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제주도에 사는 괴물

내 눈에만 매출이 보여: 공간의 연금술사

by 잇쭌


호텔의 어원인 'Hospes'는 손님을 뜻한다. 하지만 현대의 럭셔리 호텔들은 종종 주객이 전도된다. 건축가의 자아를 뽐내기 위해 손님의 시선을 가두고, 비싼 마감재를 자랑하기 위해 자연을 차단한다. 제주도에 세워진 거대한 황금 성. 그곳엔 공간을 지배하는 오만한 괴물이 살고 있었다.




제주 공항에 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짠 내와 습기. 서울과는 공기의 무게부터 달랐다.


S그룹이 보내준 검은색 세단을 타고 서귀포 해안가로 향했다.


"강진혁 씨, S그룹 호텔이면 이미 설계 다 끝나고 공사 중일 텐데, 우리가 할 게 있을까요?"


이서연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야자수를 보며 물었다.


"전무님 말로는 '내부 인테리어' 단계에서 막혔다고 하더군요. 회장님이 오셔서 '여긴 감옥 같다'고 혹평을 하셨다나."


"감옥이라... 5성급 호텔이?"


한 시간 뒤,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절벽 위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 '더 S 제주'.


그것은 호텔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요새'였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할 건물 외벽은 웅장함을 강조하기 위해 두꺼운 화강암으로 덮여 있었고, 창문은 그 거대한 벽에 낸 작은 숨구멍처럼 보였다.


내 눈앞에 시스템 진단 창이 떴다.


[매장(호텔) 진단 스캔 중...]

[자연 채광률: 20% (매우 낮음)]

[자연 조망권(View): 30% (대부분 차단됨)]

[시각적 폐쇄성: 90% (답답함)]


"와... 돈을 바다에다 버렸네요. 이 좋은 뷰를 벽으로 다 막아버리다니."


이서연이 혀를 찼다.


로비로 들어서자 상황은 더 심각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탈리아산 대리석과 황금색 몰딩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화려했다. 하지만 숨이 막혔다.

창문 너머로 보여야 할 제주의 푸른 바다는, 화려한 샹들리에와 거대한 기둥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강진혁 대표님."


로비 중앙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S그룹 최 전무였다. 그리고 그 옆에, 백발을 뒤로 넘겨 묶고 개량 한복을 입은 노신사가 서 있었다. 그의 눈빛은 제주의 현무암처럼 거칠고 단단했다.


내 눈의 시스템이 붉은색 경고음을 미친 듯이 울렸다.


[경고: '공간의 독재자' 감지]

[인물 분석: 민태훈 (62세)]

[직업: 세계적인 건축가 / '더 S 제주' 총괄 디자이너]

[성향: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봄. 인공미 예찬론자.]


그가 바로 제주도의 괴물이었다.


"자네가 그... 골목 식당 몇 개 살렸다는 젊은 친구인가?"


민태훈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말투에는 노골적인 무시가 배어 있었다.


"네. 강진혁입니다. 선생님의 건축물은 책에서 많이 봤습니다."


"그래? 그럼 알겠군. 이 건물이 얼마나 완벽한 비례와 미학을 갖췄는지. 그런데 회장님께서 자네 같은... '장사꾼'의 의견을 들어보라 하셔서 말이야."


그는 '장사꾼'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둘러보게. 그리고 감히 어디를 고쳐야 할지 말해보게. 단, 내 설계를 1mm라도 건드린다면 각오해야 할 거야."


나는 로비를 천천히 걸었다.


비싼 자재, 완벽한 시공. 흠잡을 데 없는 '물리적 공간'이었다.


하지만 '심리적 공간'은 빵점이었다.


시스템이 로비 곳곳에 붉은색 태그를 붙였다.


[금박 장식: 시선 분산 (피로도 ▲)]

[거대한 기둥: 바다 조망 차단 (개방감 ▼)]

[인공 조명: 5000K (자연광과의 부조화)]


나는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통유리가 아닌, 좁고 긴 창문 밖으로 감질나게 바다가 보였다.


민태훈이 뒤따라와서 말했다.


"그 창은 액자야. 바다를 그림처럼 감상하게 만든 거지. 너무 많이 보여주면 천박해. 절제미를 모르는군."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 사람들은 그림을 보러 제주도에 오는 게 아닙니다. 바다를 보러 오죠."


"뭐?"


