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by 진조




2025년 7월 2일



네가 태어난 날은 2월의 막바지라 아직 날이 추웠다. 글쎄, 그 밖에 또 어떤 걸 말해주면 좋을까. 지금은 여름이야. 더위가 뭉근하게 모두의 정수리를 데우는 지금, 너는 내가 끄는 유모차 안에서 조그만 손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는 차소리에 묻힐 옹알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지.


엄마가 쓰는 달력은 널 더러 이제 4개월이 됐다며 발달의 여부를 묻는다. 정부는 영유아 검진을, 또 엄마의 친구들은 이제 조금 더 큰 옷을 선물하고 막상 네 엄마인 나는 네가 입던 배냇저고리를 고이 접어서 가장 안쪽에 넣어둔다. 병원을 나서기 전부터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오늘은 네가 2개월 전에 끝낸 접종의 연장이야. 그러니 오늘 아침에 엄마가 한 말을 잘 기억해 둬. 오늘 저녁엔 씻지 못하니 지금 씻는 거야, 등의 내 말을 경청하는 듯하다가 곧 까르르 웃는 너. 너의 웃음. 아직 이가 나지 않아 아무것도 씹지 못 하지만, 너의 입 안은 혹여 내 손가락이라도 스칠까 걱정될 만큼 깨끗하고 붉다.


사람들이 네게 나를 닮았다고 말하곤 하는 걸 알고 있니? 엄마의 친구나 가족이나 너나 할 것 없이. 너를 함께 만들고 사랑하고 있는 너의 아빠도 매일 저녁 그런 말을 한다는 걸. 그래, 아침에 너를 데리러 가는 길에 눈을 비비면서 잠시 거울을 보는데 네 얼굴이 내게 있어. 너를 낳고서, 엄마는 장르가 조금 바뀐 인생을 사는 듯하다. 몇 년 전에는 로맨스였어. 너희 아빠가 지금처럼 잘해주는 과거를 살다가, 너와 함께 하는 배가 불렀던 그 열 달이 이제는 까마득한 전생 같아. 사실 그보다 더 전의 시간들은 이제 조금 흐릿해. 분명히 교복도 입었고 학사모도 썼고 열심히 외국어 강의도 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네가 요즘 엄마가 부엌에 가서 서성이는 뒷모습을 많이 보는 걸 알고 있어. 사실 뭘 해야 할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래. 알지? 너는 엄마와 요즘 계속 붙어있잖니. 그럴 때마다 "ㅏㅑㅓㅕ" 하고 모음을 마구 섞어서, 나를 불러주는 네 소리에 뒤를 돌아서 웃곤 하지.


엄마의 앞자리는 몇 해 전에 달라졌단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라가 정하는 대로 부르고, 또 다른 이들은 엄마처럼 태어난 해를 말하기도 해. 사실 엄마도 좀 헷갈려. 그래. 이렇게 나이도 제대로 한 번에 이야기를 못 하고서, 못 다 꾸는 꿈도 급하게 꾸며 사는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될 줄 몰랐어. 해 보니 거창하지는 않더라. 그런데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힘들긴 하다. 그건 어떻게 하는 거냐고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를 하던 교복 차림을 지난 지 오래인데, 여전히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거든. 가끔 너를 곁에 두고 나도 내 엄마에게 하소연을 잔뜩 늘어놓을 때가 있지. 요즘 꽤 봤지? 너도 결혼하면 네 아빠처럼 아내를 잘 챙겨주길 바란다. 가끔 갈 곳을 잃은 기분이 들 거거든. 분명히 내가 선택한 길인데 말이야.


이제 엄마는 담배냄새가 시끄러운 시가지의 골목은 견디기가 힘들다. 너를 데리고 다니는 길에는 더욱 신경이 곤두서곤 해. 요즘은 날이 더워서 너를 데리고 쉽사리 나가지 못하는 엄마라서, 거기다 너를 지나치는 타인들의 흡연은, 이 엄마가 더더욱 마음이 쓰인다. 너는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야. 지금의 너는 나의 도움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잖아. 네가 유모차 안에 있다가 "어이, 아저씨, 담배 좀 꺼." 하고 말할 깜냥이 되면 엄마도 함께 신나게 다니겠다마는. 그래서 바람을 많이 쐬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방금도 잠든 너의 이마를 만지다가 방문을 닫고 나오는 길에 생각했어. 날이 어서 시원해지기를. 그래서 너에게 다채로운 풍경들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기를. 엄마의 친구를 만나러 가는 택시 안에서도 너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 대한 갈망이 아주 커 보이거든. 마치 옛날, 우리 엄마 품 속의 나처럼 말이야.


