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신화와 그 속에 드러난 우주라는 관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조가 그 외에도 과학에 가까운 여러 활동을 했기 때문에 관련 사실을 살펴보고 그리스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알려진 과학에 근접한 최초의 활동은 무려 3만 년~1만 5천 년 전에 기록된 천체 관측 기록입니다.
이 기록을 남긴 우리의 선조는 달의 형태를 매일 밤 기록했습니다. 기록을 보면 그는 달의 모양이 주기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놀라운 것은 기록된 시기입니다. 그 시기는 소위 말하는 구석기시대입니다. 아직 조악한 석기 밖에 없었고 농업도 시작되기 전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선조는 천체 관측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렇게 오래전부터 인류는 천문 변화를 인지하고 패턴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이후 화살, 투석기, 바퀴 등의 여러 기술적 발전이 있었습니다만 모두 다루기에는 시간이 모자랍니다. 다만 고대 과학기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피라미드는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지요.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약 4700년 전에 건설되었습니다. 가장 큰 쿠푸왕의 대피라미드는 평균 2.5톤 무게의 돌 300만 개가 사용되었습니다. 무게는 무려 700만 톤이나 됩니다. 높이 146m로 1311 년 영국 링컨 대성당이 지어지기까지 무려 3800년 동안이나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피라미드를 단지 볼거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구조물을 건설한다는 것은 단순히 돌을 쌓는 것으로는 불가능하고 재료의 강도, 구조물의 하중 분산 등 많은 기술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집트 인이 처음부터 건설에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림에서 좌측의 피라미드는 메이둠(Meidum) 피라미드로 불리는데, 건설 중에 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졌습니다. 옆면의 각도를 너무 가파르게 쌓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나중에는 무너지지 않도록 각도를 한번 꺾은(?) 피라미드도 건설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거대한 피라미드는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결국 이집트인은 성공했습니다. 당시가 신석기시대였음을 염두에 두면 그 기술 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피라미드의 각 변은 약 230미터인데 네 변의 오차는 0.1%도 되지 않습니다. 정확한 수학과 측량 기술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피라미드가 향한 방위 또한 정확한데 이것은 정확한 천체 관측 기술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대피라미드의 현실(미라가 보관된 방)에는 하늘을 향한 창이 뚫려 있는데 그 방향은 정확히 오리온자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왕의 영혼이 오리온자리로 향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처럼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지역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 요인으로 농업으로 인한 풍족한 자원, 정치적 안정, 관료제의 발전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문자의 발명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자가 왜 중요할까요? 그 중요성을 ‘누적’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 부모 세대의 지식은 말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지요. 따라서 전 세대의 지식이 쌓이지 못하고 지식의 총량에도 한계가 있게 됩니다. 문자는 그 측면에서 인류 최대의 혁신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물려받은 지식을 그대로 이어받게 되면 중간에 지식이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발전을 더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여러 세대를 지나며 누적된 지식이 인류 문명의 신기원을 이룩하게 했습니다. 흔히 4대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황하, 인더스 문명이 모두 문자를 발명했던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지요.
이집트의 경우 기록을 남기는 전문가를 육성하는 별도의 교육기관이 있었고 여기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관료로 출세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당시의 교육열(?)이 지금의 한국 못지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특히 수학과 천문학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회계사, 점성술사, 의사, 기술자 등의 전문가들이 방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실용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었고 통합적인 체계를 갖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체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학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망원경을 본다든지 시험실에서 현미경을 보는 과학자의 이미지를 많이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모아진 자료를 우리는 ‘경험 자료’라고 부르지요. 그런데 자료가 모였다고 그것을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뭔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그 빠진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이론’입니다. 이론은 거칠게 말하면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체계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진정 세계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론은 경험자료가 왜 그런지 설명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사실을 나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요. 지금까지 살펴본 고대 문명은 많은 ‘과학적’ 자료를 모았지만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과학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론을 만들려고 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 바로 지중해 부근의 그리스 지역입니다. 그런 연유로 과학이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일컬어지는 것이지요. 이 지역에서 일어난 일련의 지적인 발전은 우리 인류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가들은 이 변화를 “그리스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과학이 탄생한 이 놀라운 사건을 살펴보기 위해 지금으로부터 약 2600년 전의 그리스 지역으로 가봅시다.