나는 뒤를 돌아 민태훈과 정면으로 마주 섰다.


"이곳은 호텔입니다. 미술관이 아니라고요. 손님은 여기서 '압도'당하고 싶은 게 아니라 '해방'되고 싶은 겁니다."


나는 로비 중앙의 거대한 황금 기둥을 가리켰다.


"이 기둥들, 그리고 저 벽면들. 전부 다 유리로 바꿔야 합니다."


"이 미친놈이! 이건 구조학적으로 계산된..."


"구조는 보강하면 됩니다. 문제는 철학이죠. 선생님은 지금 제주의 자연이 초라해서, 선생님의 황금으로 덮어줘야 한다고 착각하고 계십니다."


나의 도발에 민태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최 전무가 안절부절못하며 끼어들었다.


"강 대표, 그건 너무 급진적인데... 예산도 문제고."


"전무님. 1박에 100만 원을 내는 손님이, 서울 강남 호텔이랑 똑같은 대리석 벽을 보고 싶어 할까요? 아니면 침대에 누워서 제주의 파도를 보고 싶어 할까요?"


나는 시스템이 보여주는 '가치 평가 시뮬레이션' 결과를 읊었다.


[현재 디자인 가치: 1박 30만 원 (시설은 좋으나 뷰가 없음)]

[솔루션 적용 시 가치: 1박 120만 원 (오션뷰 프리미엄)]


"자연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비싼 인테리어입니다. 그걸 공짜로 쓸 수 있는데, 왜 벽으로 막아서 돈을 버리십니까?"


그때, 침묵을 지키던 이서연이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보여주었다.


"민 선생님, 이거 보세요. 선생님이 설계한 다른 호텔 리뷰예요."


"숨 막힌다." "답답하다." "비싼 감옥 같다."


이서연이 차갑게 덧붙였다.


"건축가에게는 '작품'일지 몰라도, 사용자에게는 '불편함'일뿐이에요. 우리는 작가가 아니라 기획자잖아요. 소비자가 원하는 걸 줘야죠."


민태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평생 자신의 권위에 도전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좋아... 증명해 봐. 네놈 말대로 벽을 허물어서, 도대체 뭘 만들겠다는 건지."


내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떴다.


[메인 퀘스트: '더 S 제주' 라운지 리뉴얼]

[조건: 인공(Artificial)을 지우고 자연(Nature)을 채워라.]

[키워드: 바이오필릭(Biophilic) & 차경(借景)]


"전무님, 여기 로비 라운지 하나만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벽 다 뜯어내고, 창문 다 틉니다. 마감재는 대리석 말고 현무암이랑 나무 쓸 겁니다."


"그, 그래도 될까...?"


"실패하면 제 컨설팅 비용 0원. 성공하면... 민 선생님, 인정하시겠습니까?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민태훈이 콧방귀를 뀌며 돌아섰다.


"해 봐. 네놈이 만든 촌스러운 오두막이 내 황금 성보다 나을 리 없으니까."


괴물과의 내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창밖의 바다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서연 씨, 준비해요. 이 비싼 쓰레기들, 다 갖다 버립시다."





� 강진혁의 경영 인사이트


: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 자연이 최고의 럭셔리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그리워한다(Biophilia). 도심 속 빌딩 숲에 살수록 이 갈증은 커진다. 따라서 최고의 럭셔리 공간은 비싼 샹들리에가 있는 곳이 아니라, '자연을 가장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 차경(借景), 풍경을 빌려오다


한국 전통 건축의 핵심 기법이다. 창문을 통해 바깥의 자연을 마치 액자 속 그림처럼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뷰(View)가 좋은 곳이라면, 인테리어는 최대한 단순해야 한다. 화려한 인테리어는 오히려 자연이라는 명작을 방해하는 잡음(Noise)이다.


2. 자연 소재의 힘


차가운 대리석, 금속, 유리는 세련됐지만 피로감을 준다. 반면 나무, 돌, 흙, 식물 같은 자연 소재는 인간의 맥박을 안정시킨다. 만져보고 싶은 텍스처(Texture)를 사용하라. 촉각적 편안함이 체류 시간을 늘린다.


3. 빛의 설계


인공 조명은 최대한 숨기고, 자연 채광을 극대화하라.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공간의 색이 바뀌게 하라.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가장 고급스러운 공간이다.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쉴 때 다시 자연(신)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당신의 공간에 '자연'을 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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