 않은가?"
이 질문에 *"돈을 벌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면, 아무리 사장님이 착하고 성실해도 그 가게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비정함이 아니라, 거래의 본질입니다.
제가 이토록 ‘가치의 연출’을 강조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래야 사장님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작정 퍼주는 ‘착한 장사’는 사장님의 삶을 갉아먹습니다. 이익이 남아야 직원의 시급을 올려줄 수 있고, 더 좋은 식재료를 살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장님이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순환’입니다.
혹시 지금 식당을 운영하고 계시거나 창업을 준비 중이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밤, 조용히 가게에 앉아 오컴의 면도날을 들어보세요. 복잡한 변명들을 다 잘라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10,000원을 받고 12,000원어치의 만족을 주고 있는가? 아니면 8,000원어치만 주면서 손님이 내 진심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면, 어떤 불황이 닥쳐도 당신의 가게는 살아남을 것입니다. 요식업의 본질은 결국 혀끝의 맛이 아니라, 손님의 마음을 얻는 일이니까요.
착하기만 한 사장님이 아니라, 현명하고 영악한 사장님이 되어 주시기를. 그래서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그 맛있는 음식을 계속 만들어 주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