(주: 그리스와 이오니아, 크레타 등은 구분되는 지역이지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여기서는 구분하지 않고 그리스 문화권으로 묶어서 부릅니다. 넓은 지역이지만 활발한 해양 교역 덕분에 이들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는 데는 무리가 없습니다)
과학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탈레스(기원전 624~546)입니다. 이 사람은 최초의 철학자이자 최초의 과학자로 불리는 위대한 인물입니다. 고대 그리스 지역에는 추앙받는 7인의 현자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로 꼽히는 사람이 탈레스입니다. 그의 전설적인 이야기 중에는 과학을 이용해서 전쟁을 막은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 리디아와 메디아라는 두 나라가 6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요. 그러자 탈레스가 나서서 “너희들이 이렇게 전쟁을 벌이니, 하늘이 노해서 몇 월 며칠에 해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예언합니다. 해가 사라진다는 것은 ‘일식’을 뜻합니다. 태양이 달에 가려서 대낮에도 밤처럼 어두워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탈레스가 예언한 그 날 일식이 일어났습니다(기원전 585년). 그러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전쟁을 멈췄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천문 지식을 이용해서 평화를 가져온 놀라운 분이지요. 이분의 손에서 과학이라는 위대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 순간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탈레스는 세상의 근원에 대해서 처음으로 물었다고 언급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모든 존재의 본질(arche)을 추구한 최초의 지혜의 탐구자”라고 평했습니다. 또한 그의 뛰어난 점은 경험 자료(empirical data)에 바탕해서 논의를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물의 근원으로 지적한 것은 ‘물’입니다. 그는 모든 것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물이 없다면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관찰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세상이 온통 물이고 땅이 그 위에 떠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덕분에 탈레스는 ‘지진’을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에 가보면 파도가 치지요? 파도 때문에 물 위에 떠있는 땅이 흔들리면 지진이 생긴다고 설명한 것이지요.
이것만으로도 훌륭하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평가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는 탈레스의 이론은 신화에서 조금 나아간 것에 불과합니다. 이와 같은 조악한 생각이 과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요소가 더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이 신화에서 과학으로 가는 결정적인 발걸음이었다고 봅니다. 그 요소는 바로 ‘논쟁’입니다. 그냥 논쟁이 아니라 경험 자료에 기반한 논쟁입니다. 이 요소가 없었다면 탈레스가 내놓은 이론은 그저 그런 수많은 이야기 중 하나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역사에 논쟁이 등장한 순간은 어떠했을까요? 그 장면의 주인공은 탈레스와 그의 제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기원전 610년 ~ 546년)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의 이론이 가진 중대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사실 이야기는 조금 복잡하지만 핵심만 간추리면, 그의 비판은 물이 특정한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반대되는 성질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불’이 좋은 예입니다. 물은 축축한 성격이 있고 물을 뿌리면 불이 꺼집니다. 그런데 탈레스는 만물이 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지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반대의 성질을 가진 불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은 명백히 존재하죠! 따라서 탈레스의 이론이 틀렸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바로 과학이 시작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탈레스가 “만물이 물로 되어있다”라고 말한 시점이 아니라, 아낙시만드로스가 스승의 이론을 비판했을 때 과학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논쟁을 상대를 누르기 위한 활동이라고 보면 곤란합니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알기 위한 토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활동은 사실은 더 잘 알기 위한 일종의 ‘협동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 전통은 과학의 핵심으로 남아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도 한 번쯤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유명한 학술지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논문을 발표하는 것이 모든 과학자의 소망이지요.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가 한 것 같은 비판과 토론이 현대 과학에서 이루어지는 장소가 바로 이들 학술지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이론과 연구 성과를 여기에 발표하고 누구나 그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호 비판과 토론의 과정을 거치면서 더 나은 지식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과학자들의 이런 지적인 협동이야말로 과학이 발전할 수 있는 제1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여기서 논쟁을 과학의 맹아로 보는 관점은 칼 포퍼에게 빚지고 있습니다. 더 알고 싶은 분은 칼 포퍼, <추측과 논박 1>, 5장을 참고하십시오)