가끔 생각해 봐. 너는 성별이 남자이니까, 언젠가 너의 선택대로 법에 위촉되지 않을 나이에ㅡ부디 그러길 바란다, 이 엄마는 그래도 술은 스무 살에 했어ㅡ모두 경험하게 되겠지. 그래. 지금 엄마는 잠시 고민해. 그때, 엄마는 너와 함께 담배나 함께 피워볼까나? 네 아버지가 기함하겠다. 그런데 나는 아주 개방적인 마인드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네가 게임을 한다면 그 게임을 밤새서라도 터득하고 스코어를 올려서 너를 약 올리고 싶어. 네가 축구를 한다면 코치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룰을 모두 외우고 싶다. 엄마는 사실 얼마 전에 가르치던 제자에게서 들었거든, 매일 응원만 하던 야구의 정확한 룰도 말이야. 그런데 당장 네 코에 네 손으로 만든 상처에도 쩔쩔매는 게 나라서, 어쩌면 연습을 좀 해야겠다 싶기도 하다, 아들.


얼마 전까지 엄마는 마음이 조금 흐트러진 상태로 지냈어. 많이 지쳐 보이는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나도 처음인지라 이것저것 부딪히는 게 꽤 많았어. 머리카락이 이렇게 많이 빠질 줄 몰랐어. 같이 먹었는데 너는 왜 3킬로그램이고 나는 10킬로그램이 불었겠니? 너를 안고서 내려놓을 때마다 허리가 아프다. 발목은 또 얼마나 시큰하게? 그런데 아주 뻔한 이야기지만, 지금 이 시절은 기억도 못 할 네가 한 번 웃어주면 엄마는 그걸로 마음이 가득 차. 아주아주 많이 충만해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그래서 홀로 울던 밤에도 일부러 너의 손을 쓰다듬었던 적이 많았단다.


넌 참 너 자신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 네 머리가, 네가 얼마 전에 얻은 별명처럼 왜 그렇게 번개맨처럼 위로 솟구치는지 아니? 바로 내 머리숱이 장난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네가 나를 닮아서 예쁘대. 아들인데 딸 같다고도. 그런데 엄마는 말이야. 그런 건 상관없이 전에 엄청 친한 스승님께 들었던 말을 매일 되뇌어 볼 뿐이야. 첫째는 엄마의 감성을 가져간다는 그 말. 그러니 이 엄마가 얼마나 불안하겠니. 엄마는 아빠와 정 반대거든. 특히나 널 가지면서부터, 그때부터 알았지. 엄마는 엄마 자신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


엄마는 네가 나중에 어떤 성향을 가지고, 어떤 걸 하고 싶어 할지 참 궁금하다. 그때는 엄마의 조언이 네 귀에 들어갈까 싶다마는, 그래도 확실하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 네가 싸워야 할 건 너 자신뿐이란다. 죽을 때까지 그래. 잘 나가는 동성 친구도 아니고, 지나간 연애상대도 아니며, 너보다 잘나게 태어난 외모의 타인도 아니야. 네가 이겨먹어야 할 존재는 어제의 너뿐이란다. 공부든, 사람이든 마찬가지라고 엄마는 생각해. 내가 널 만들고, 사랑하기는 하지만 네가 다른 친구와 너를 비교한다면 이 엄마는 아주 슬플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엄마는 할머니에게 엄청난 불효를 많이 했겠구나, 그래.


날 닮아 나왔을 테니 너도 너 자신을 사랑하는 건 무척 힘들지도 몰라. 가끔은 네가 견딜 수 없는 한계치까지 너를 몰아붙이다가 병이 나기도 할 거야.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돈은 못 벌고 뒤지게 힘만 들 것이다, 이놈아. 사랑을 줄 줄 알고, 자기 자신도 돌보고 아껴주는 네 아빠와는 다르게 엄마는, 모든 일에 앞서 비교질부터 한다. 그 상대가 누구겠니? 얼마나 여러 명이었겠어? 학교에서는 노는 듯해도 공부 잘하던 동급생, 유튜브 속 상큼한 얼굴의 연예인, 많은 금수저 동년배들, 지나가던 연애 상대의 ex들... 제일 열받는 건, 이 엄마가 발전가능성 없이 탓만 하고 흘려보낸 시간들이 아주 텁텁하게 오래됐다는 거다. 사실 엄마가 이런 인간이라는 걸 자각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도 몇 년이 채 안 됐어. 나중에 한 번 네게 물어볼게. 대체 사는 게 뭐겠니? 너도 아마 느낄 거야. 난 알거든. 날 닮아 나온 너도 앞으로 살면서 얼마나 짜증이 날지 말이야. 세상이 네게 말할 거야. 너 자신을 알고 또 사랑하라고. 근데 아마 둘 다 힘들 거다. 나도 그랬거든. 비교에도 건강한 비교가 있다느니, 성장하면 된다느니 그런 이야기는 미뤄둘게. 너 자신에게 너무 큰 생채기를 주지 말아라.