토론을 통해 발전하는 과정 또한 '누적'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A가 이론을 내놓으면 B가 논쟁하면서 A의 오류를 고치고 지식을 더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다시 C가 나타나서 또 다른 지식을 더합니다. 이런 식으로 논쟁을 통해 지식이 성장합니다. 이와 같은 과학의 전통을 수립한 것이 그리스 지역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입니다. 이 전통이 오래 이어지면서 이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나왔습니다. 데모크리토스라는 사람은 ‘원자’라는 주장을 내놓고, 엠페도클레스라는 사람은 ‘물-불-공기-흙’의 4 원소라는 주장을 내놓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아서 소개하고 싶지만 시간의 한계로 다 소개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
자, 그럼 이들 사상가들의 노력이 어떤 꽃을 피웠을까요? 그것을 알아보려면 그리스의 아테네로 가야 합니다. 아테네에는 위대한 3명의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사제 관계인 이들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플라톤에 주목합니다. 여러분은 한 번쯤 플라톤의 ‘이데아론’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데아론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불완전하지만 어딘가에는 완전한 세계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삼각형을 예로 들어볼까요. 우리는 정삼각형이 세 각이 정확히 60도로 같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면 완벽한 정삼각형을 그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피할 수 없는 ‘오차’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아무리 정확히 그리려고 해도 작은 실수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완벽한 정삼각형을 그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여기에 이상한 점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러분은 방금 완벽한 정삼각형이라는 말을 이해했지요? 그런데 실제로 세상에는 완벽한 정삼각형이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대체 어떻게 그 말을 이해했을까요? 방금 여러분은 본적도, 볼 수도 없는 것을 이해한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하죠. 이에 대해 플라톤은 <티마이오스>라는 책을 통해 답합니다. 그는 신화의 언어로 설명하는데요, 요약하면 태초에 데미우로고스(demiougos)라는 신이 우주를 만들면서 완벽한 세계(즉,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해서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방품인 우주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질서를 갖게 되었고, 인간 또한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데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이성(reason)’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갖고 태어난 이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갈고닦지 않으면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세상을 유리처럼 투명하게 볼 수 있도록 이성을 갈고닦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입니다. 플라톤은 이 세계관을 ‘동굴의 비유’라는 놀라운 장면으로 묘사합니다. 동굴의 비유에 따르면 우리는 동굴 속에 묶여서 동굴 벽만을 볼 수 있는 죄수들입니다. 그런데 죄수의 뒤에는 모닥불이 타고 있어서 벽면에 그림자가 비칩니다. 플라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 그 상태로 있는 죄수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 묻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평생 벽에 비친 그림자 밖에 보지 못한 죄수는 그림자를 진짜 세상으로 믿을 것이라고 플라톤은 말합니다. 끔찍한 일이지요. 플라톤은 배우지 않는 우리의 영혼이 바로 그 죄수들의 상태라고 아프게 꼬집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묶인 것을 풀고 동굴 밖으로 나가서 진짜 세상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그 과정이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나와 밝은 빛을 보면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해봤을 것입니다. 눈이 부시고 아픕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이겨내야 진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플라톤은 말합니다. 공부란 그렇게 괴로운 것이지요. 그런데 이야기가 더 이어집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빛을 본 사람은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갑니다. 자신이 본 진짜 세상을 죄수들에게 알리고 그들을 빛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 어떻습니까.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 아닌가요?
자, 그럼 이제 과학으로 이야기를 돌려볼까요? 우리 이야기에서 플라톤의 세계관이 그의 선배 철학자들이 논의한 세계관을 계승해서 종합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은 이 중대한 변화를 그리스 철학의 권위자인 거스리는 “본질의 발견”이라고 요약합니다. 말이 좀 어렵지요? 그 핵심을 두 개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주: 거스리, 박종현 옮김, <희랍 철학 입문>)
1) 코스모스: 세계에는 질서가 있다.