그래도 아들, 엄마가 괜히 병신 같은 면만 우선 떠들어대서 그렇지, 나름 할 만 해. 몰라, 나름 진짜 괜찮아. 사는 거 말이야. 이렇게 말하면 웃기지만, 나는 네가 있어서 더 잘 살고 싶어 졌거든. 그동안의 엄마 인생이 그렇다고 보잘것없는 건 아닌데, 뼈를 갈고 심장을 괴롭혀가면서 너를 만들고 나니까 느껴져. 확실히 엄마는 강해진 것 같기도 해. 한편으로는 아직 아빠의 저녁 약속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엄마 친구들의 자유로움이 멋져 보일 때도 있지만 그래도 엄마는 이제 너의 엄마니까. 근데 꼰대처럼 하나 말해보건대, 너는 네 이름을 가장 먼저 익히고, 그다음에는 엄마의 이름을 쓰고 말해보도록 해라. 너와 성은 다르지만 너를 세상에 내놓은 인물에게 그런 작은 선물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겠니?


그거 알고 있니? 엄마는 이미 너와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는 상상도 한다는 걸 말이야. 잘 차려입고 간 엄마와 아빠를, 네가 중간중간 흘끔흘끔 대다가 눈이 마주쳐서 씩 웃는 그런 상상 말이지. 평균치에 맞게 잘 자라주는 네가, 이제는 나름 욕심도 부리면서 온갖 것들을 다 입에 가져가려는 네가, 탈 없이 오늘 하루도 잘 살아주는 네가 자랑스러우면서도 애틋해 죽겠다. 이제 세상은 네게 엄마라는 직책을 주고서 너와 보내는 시간의 교집합을 아주 크게 그려주고 있어.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아니? 이제는 네가 크고, 내가 늙을 일만 남았다는 거지. 이미 전생처럼 느껴지는, 신나게 놀면서 돌아다니던 그 자유로움이 없더라도 시간이 더 흐르면 이 순간을 그리워할 거라는 걸 엄마는 알고 있다. 꼭 매스컴으로만 익힌 가스라이팅이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반쯤 그렇긴 하다.


내가 삼성이나 엘지에 다녀보지 않아서 네게 대기업 취업의 비밀은 못 알려줘. 그래도 네가 학교에 다녀와 저녁을 먹는 시간에는 엄마와 너의 비밀을 꼭 나누도록 하자. 네가 어떤 친구와 제일 친한지, 어떤 색깔로 스케치북을 칠하고 싶은지, 어느 선생님과 가장 깔깔대며 많이 웃는지, 놀이기구는 무엇이 제일 좋은지. 또 네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은 무엇인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편지를 쓰면 좋을지 같은 것들... 네가 수학 과외가 필요하다면 수지 이모가 뛰어올 거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어느 정당을 응원하고, 어느 회사에 들어갈지, 어느 동료와 가장 마음을 나누는지도 이야기하게 되겠지.


그리고 하나 약속해. 나중에 엄마가 유명해지면 꼭 이야기해 줄게. 직접, 아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널 위해 죽을 수 있다고. 그런데 이 사실은 네가 평생 몰랐으면 했다'고 말이야. 널 낳아서 행복했고, 널 기를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도. 그런 멋진 일이 일어나고 나면 말이다, 아직 내가 네 보호자일 때,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그 보호자의 역할이 마침내 뒤바뀔 때 네가 내게 말해주면 좋겠다. 엄마, 그래도 꽤 멋졌어. 엄마는 멋진 사람이야. 우리는 너무 멋져. 그렇게 말이지.




- 7월에, 아직 말도 못 하고 칭얼대기만 할 줄 아는 너에게 괜히...

또 쓸게.

엄마가.








작가의 이전글다른 우주, 다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