2) 이성: 인간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있다.
서양에는 우주를 나타내는 말로 유니버스와 코스모스, 두 단어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코스모스는 우주에 질서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언급했지요. 플라톤의 작품은 당시에 코스모스에 대한 생각이 상식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스 지역에서 있었던 세상의 근본에 대한 오랜 논쟁이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생각이 여러분이 보기에 당연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과학적 세계관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한 가지 예를 살펴보지요. 과학사의 연구 주제 중에 “왜 동양에서는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는가?”라는 것이 있습니다(니담이라는 사람이 제기해서 ‘니담 문제’라고도 불립니다). 사실 굉장히 이상한 일입니다. 예컨대, 17세기 이전까지 중국은 서양보다 부유했습니다. 기술적으로도 앞서 갔지요. 세계 3대 발명품이라는 나침반, 화약, 종이가 모두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과학은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정답은 모릅니다. 그런데 세계관의 차이가 원인이라는 유력한 가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배운 교과서를 떠올려보면 많은 “법칙”들이 등장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뉴턴의 법칙, 옴의 법칙,… 등등 수많은 법칙들이 있고 수식으로 표현되어 있죠. 그 수식에 속도 몇, 거리 몇, 하는 식으로 수를 넣어서 문제를 풀었지요. 약간 어려운 말로 그것을 “자연법칙(natural law)”라고 부릅니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배하는 법칙이기 때문이지요. 모든 과학자들의 목표가 바로 자연법칙을 찾는 것입니다. 과학적 탐구의 핵심이 이 법칙을 찾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번 상상해봅시다. 만약 세상에 질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법칙을 찾으려 시도를 할까요?
세계관의 차이라는 가설은 바로 그 점에 주목합니다. 예를 들면, “음양오행설” 같은 동양적 세계관에 따르면 음과 양이 끊임없이 뒤섞이고 세상은 계속적으로 바뀝니다. 그에 따라 만물은 계속 변하지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세상을 본다면,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는 노력을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자연법칙을 찾으려는 시도가 없었고 따라서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가설입니다. 그러나 오해는 마십시오. 동양이 열등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추상적인 법칙을 찾는 대신에 동양에서는 실용적인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이니까요.
물론 그것이 정답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 주제를 보면 그리스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가 과학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될 겁니다. 자연법칙, 즉 자연의 질서에 대한 탐구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려면 먼저 자연에 질서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없다고 믿는 것을 찾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니까요. 이런 탐구의 전통이 탈레스에서 시작되었고 세월이 흐르자 그리스 지역에서 자연의 질서에 대한 믿음이 확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우리는 과학의 시작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과학은 이제 막 시동을 걸었을 뿐입니다. 플라톤에 이르러 자연의 본질이라는 관념이 확립되었지만, 그것을 구체적인 우주관으로 만든 사람은 그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그 체계는 우리 인간이 생각해낸 가장 아름다운 세계관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은 다음 시간으로 미룰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플라톤이 그린 세계관을 가장 잘 묘사했다고 제가 생각하는 애플의 1984년 광고를 올려드리겠습니다. 정말 감동적인 영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그리스의 기적의 핵심은 우리가 벽을 깨고 세계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2zfqw8nhUwA&feature=emb_title
그림 출처
그림 1, 3, 4: McClellan, J. E., III, & Dorn, H. (2006). "Science and Technology in World History." JHU Press.
그림 2: https://en.wikipedia.org/wiki/Pyramid
그림 5: https://whiumisc.tistory.com/52
그림 6: https://ko.wikipedia.org/wiki/탈레스#/media/파일:Illustrerad_Verldshistoria_band_I_Ill_107.jpg
그림 7: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2150.html
그림 8: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8/Raffael_058.jpg
그림 9: https://eduking1978.tistory.com/366